언젠가 내가 시를 배반한 삶을 사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곤 한다.
오래전 머리에 아직 세상을 담지 못하는 어린 시절에
나는 한 명의 문학인을 존경했다.
우리 아버지였다.

그의 서재에 있는 상패에 적힌 우수, 최우수라는 단어가 그리 아름다워 보였다.
그 밑에 함께 적혀있는 수많은 작품들의 제목.
나는 아버지를 선생님이라고 부르곤 했다.
나는 그의 유일무이한 문하생이자 자식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불과 7살이 채 되기 전 문학에 손을 떼게 되었다.
생계가 발목을 잡기 시작했기 때문인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발걸음에 가족들의 무게가 더해지기 시작했고 동생이 생겨났을 때쯤엔 다만 한 명의 수학선생님이 가족을 이끌고 있었다.
여전히 선생님이었지만 더 이상 선생님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의 노트와 인문학 교수가 되겠다는 인생 계획이 그려진 표는 영영 봉인되고만 것이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고고히 창공을 날으는 새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 역시 아버지의 전철을 밟아 세상에 공개되지 않을 명작을 써내려가며 스스로를 위안한다.
가족도, 책임까지도 몽땅 가져가버린 아버지의 모습에 질투를 느껴 편안하게 살 가족을 바라며 실리를 택한 것이다.
위대한 문학가와 그의 문하생은 동반자살을 택하였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내게 영감을 나눠준 윤동주, 나태주, 김수영 선생님을 비롯한 모두를-
그저 문학에 취한 한 명의 이상주의자로 보며 그들을 질투하는
그런 내가 부끄러워진다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시를 배반한 삶을 산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