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빛이 있었기에 어둠이 있었고,
어둠마저 닿지 못하는 곳은 빛이 자리를 지켰다.

우리는 수많은 빛들에 파묻혀 살면서도
가끔씩 마주하는 장애물들에 그늘져
어둠의 수렁에 빠져버리고는 한다.

하지만
빛나는 우리의 삶 위 어둠은 갑작스레 찾아온다.
언제나 그랬듯 빛을 바라는 자들은 어둠의 멍에를 짊어져야 하기 때문에.

어둠이 찾아오는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나보다 밝은 빛을 발견해버려 나의 빛이 초라해져 버린다던가.
어쩌다 발견한 거대한 빛에 좌절하고는 자신의 빛을 꺼버리던가.
깜빡이다 지쳐 숨을 고르려 잠시 동안 주저앉아 있던가.

빛과 어둠마저 사라진 곳에서 바라본다.

남들과 비교하며 초라해져 버린 나 자신을
남들을 치켜세우며 자기를 깎아내리는 나 자신을
목적지도 없이 쉬지 않고 달려와 지쳐버린 나 자신을

그래.
빛이 사라지니 어둠이 보였고.
어둠이 사라지니 비로소 내가 보이더라.

모든 것이 비워진 나의 자아.
빛마저 심지어 어둠마저 비워져 버린 그곳에서
그곳에서야 나 자신을 떳떳히 바라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