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는 너에게서 산뜻한 벚꽃 향기가 아득히 내 곁을 맴돌고 있었다.
그때는 마치 네가 봄과 같아 보였다.

여름에는 너에게서 핥은 입술이 사과 맛을 머금고 내 입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때는 마치 네가 여름과 같아 보였다.

가을에는 너에게서 청량한 바람 소리가 잔뜩 내 곁을 에워싸더라.
그때는 마치 네가 가을과 같아 보였다.

겨울에는 너에게서 맞잡은 두 손에 포근포근한 눈이 살포시 내려앉더라.
그때는 마치 네가 겨울과 같아 보였다.

너와 만난 모든 순간
그때는 마치 나의 모든 것이 너와 같아 보였다.

그런데 아니더라.
사실 네가 나의 모든 것이었더라.

네가 떠나고 맡았던 벚꽃 향에서는 너의 샴푸 향이 나더라.
네가 떠나고 먹었던 사과의 맛에서 너의 입술 맛이 나더라.
네가 떠나고 들리는 바람 소리에서 너의 목소리가 들리더라.
네가 떠나고 맞았던 눈의 촉감에서 너의 손결이 느껴지더라.

나는 네가 모든 세상에 너의 흔적을 남기는 줄만 알았는데
사실은 네가 나의 모든 감각에 너의 흔적을 남겨 놓는 것이었더라.

온 세상에 머금어져 버린 너 때문에 숨쉬기가 힘들어
나는 이제 그만 나에게 느껴지는 모든 너를 잊어버리기로 했다.

너라는 병명을 치료하기 위해서 필요한 치료제의 대가는 내게 너무 컸다.
치료를 마치고 떠안은 나의 새로운 병명은 감각장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