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때처럼 창에 부딪히는 날 선 겨울의 파편들이 애달피 나의 시련을 울부짖는 날이었다.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하려만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이 통증들은
다시 나의 1평 짜리 쪽방의 가벽에 부딪혀 내게 되돌아온다.

이러한 고통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더 이상 고통 따위는 내 안식처를 채워내지 못한다는 것

더 이상 아파하지 않는 내가 못마땅한 것인지
더 이상 내가 아프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인지
내 귀에 다가오는 바람의 하악질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나의 고통이 살갗에 부딪힌다.
나의 살갗이 창문에 부딪힌다.
방의 창문이 바람에 부딪힌다.
다시 바람이 고통에 부딪힌다.

한껏 울어 대는 바람에 창문을 청진기 삼아 진단해본다.

바람의 들숨에는
나의 희망, 꿈, 추억 그 따위의 파편들이 나의 살갗에 진동한다.
전부 내가 사랑하는 것들

바람의 날숨에는
나의 절망, 현실, 기억 그것들의 파편들이 나의 살갗에 진동한다.
전부 내가 사랑했기에 마주 춰야 한 것들

그래...
나는 어느새부터 바람의 목소리를 모른 채 하며 살아간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바람 따위에 목소리가 어딧냐며 그의 존재를 전설 속의 그것처럼 치부해버린 것이다.

바람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나는 희망을 가지며 살아갈 수 있다.
바람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나는 희망을 부수며 살아가야만 한다.
바람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나는 꿈을 가지며 살아갈 수 있다.
바람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나는 꿈을 망가트리며 살아가야만 한다.
바람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나는 추억을 가지며 살아갈 수 있다.
바람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나는 추억을 깨뜨리며 살아가야만 한다.

바람의 목소리가 들린다면 나는 나의 소중한 것들을 일그러트려야 한다.

하지만 이내 깨닫는다.
그 일그러트려야 했던 나의 찬란한 별빛 아름다움들도
전부 바람의 목소리를 들으며 연주해냈다는 것을

이제는 창문으로부터 손을 뗀다.
손은 아까보다 차가워졌지만 어째서 인지 영혼이 시립지가 않다.

그래
나는 그대라는 겨울 바람을 한 몸에 맞으며
다가올 봄을 들을 수 있는 아름답고도 황홀한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아직도 내게 바람은 차갑다.
하지만 나는 똑똑히 들을 수 있다.
그의 숨 한결 한결에 묻어있는 봄기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