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내가 아무말 없이 계속해서 걷고있다. 태범과 동섭이다. 태범은 인간을 사랑하게 된 연월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수년간 지켜보면서 몰래 품은 연심은 더이상 쓸모가 없었다.

"태범님. 그리가시면 마을을 빠져나가게 됩니다."

"동굴로... 동굴로 가자꾸나."

"태범님. 아직 아가씨를 데려오지 못했습니다."

태범은 동섭을 노려보았다. 동섭은 무뚝뚝한 표정이었다.

"너도 듣지않았느냐? 우리가 데려오고 싶다한들 데려올수 없다."

"허면 아가씨가 다치셔두 괜찮으신 것입니까?"

태범은 화를 내려하다가도 침을 한번 삼키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네 말이 맞다. 연월을 저대로 둘수는 없는 일이지."

태범이 동섭에게 손짓을 하였다. 동섭은 태범에게 다가갔다.

"내게 좋은 방법이 하나있으나, 여기선 말을할수 없다."

"알겠습니다. 조용한곳을 찾아보겟습니다."

"아니다. 한과점이란 곳으로 안내하거라."

동섭은 태범을 한번 쳐다보았다.

"알겠습니다."

잠시후, 한과점 앞에 태범과 동섭이 서있었다.

"정말이구나. 입에 넣는 순간 녹아 없어져버리다니... 이럴거면 맛있지나 말아야 할것아니냐?"

"아가씨는 유과를 한번에 세개씩 드셨습니다."

"세개씩이라..."

태범이 유과 세개를 집더니 입안에 넣었다.

"옳아! 이리하니 좀더 오래 맛을느낄수 있구나. 역시 연월은 영리하다."

태범은 계속해서 유과를 집어먹었다. 동섭은 자신도 하나 먹어볼까하여 손을 집어넣어 보았지만 아무것도 집히지 않았다. 동섭은 놀라 입을벌린체 태범을 쳐다보았다. 동섭의 눈빛은 설마 다먹었냐는듯이 묻고있었다. 태범은 헛기침을 몇번했다.

"우리는 이곳에 유과따위나 먹으러 온것이 아니다. 연월을 구하기 위해 온것이지."

"하지만 아가씨는 저희와 함께 갈 생각이 없으십니다."

"윤대혁은 인간이다. 인간은 자신에게 해가되는 일들은 피하려하는 법. 오늘밤 윤대혁의 집에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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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께서 찾으라한 도께비는 이미 멀리 도망갔는지 죽었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소. 있기나 하는것이오?"

대혁은 거울앞에서 혼잣말을 했다.

"이쯤이면... 돌아갈까?"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으니 내일이면 좌의정이 온다. 대혁은 어떻게 해야 좌의정을 속일수 있을지 고민이었다.

"연월입니다."

대혁이 연월의 목소리를 듣자 얼른 자리에 앉아 아무것도 않하고 있었다는듯이 있었다. 연월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늘 장터에 갔으면 합니다."

"그럼 갔다오거라."

"오늘이... 마지막날이지 않습니까? 대혁님과 함께 가고싶습니다."

연월의 입에서 마지막이라는 말이 나오자 대혁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알겠다."

대혁과 연월이 집밖으로 나섰다. 집앞에서는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유과누나!"

아이하나가 연월에게 달려들었다. 연월은 손을흔들며 인사했다.

"누나. 누나. 나 맛있는거줘."

아이는 연월의 치맛자락을 흔들며 말했다. 연월은 주머니를 꺼내어 아이의 손에 유과와 강정을 주었다.

"히히... 고마워 누나."

"혼자드실 생각이십니까?"

연월의 말에 아이는 자신의 친구들을 한번보았다. 아이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친구들 쪽으로 향해 달렸다.

"누나 다음에 또봐!"

아이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연월이 다음이라는 말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와 인사했다.

"아이에게 너무 주기만하면 버릇이된다."

"어차피 마지막이지 않습니까..."

대혁은 자신이 괜한말을 꺼냈음을 알게됬다.

연월은 고개를 숙인후 다시 장터를 향해 걸었다. 대혁은 힘없이 걷는 연월이 안쓰러웠다.
대혁이 무언가 결심한듯 연월을 뒤따라가더니 연월의 손을 낚아챘다.

"무엇을 하는것입니까?"

"오늘이 마지막이고 하니 손 한번 잡아주려 하는것이다."

대혁은 연월의 손을 꽉잡았다. 연월은 기쁜미소를 지었다. 연월과 대혁은 어느덧 장터에 들어섰다.

"헌데, 어째서 장터에 오자한것이냐? 무언가 사고싶은것이 있더냐?"

"실은 보고싶은것이 있어 이리왔습니다."

"보고싶은것? 어떤것을 보고싶으냐?"

연월은 말없이 대혁을 이끌었다. 연월이 대혁을 끌고간곳에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연월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대혁은 사람들사이에 가려 연월이 보이지 않았다.

"비켜들 보시오."

대혁도 사람들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갔다. 세네명의 사람을 지나고나니 왠 멍석이 보였다.

"가슴시린, 눈물없이는 볼수없는 언년이의 사랑...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요."

멍석위에 있던 할매탈이 큰소리로 외치더니 꽹가리를 치기시작했다. 대혁은 주위를 둘러보아 연월을 찾았다.

"보고싶다는 것이 탈극이었느냐?"

"예. 춘심님께서 오늘 탈극을 꼭보라하셨습니다."

"듣자하니, 네가 읽던 책의 내용을 공연하나보구나."

"예."

연월은 이미 탈극에 빠져있었다. 대혁은 어쩌면 이 탈극이 연월이 보는 마지막 탈극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탈극의 1부가 끝나고 잠시 쉬는시간이 되었다.

"볼만하구나."

대혁이 연월과 얘기를 하기위해 말을꺼냈지만 연월의 앞에는 춘심이 와있었다.

"연월아 재밌어?"

"예. 시간가는줄모르고 보았습니다. 헌데 내용이 많이 바뀐것 같습니다."

"응. 원래 탈극이란게 한번공연하면 바뀌는거야. 그래야 공연하는 우리도 안질리고, 보는 사람들도 안질리지. 하지만 끝에는 다 똑같아."

"그렇습니까?"

연월의 표정에서 아쉬움이 묻어났다.

"이크. 아저씨가 멍석위로 올라갔다. 이제 2부시작하려나봐. 난 들어가볼게."

춘심은 다급히 탈을쓰고 멍석위로 올라섰다.

"몸종 언년이와 도련님의 신분을 초월한 사랑. 풋풋한 사랑이 익기도전에 시련을 맞이하게되는데..."

할매탈의 외침과 함께 또다시 탈극이 시작됬다. 언년이는 한 양반집의 몸종이다. 하지만 언년이는 너무도 예뻐 양반집의 아들이 반해버린다. 언년이는 자신이 몸종임을 지극히 잘알고있어 도련님의 사랑을 거부하지만 계속되는 사랑에 언년이도 차츰 도련님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세상이 있어선 안될 사랑을 허락할리 없었다. 시련이 주어지고 도련님과 언년이는 이를 극복해나가지만 주위의 시선과 더욱더 힘들어지는 삶이 결국 그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도련님... 어찌 그런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맞는말을 하는것이다. 나는 양반가문의 아들. 너는 몸종이다. 본디 이루어질래야 이루어질수 없었던 운명... 여기까지 오느라 나는 너무지쳤다."

"제가. 제가 더 고생하겠습니다. 도련님은 그저 제옆에 있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잘있거라."

"그렇게 언년이는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한채 도련님을 떠나보내게 되고, 언년이의 사랑은 이루어질수 없었다는 슬픈 이야기입니다요."

탈극이 끝이 났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할것없이 울고있었다.

"이까짓 흔해빠진 내용이 뭐 슬픈일이라고..."

대혁은 울고있는 사람들이 우스웠지만 자신의 옆에서 울고있는 연월을 보자 말을바꾸었다.

"너무도 감동적이구나."

"예. 그렇습니다."

춘심은 멍석에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연월에게 다가왔다.

"이럴줄 알았어. 너는 책으로도 본 애가 또 우는거니?"

"너무. 너무 재밌게보았습니다."

"역시 탈극은 책보다는 직접봐야하는거야. 다음에도 공연하는 날이 있으면 말해줄게."

춘심의 다음이라는 말에 대혁은 연월을 바라보았다. 연월은 흐르던 눈물을 닦았다.

"춘심님. 저는 다음공연을 보지 못할것입니다."

"왜? 어디가?"

"앞으로도 더이상은..."

그때, 연월이 말을 잇지못하도록 대혁이 입을 막아버렸다.

"하하하... 우리가 내일 여행을 떠나게된다. 때문에 다음공연은 아무래도 못볼지 싶다 이런 뜻인것같구나."

"그래? 좋겠다. 누구는 여행도다니고..."

연월은 자신의 입을 막은 대혁을 바라보았고 대혁은 눈빛으로 조용히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참. 나 가봐야겠어. 오늘 아저씨가 벌이가 괜찮다며 고기먹자했거든. 가볼게. 안녕."

춘심이 연월에게 손을흔들었다. 춘심이 자신의 극단으로 돌아가고 연월은 자신의 입을막은 대혁의 손을 떼어냈다.

"왜 제 입을 막은것입니까?"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없이 갑작스레 이별을 말하는것을 싫어한다. 너는 아무렇지않게 이별을 말하려고하니 자제하거라."

연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쉽습니다. 마지막으로 본 탈극이 저리도 아쉽게 끝나다니..."

"뭐가 아쉬우냐?"

"언년이가 사랑을 이루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책과 내용이 바뀌었기에 끝마저도 바뀔줄알았는데... 역시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은 이루어질수 없나봅니다."

"아무리 깊은 사랑이라 한들 신분의 차이는 넘을수 없는게지..."

대혁은 자신이 말하고 나서야 께달았다. 연월이가 결말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이유는 다름아닌 신분의 차이 때문이었다. 연월은 몸종임에도 자신이 좋아하게된 도련님과 사랑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요괴인 자신과도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결국 이루어질수 없음에 연월이 결말을 싫어하게 된것이다.

"하지만 혹시아느냐? 그 도련님이란 것이 반역을 일으켜 세상을 바꾸어 언년이를 찾아갈지."

"예? 그것이 가능합니까?"

"재밌는 탈극은 얘기를 이어 나오기도 한다."

"허면 이어서 나올 탈극에서는 언년이와 도련님이 이루어지겠습니까?"

"내가 탈극에 대해서 뭐알겠냐만은 본디 사람들은 슬프게 끝나는 것을 싫어하는 법이다. 그러니 다음 내용에서는 둘이 잘먹고 잘사는 내용이 나올게 틀림없다."

"다행입니다."

연월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혁은 자신의 말을 믿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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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의 집안. 심복이 좌의정의 방문앞에서 목을 가다듬었다.

"대감마님. 부채도사님께서 오셨습니다요."

"들라하시게."

좌의정의 말에 문이 열리고 사내 하나가 들어왔다. 사내는 부채질을하며 좌의정의 앞에 앉았다.

"자네가 부채도사인가?"

"예. 그렇습니다."

"먼길오느라 수고가 많았네... 차라도 한잔 하시게."

좌의정은 부채도사에게 차를 따라 건네었다. 부채도사는 차를 받더니 냄세를 맡았다. 그러더니 눈을 부릅떴다.

"수고가 많은자를 죽일것입니까?"

좌의정은 깜짝 놀랐다. 그러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역시 소문이 맞았구만. 자네가 냄세로 요괴들을 쫓아다니는 퇴마사라 하여 얼마나 냄세를 잘맡나 한번 시험을 해본것이니
흥분하지는 말게."

"무슨일을 맡기시려하시기에 시험까지 하시는 것입니까?"

좌의정은 차를 한모금 마시더니 입안으로 퍼지는 향을 느꼈다.

"자네에게 도께비의 냄세는 어떠한가?"

"도께비냄세라하면... 박하향을 맡을수있습니다."

"박하향이라? 요괴라 하여 고약한 냄세가 날줄알았는데 꽤나 좋은향이 나는군."

"헌데 대감께서는 어째 도께비냄세를 궁금해 하십니까?"

"내일 도께비 하나를 끌고올 생각이네. 헌데 요괴라는 것이 위험한 존재이지 않은가? 자네가 나를 좀 지켜줘야겠네."

"그런 일이라면 제게 잘 맡기시는 것입니다."

부채도사는 환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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