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와 홀로 앉은 늦은 저녁.
꺼져있던 전등불을 켜고 하루를 정리하며, 오늘도 상을 차린다.

밥그릇에는 떡져버린 고단함이 고봉처럼 수북하게 담겨 있고,
국그릇에는 내일은 또 뭐해먹고 살지 하는 쓰디쓴 걱정이 찰랑대고 있어
입맛이 떨어지다가도 그나마 소소하게 웃었던 오늘의 기억들이 작은 반찬그릇에 담겨있어
겨우 한 술 뜨게 되는 아주 자그마하고 볼품없는 상.

한 숟가락 뜨고 고개를 들면
예쁜 연예인이 밥인지 국인지 반찬인지를 씹어삼키는 내얼굴을 보고 웃고,
한 젓가락 뜨고 고개를 들면
아나운서가 짐짓 심각한 표정을 하며 나를 바라본다.

그들은 밥그릇에 남은 고단함의 제조과정과 국그릇에 담긴 걱정의 원산지를 파헤치고 다니지만,
정작 그걸 삼키고 있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는 않는다.
그저 앉아있다가 서있다가 어느때고 그냥 훌쩍 바뀌어 나타나고 사라진다.
그러고나면, 나는 또 다시 혼자 한 숟가락을 뜬다.

그러다가 또다시, 세상 제일 사랑하던 사람과 함께하던
빛이 날정도로 윤기가 흐르는 사랑이 수북하던 밥그릇과
따스하다 못해 보글보글 끓던 관심이 담겨있던 국그릇이 놓여
밑바닥까지 긁어먹던 저녁상이 생각나
그리고 그걸 보던 네가 생각나
나는 슬쩍 눈물 소스를 고단함에 비벼본다.

영 맛이 없기도 하고, 할 일이 남았기에 마냥 다 삼킬 수가 없어 ​밥그릇과 국그릇을 미처 다 비우지 못하고 상을 물리고 나면
가끔 간식으로 따스하고 달콤한 이상을 주워먹고 싶어지지만,

"배가 불렀네 아주" 소리를 듣는 것이 무서워서
비어버린 통장 잔고가 무서워서
그리고 자주 먹게되면 상을 받지 않을 내가 무서워서

오늘도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참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