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 밤이 깊을수록 유독 빛나는 곳이있었다. 바로 기생집이었다. 동섭은 기생집을 서성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아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담을 넘었다.기생집 안에서는 좌의정이 여러 관리들과 함께 웃으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십여분이 지나고 좌의정은 손짓으로 기생들을 내보냈다. 관리들의 웃던얼굴은 서서히 굳더니 좌의정을 바라보았다.

"대감... 어떠한 일로 우리를 모으셨습니까?"

"때가 되었소."

"저... 정말이십니까?"

"대감. 때만 알려주실것입니까? 슬슬 거사를 치를 방법도 알려주실때도 된것같습니다."

병조판서가 묻자 모두들 누군가 먼저 말하기 기다렸다는듯이 좌의정을 쳐다보았다.

"허허... 좋소. 그대들이 궁금해하시니 말해드리겠소. 병판, 도께비를 아시오?

"알지요. 요괴아닙니까?"

"그러면 도께비 한마리가 장정 몇을 상대하는줄 아시오?"

"그래도 요괴이니... 한 열댓명쯤 됩니까?"

"너무 과소평가 하시는구려. 도께비 한마리는 장정 백명을 상대할수 있소."

"헌데, 뜬금없이 무슨 도께비타령이십니까?"

좌의정은 입꼬리를 살짝올렸다.

"그 도께비를... 부릴수 있다면 어떻겠소?"

관리들은 모두들 놀랐다.

"그게... 가능하단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하지만, 도께비 한마라리로 무얼 하겠습니까?"

"이사람을 너무 작게보시는구려. 병판의 말대로 한마리의 도께비로 무얼하겠소? 하지만 수십마리의 도께비면 어떻겠소?"

좌의정과 대화를 주고받던 병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말을잇지 못하는 병판대신 호조판서가 답했다.

"수십마리면... 수천의 병사..."

좌의정이 말없이 웃기만하자 관리들은 서로 얘기를 했다.

"정말 수십마리의 도께비를 마음대로 부릴수 있단 말씀이십니까?"

"도께비를 이용해... 거사를 치른다면 이는 필히 성공할터..."

"이틀 후. 궐안은 피바다가 될것이오. 하지만 그곳에 우리의 피는 없을것이오. 다만... 왕의 피와
동인 잡것들의 피로 물들겠지"

좌의정의 눈에는 이미 피바다가 된 궐이 보였다.

"다된 밥이라한들 재는 뿌려질수있으니... 다들 입단속을 하셔야 될것이오."

"예. 대감"

좌의정은 모두를 무섭게 노려보며 말했지만 이미 이사실을 엿들은 이가 있었다.
검은 복면을 두르고 그림자 속을 걷는남자. 동섭이었다. 좌의정의 얘기가 끝나자 동섭은 서둘러 담을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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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동굴속. 늦은밤 잠못이루는 도께비 하나가 있었다. 도께비들의 우두머리 태범이다.

"이제 2일이 남았구나... 큰일이 없어야할텐데..."

걱정을 하고있는 태범의 목걸이가 반짝거렸다. 태범은 목걸이를 잡았다.

"누구냐?"

"동섭입니다."

"이 늦은시간에 어쩐일로 전화를 하느냐?"

"태범님. 큰일입니다. 어서 아가씨를 데려가야합니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말하는 것이냐?"

"제가 아가씨를 붙잡으라 한 의뢰인을 찾아본 결과, 의뢰인은 조선의 좌의정임을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지난밤 놈의 뒤를밟아 어찌해서 아가씨를 잡으라 한것인지 알게되었습니다."

"그래? 어서 말해보거라."

"놈은 우리 도께비들을 이용해서 조선에 반란을 일으킬 생각입니다."

"기가차구나... 인간따위가 감히 우리를 이용하려 들다니... 하지만 무슨 소용이냐?
나의 허락없이는 도께비들이 인간세상으로 나갈일은 없다."

"허면, 아가씨는 어찌됩니까?"

"연월이... "

만일 태범이 좌의정의 요구를 거절한다면 연월은 죽을것이다. 태범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이 빌어먹을놈들! 인간이란 족속은 너무 더럽구나. 빨리. 빨리 연월을 데려와야한다."

"그것이... 저는 할수없는일이 되버렸습니다."

"무슨 소리냐?"

"제가 아가씨께 말씀드렸더니 되려 돌아갈수 없다 하셨습니다."

"왜 돌아올수 없다는것이냐?"

"아가씨는 이야기를 듣고는 자신이 사라져 버리면 해를 입을 윤대혁을 걱정했습니다."

"그게 무슨상관이냐! 그깟 인간때문에 돌아올수 없다니 말이 되느냐?... 좋다. 네가 데려올수없다면 내가 데려오겠다."

"태범님... 인간세상으로 나올것입니까?"

태범은 동섭의 말에 답하지도 않고 목걸이에서 손을 놓았다. 태범은 서둘러 동굴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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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반란을 꾀한다... 헌데 어찌해서 연월을 잡아오라 한것일까?"

대혁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하고 있었다.

"연월과 좌의정... 좌의정과 연월..."

대혁이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내 머리가 아픈듯 바닥에 드러누웠다.

"도저히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이럴수록 생각을 비워야 하느니라."

대혁은 눈을감았다. 생각을 비우기위해 누웠지만 서서히 잠에 빠져드는 대혁이었다.

"대혁아... 대혁아..."

대혁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많이 들어본 목소린데..."

"욘석아. 사부의 목소리도 잊은게냐?"

"사부님! 어디계십니까?"

"쯧쯧... 날 걱정할 셈이냐? 네가 걱정하는 것은 따로있지 않느냐"

"어떻게 그걸..."

"하지만 걱정한다한들 답은 나오지 않을것이다."

"허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저는 그아이에게 정이들었습니다."

"정녕 정이냐?"

대혁은 사부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대혁아. 너는 왜 앞일을 걱정하는 것이냐? 내 보기에는 지금의 너는 무척 행복해 보인다."

"행복이라뇨... 따분하지 않게 지내고 있을 뿐입니다."

"앞일을 걱정하지 말거라. 나는 지난 날 앞만 걱정했기에 지금을 지키지 못한적이 너무도 많았다. 너는 부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말거라."

"지금을 지키라는것이 무슨 뜻입니까? 사부님!"

대혁이 사부를 불러보았지만 사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혁이 눈을 떴다.

"지금을... 지켜라..."

그때 대혁의 귀에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대혁은 문을 열어 밖을 보았다. 문밖에는 연월과 춘심이 있었다. 춘심은 대혁과 눈이 마주쳤다.

"어? 지난번에 유과사줬던 오라버니네."

"네가 어떻게 여길 들어와있느냐?"

춘심은 연월을 바라보았다.

"제 벗입니다."

대혁은 연월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벗이라... 벗도 사귀다니 대단하구나. 좋다. 내 방해하지 않을터니 두 여인은 재밌게 놀거라."

대혁은 문을 닫았다. 춘심은 대혁의 방문을 계속 바라보았다.

"네 오라버니니?"

"예? 아닙니다."

"그럼, 친척이셔?"

"저와 대혁님은 피가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춘심은 깜짝 놀랐다.

"그럼 부부야? 이야... 너 시집갔었구나."

연월이 손을 저으며 얼굴을 붉혔다.

"부부라뇨. 당치도 않은 말씀이십니다."

"그럼 뭐야... 생판 남인 젊은 남녀가 한지붕 아래 산다... 아! 사랑이구나?"

"사랑? 젊은 남녀가 한지붕 아래 산다는것을 사랑이라 합니까?"

춘심의 얼굴이 굳었다.

"정말 몰라?"

연월의 얼굴을 보니 정말 모름이 분명했다. 춘심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연월의 두 뺨을 붙잡았다.
그리곤 춘심과 연월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너, 저 오라버니가 네 이름을 불러줄때마다 가슴이 콩닥콩닥 거리지?"

"예. 이유를 모르게 가슴이 뛰었습니다."

"저 오라버니 앞에 서면 얼굴이 붉어지지?"

"예. 그뿐만 아니라 가끔 이마에서 열도 나기도하고 목이 메이기도 했습니다."

"저 오라버니를 자꾸만 보고싶고 같이 얘기하고싶지?"

"예. 어찌 그걸 아십니까?"

춘심은 연월의 뺨에서 손을 놓았다.

"그걸 사랑이라 하는거야."

연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여지껏 병인줄로만 알았습니다."

"하하하. 그래 상사병도 병이긴 하지. 누군 좋겠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어서."

"좋은 것입니까?"

"그럼, 사랑하는 사람 옆에있는데 안좋겠니?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이 있을수 있는건 엄청 행운인거야."

자신을 부러워하는 춘심을 보니 연월의 입이 귀에 걸렸다. 춘심은 샘이났지만 연월이 가져온 유과를 먹으니 금세 풀어졌다. 춘심은 배가부르자 연월에게 탈극을 얘기해 주었다. 어제처럼 연월은 또 울었고 춘심은 그런 연월이 우스웠다. 시간이 흐르고, 춘심은 다시 극단으로 돌아갔다. 대혁은 소란스럽던 밖이 조용해지자 미간을 찌푸리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연월입니다."

연월이 밥상을 들고왔다. 대혁의 표정이 환해졌다.

"생각을 하려면 배가 든든해야하는 법이지."

연월은 무슨소린지 의아했지만 묻지 않았다. 대혁은 밥을 맛있게 먹기시작했다.

"헌데, 벗은 어떻게 사귀었느냐?"

"모르겠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 어느순간 벗이 되었습니다."

"하긴... 벗하자고 얘기하고 벗이되는 사람은 없지.... 그 벗과는 무슨 얘길 하였느냐?"

"다른 마을의 이야기도 듣고, 탈극을 몇개들었습니다."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구나."

"또, 사랑이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사랑? 그런것도 가르쳐주더냐?"

"예. 춘심님의 말로는 제가 사랑을하고 있다 하였습니다."

대혁은 순간 사레가들려 씹고있던 밥을 내뱉었다.

"켁... 켁..."

"괜찮으십니까?"

"그 춘심이라는 아이는 나쁜 벗이구나. 쓸데없는걸 가르치다니..."

대혁은 밥맛이 뚝 떨어졌다. 연월은 상을가지고 방을 나갔다. 대혁은 갑작스레 연월이 사랑하는 사람이있다고 하니 온몸에 힘이 빠졌다.

"그래... 벗도있는데 연심을 품은 사람 또한 없을까..."

스스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아쉬운 대혁이었다.

"허나 그 남자는 참으로 불쌍하게 됬다. 요괴의 사랑을 받게되었으니 얼마나 심란하겠어."

위안을 해보지만 심란한것은 대혁이다. 대혁은 생각할수록 답답함이 느껴져 밖으로 나가려했다. 마루에는 연월이 앉아있었다. 연월은 대혁이 나왔음에도 눈치채지 못했다. 대혁은 무관심한 연월이 섭섭했다. 하지만 자세히보니 연월이 책을 읽고있었다.

"무엇을 읽고있는것이냐?"

연월은 그제서야 뒤돌아 보았다. 대혁을 한번보더니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탈극의 대본입니다."

"'언년이의 사랑'?"

"춘심님께서 아직 제가 사랑에대해 잘 모른다하여 탈극의 대본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단단히도 빠진게로구만..."

대혁은 입을 삐죽거리며 신을 신었다.

"나가시는 것입니까?"

"집안에 있자니 답답하여 밤산책을 나서려 한다."

"저도 따라가도 되겠습니까?"

대혁은 단번에 거절하려 했지만 이미 신을 신고있는 연월이었다. 대혁은 거절할 틈도없이 연월이 먼저 문을 열었다. 대혁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지었지만 금세 표정을 굳혔다.

"헌데... 어디로 가실것입니까?"

"내 마음이 답답할때 가는곳이 있으니 그리로 갈까한다."

대혁은 최대한 무덤덤한척했다. 연월은 대혁과 함께 걷는것이 마냥 좋았다. 대혁과 연월은 마을을 나왔고 얼마안가 길 주변에는 풀과 꽃들이 보였다. 연월이 꽃향기를 맡기위해 잠깐 멈췄지만 대혁은 개의치 않은듯 계속걸었다. 하지만 대혁은 자신의 발걸음이 서서히 느려지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연월은 꽃을 꺾고 대혁을 뒤따랐다. 연월이 이쁜 꽃을 발견하여 꽃을 꺽을때면 대혁의 발걸음은 계속 느려졌다가 연월이 돌아오면 빨라졌다. 어느덧 연월에게는 꽃이 한아름 안겨있었다.

"자 다왔다."

대혁과 연월이 언덕길을 올라 발걸음은 멈춘곳은 마을의 뒷산이었다.

"한번 뒤돌아 보거라."

대혁의 말에 연월이 뒤돌았다. 연월은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연월의 눈에는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직 초저녘이라 집들은 모두 불이 켜져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걷고있었다.

"어떠냐. 인간 세상이 한눈에 들어오느냐?"

"예. 너무 이쁩니다."

대혁은 어께에 힘을주더니 자리에 앉았다. 연월 또한 대혁을 따라 자리에 앉았다. 대혁은 손가락으로 마을을 가리켰다.

"어디보자... 저쯤이 한과점이고, 저쯤이 옷가게니 이길로 쭉 가다가 오른쪽으로 꺽고, 왼쪽으로 꺽고 다시 쭉가다보면... 저기가 우리집이구나."

"정말입니다. 이리보니 집이 너무 작고 아담합니다."

대혁은 연월이 마을을 보느라 정신이 팔려있자 이틈을 틈타 한번 떠보기로 하였다.

"우리집도 찾았는데 더 찾을곳이 없으려나? 옳지. 네가 사랑하는 남자의 집은 어디더냐?"

연월은 대혁을 슬쩍 보더니 손가락을 들어 마을을 가리켰다. 대혁은 연월의 손가락이 가리킨 집을 찾았다.

"우리집이 아니라, 네가 사랑하는 남자가 사는집을 가리켜 보라는 것이다."

"제가 사랑하는 이의 집은 저곳입니다."

"어?"

대혁은 얼떨떨했다.

"허면 지금 그남자는 어디있느냐?"

연월의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였다. 대혁은 연월의 손끝을 집중해 바라보았다. 손가락은 이내 멈추었고 손가락이 향한곳에는 대혁이 있었다.

"내... 내가 그남자란 말이냐?"

연월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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