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월이 부엌에서 나오더니 마루에 앉았다. 그리고 목걸이를 두손으로 움켜쥐어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태범님... 들리십니까?"

"연월이냐?"

"예. 그렇습니다."

"오늘은 무슨일로 목걸이를 잡았느냐?"

"오늘도 참으로 신기한일을 겪었기에 목걸이를 잡았습니다."

"하하... 인간세상에 신기한일이 그리 많진 않을건데... 어디 오늘은 어떤일을 겪었느냐?"

"오늘은 마을이라는곳에 들어와보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있는곳을 말하는구나."

"예. 하지만, 제대로 구경하진 못했습니다.

"어찌 그랬느냐. 보고싶던 인간들이 아니었느냐?"

"보고싶었지만... 저도모르게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고개를 떨궈? 무엇때문에?"

"마을에 들어갈때 포박된 상태로 들어갔기에 모두들 저를 죄인이라 말했기 때문입니다."

"죄... 죄인? 연월이 니가 어찌 죄인이란 말이냐?"

"본디 죄인들만 포박되어 마을로 들어가기 때문이겠지요."

"그럼, 그 대혁이란자가 너를 포박한것이냐?"

"예. 그렇습니다."

"이런 망할자식. 내 당장 그자식을 ..."

"하지만 모두 잊혀졌사옵니다. 대혁님께서 저에게 선물을 주었습니다."

"선물?"

"예. 무척이나 귀엽고 앙증맞은 방울인데 보여주지 못해 아쉽습니다."

"그래... 아니 어찌 못보여준단말이냐. 내일이라도 돌아오면 되지않느냐"

"그러기엔, 아직 인간세상이 너무도 재밌사옵니다."

태범은 실망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허나. 그 대혁이란자를 너무 봐주진 말거라. 만만히 보였기에 너를 포박하는것이 아니냐. 여차하면 동섭이를 부르거라. 항상
너의주변에 있을것이니라."

"예. 아 참. 또 재밌는 것이있사옵니다. 태범님께서 말한 술마시면 된다는것 말입니다."

"개말이냐?"

"예. 오늘 보았습니다."

연월은 웃으면서 목걸이에서 손을 놨다.

"사부님은 참! 알지도못하면서! 얘는 나 안속였다니까요! "

대혁의 목소리가 방문을 뚫고들려왔다. 연월의 웃음보가 터지고말았다.


다음날, 대혁은 해가 중천에 떠서야 눈을 떳다. 그리고 깊은 자괴감에 빠졌다.

"내가 무슨 짓을한거야... 얼마나 마셨길래 그런소리를..."

어젯밤의 술주정을 떠올리자 창피함이 몰려왔다.

"연월입니다."

연월이 문을열자 방울소리가 함께들려왔다. 연월은 대혁의 앞으로 다가갔다.
대혁은 차마 연월의 얼굴을 볼수없었다.

"어쩐일이냐."

"어제의 일을 잊으신것입니까?"

"어제의 일?"

대혁은 무슨 일을 했는지 떠올리려했다.
허나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것은 눈이 풀린체 술주정하는 모습뿐이었다.

"마을을 구경시켜준다 하셨지요."

대혁은 어젯밤의 일을 다시한번 떠올리기위해 미간을 찌푸렸다.
어젯밤, 사람은 원래 술에 취하면 속에있는 말을 잘 꺼내는 법이다.

"사부님, 얘는 인간보다 더 착해요!"

한사발이라고는 하나 연월 또한 술을마셨었다. 때문에 연월은 웃음을 참으려했지만 세어나오는 것을
맊을수 없었다.

"예, 그럼 들어가세요."

"누구랑 얘기하셨습니까?"

대혁이 연월과 눈을 마주쳤을때 대혁의 눈은 반즘풀려있었다.

"사부. 나 길러주신분."

"허면.. 부모님이.. 없으신것입니까?"

연월은 최대한 조심스레 말했다.

"사부가 부모님인 거지. 헌데 그 사부도 지금은 어딨는지 모른다.
간간히 소문은 들리는듯한데... 내일 마을에 나가 한번 알아봐야겠다."

"저도 데려가 주십시요."

"너도? 상관은 없다만... 어찌 따라오려 하는것이냐?"

"저는 인간세상에 대해 너무도 모릅니다. 한번쯤 마을을 둘러보고 싶었는데, 오늘 기회가있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대혁은 순간 고개를 숚인채 서둘러 걷던 연월이 떠올랐다.
연월은 괜찮은듯 했으나 대혁은 다시금 미안한 마음이 생겨났다.

"좋다. 내 그러면 너에게 마을을 구경시켜주겠다."

"정말이십니까?"

연월은 너무 기뻐 미소를 지었다.

"밥도 얻어먹었으니 그쯤은 해주어야하지 않겠느냐?"

대혁은 그제서야 어젯밤의 약속이 기억났다.

"그랬지. 그러면 어디 나가볼까?"

연월은 기쁜듯이 신을 신었다.

"그리 좋으냐?"

"예."

대혁도 신을 신고 마당으로 나섰다. 문앞에는 연월이 고개를 숚인채 서있었다.

"왜 그러는것이냐?"

연월은 문앞에 놓여진 밧줄을 보고있었다. 대혁은 순간 자신을 노려보던 연월이 떠올랐다.

"오늘은 묶지않겠다."

연월은 기쁜표정으로 대혁을 쳐다보았다. 대혁은 아무렇지 않은듯 밖으로 나섰다.
잠시후, 연월과 대혁은 말없이 한참을 걷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연월이 걸을때마다 노리개에서 나는 방울소리가 대혁을 기분좋게했다.

"대혁이 아니냐?"

길을 걷던 대혁이를 스처 지나간 이가 대혁을 알아보았다. 대혁은 뒤돌아 보았다.

"맞구나!"

"아저씨!"

연월은 아저씨와 대혁을 번갈아 볼 뿐이었다.

"허허, 안그래도 네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널 찾아가고 있었다."

"나도 아저씨 찾아가고있었는데?"

"세월이 지났어도 아직 통하는게 있나보구나, 어디가서 술이라도 한잔 하며
못보던사이 있었던 일이나 말해다오."

"그럴까?"

대혁은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반가웠다. 당장 술을 마시러 가기위해 발을 돌린순간, 머릿속에 연월이 떠올랐다. 연월은 약간뒤에서 하늘을 보며 서있었다.

"아냐 아저씨. 나 지금 바빠서 안되."

"녀석... 바쁘다는놈을 잡을수는 없지. 허면 왜 나를 찾아오려했느냐?"

"아저씨. 혹시 사부한테서 연락같은거 없어?"

"뭐야. 아직도 그 양반이랑 못만난게야?"

"그러니까 물어보지. 사부님은 나한테 서편하나 보내지 않으셔. 아저씨는 사부소식몰라?"

"나도 소식까진 아니고 소문을 듣긴했지."

"언제?"

"한 석달전 쯤에 포졸 댓놈과 시비가 붙어 한바탕했다는 소문을 들었지.
때문에 수배가되어 잠시 행적을 감췄다고들 하더군"

"뭐? 하여튼... 사부는 아직도 말썽만 피우시는구나"

"이놈아. 그게 네 사부한테 할 소리냐?"

아저씨와 대혁은 서로 호쾌하게 웃었다.

"그럼 아저씨. 내가 다음에 찾아뵐게. 다음에 봐"

대혁은 잠시 얘기를 마치고 연월에게 다가갔다.

"뭘 그리 서있느냐. 마을을 구경하고 싶지 않은게냐?"

"얘기가 벌써 끝나셨습니까?"

"내 약속이 있어 빨리 끝냈다."

"약속이 있으셨습니까?"

연월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것이 마을을 반도 돌지않았는데 지인과의 얘기도 서둘러 끝낼정도로 급한 약속이 있다하니 구경하기는 힘들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혁은 자신이 마을을 구경시켜 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위해 서둘러 약속을 끝낸것이었다.
대혁은 알려주어야 하나 생각했지만 아쉬워하는 연월을 보는게 나쁘지만은 않아 말없이 걸었다.

장터에 서서히 다다르자 연월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왜 그런 눈을 하는것이냐?"

"이곳이 장터입니까?"

"알고있구나. 이곳이 장터다."

"참으로 신기한것들이 많습니다."

대혁은 신기해하는 연월을 보니 흐뭇했다. 대혁 또한 장터에 왔으니 주위를 둘러보며 걷기 시작했다.

"먹고싶은것은 없는게냐?"

대혁은 주위를 살피며 말했으나 연월의 답이 들리지 않았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연월은 보이지 않았다.

연월은 한과점앞에 서있었다.

"단내가 나는구나."

연월이 유과를 계속해서 보고있었다.

"색도 이쁘구나."

"뭘 그리 보고있는게냐?"

연월은 대혁의 목소리에 깜짝놀랐다.

"구경을 시켜달라고 하더니 혼자 잘도 하는구나."

"죄송합니다. 단내가 풍겨 나와 저도모르게 그만 정신을 놓고말았습니다."

대혁은 다시금 걸었다. 연월 또한 걸었지만 시선은 유과에서 떨어지지 못했다.
대혁은 그런 모습을 보고 웃고 말았다.

"그리 먹고싶은게냐?"

연월은 자신을 웃으면서 보는 대혁의 시선에 얼굴이 붉어졌다.

"아닙니다. 그저 구경을 한것 뿐이오니..."

대혁은 한과점으로 걸어가더니 이내 유과 한그릇을 사왔다.

"어찌 사오신것입니까?"

"먹고싶지 않았느냐?"

"예. 잠시 구경만 하였을 뿐입니다. 먹고 싶어서 서있던게 아닙니다."

"뭐 그렇다면 나혼자 다 먹도록 하마"

대혁은 유과를 먹으며 걷기시작했다. 연월은 힐끔힐끔 쳐다볼 뿐이었다.

"참으로 맛있구나."

연월은 하나씩 사라지는 유과를 볼때마다 아쉬울 뿐이었다.
대혁은 그런 연월의 모습이 우스워 더 놀리고 싶었지만 다 먹었다가는
어제처럼 노려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너도 맛 한번 볼테냐?"

대혁은 유과가 든 그릇을 슬쩍 들면서 연월에게 권했다.

"허면. 맛만 보겠습니다."

연월은 기쁜듯이 유과를 집었다.

"말도 아니되.."

"무슨 말이냐?"

"그리 달달한것이.. 입에서 녹아버렸사옵니다. 이런맛은 처음 맛보았습니다."

"그럼 하나 더 먹으면 되지 않냐"

"그래도... 되겠습니까?"

대혁은 웃으면서 그릇을 연월에게 주었다. 연월의 입이 귀에 걸렸다.

'요괴건 사람이건 맛있는건 다 좋아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대혁은 유과를 하나 먹기위해 그릇에 손을넣었다. 허나 잡히는게 없었다.

"뭐냐..."

대혁은 연월을 쳐다보았다. 연월의 두볼은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다.

"그걸 다먹은게냐?"

연월은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한개씩 먹어야지 그걸 다먹으면 어쩐단말이냐!"

연월의 볼이 조금씩 사그라들고 연월은 고개를 숙였다.

"하나를 넣으면 입에서 단맛을 느끼자마자 사라지는 바람에 두개 세개씩 먹다보니 어느새..."

대혁은 앞서 걷기 시작했다. 자신이 웃는다는것을 연월에게 들키지 않기위해서였다. 연월은 고개를 숚인채 뒤따라 갔다.

"이거 놀리는 맛이 제법 괜찮구나..."

대혁은 한번 더 두볼이 부풀어 있던 연월이 떠올랐다.

"푸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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