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너만 따로 이렇게 교무실로 불러냈는지 알겠어?"

병석의 담임인 주철은 평소보다 목소리를 많이 낮추며 병석에게 얘기했다.

"공부 문제나 그런거겠죠 뭐."

병석은 뻔하다는 식으로 주철의 말을 되받아쳤다.
주철은 그런 병석의 태도를 알고 있었기에 딱히 화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 정확히도 짚었네. 공부 문제야."

주철은 서랍을 뒤적거리더니 이내 얇은 종이 한 장을 꺼내 병석에게 펴내 보였다.
종이엔 병석이 이번 달에 받은 성적표가 복사되어 있었다.

"이거 너도 받았지? 그거 보니 어떻든?"

"나쁘지 않던데요."

"나쁘진 않긴. 공부를 안하니까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게 보이는 거지. 임마."

"공부했는데요."

주철은 병석의 그 말에 살짝 흥분했지만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말을 꺼냈다.

"중학교에선 톱으로 온 놈이 고등학교 성적은 개판을 치니 이게 뭘 말하는 거겠냐. 공부야 했겠지. 근데 개판으로 했다는 얘기밖에 더 되겠냐?"

"제가 보기엔 개판 아니었어요."

"반에서 꼴찌놈 다섯명이 서로 친구인데 그중 하나가 너야. 그래도 개판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냐. 너도 참 뻔뻔하다 야."

"걔네도 꼴찌에요? 아싸 그럼 제가 걔네중에 1등이겠네요?"

"그래. 네가 1등이야. 그럼 뭐하냐. 학교 시험이 니들만의 리그는 아닌데."

"아 선생님이 리그 어쩌고 해서 깜짝 놀랬잖아요."

"뭘 놀래. 놀래긴. 짜샤."

주철은 뚜껑이 따진 채 책상 위에 놓여있는 생수를 움켜잡고 한입 거하게 들이켰다.
병석은 그런 자신의 담임 선생님의 모습을 넋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뭘 나를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봐."

"저도 목말라서요."

"그럼 마셔."

"아, 싫어요. 입 댄거잖아요."

"야 임마. 남이 입 댄거 마시면 죽든?"

"그게 아니라 드러워서 싫어요."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할줄은 몰랐다."

주철은 무안한 듯 뚜껑을 돌려 생수통을 꾹 닫고선 서랍 속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는 할 얘기도 마저 병석에게 던져 넣기 시작했다.

"너도 거리낌없는 놈이니 나도 이제 너한테 권투로 치면 스트레이트 펀치로 말한다. 괞찮지?"

"네."

"네 친구들, 그런 껄렁이들이랑 놀러나 다니지 말고 지금부터 공부해라. 나도 이런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진부한 말 하기 싫은데 공부해서 남주는 거 아니다. 다 네 살아가는데에 도움된다."

"공부한다니깐요."

"하루에 몇 시간하는데?"

"7시간이요."

"그러면 야자까지 합쳐서 집에 가서도 그렇게 한단 말이야? 하는데 성적이 이 모양이야?"

"아니요. 수업 7교시 듣잖아요."

주철은 기가 막혔다.
허나 그도 교사 생활을 하면서 많은 학생들의 대꾸 패턴을 여럿 접해왔기에
대처법을 금새 생각해내어 병석에게 말했다.

"나한테 오는 몇몇 애들이 그 소리 할 때마다 내가 하는 얘기가 있다. 그게 공부냐? 대한민국 국민이면 다 하는거야. 임마."

"아니에요. 중졸인 사람도 많잖아요."

"야. 얘기를 왜 이렇게 딴 데로 새게 만드냐."

"그냥 그렇다고요."

주철은 병석의 말에 언뜻 짜증이 확 몰려왔지만
병석의 표정은 정말 하루를 모르고 퍼질러 자는 강아지의 모습처럼 속내가 없어 보였기에
어려서 생기는 잠깐의 반항기라 생각하며 참고 다시 한번 병석과 말을 이었다.

"그럼, 너 중졸할거야?"

"안되죠."

"왜 안되는데?"

"중졸하면 취직 못하잖아요."

"그래 그런 것도 있겠지. 근데 그거 알아?"

"어떤거요?"

"네가 임마 고등학교에서 공부 그렇게 할거면 중졸이랑 다를 바가 없어. 알어? 아냐고."

"그래도 고졸이 더 유리하잖아요. 그리고 저 대학도 나올거에요."

"후... 그래 앞은 다 집어치우고 대학은 어디로 갈건데?"

"어디든 가겠죠."

"말 잘했다. 너처럼 '어디든 가겠죠.' 하다가 나락으로 가는 놈들이 수두룩하다. 근데 '어디든 가겠죠.'가 '어디든 갈 수 있겠죠.'로 바뀌는게 공부야."

"어디든 갈 수 있어봤자 뭐해요. 어처피 한군데밖에 못들어가는데."

"좋은 데 간다는 거지. 이 새끼는 꼭 말하는데 이상하게 씨알도 없는 토를 달아요."

주철은 묵혀왔던 짜증이 자신도 모르게 삐죽 튀어나와버렸다.
허나 병석은 아무렇지 않은 듯 주철에게 말했다.

"좋은 데를 왜가요. 후진데 가서 더 편히 있는게 낫죠."

"이 멍청한 놈아. 후진데가서 어떻게 편히 있겠냐."

"왜요. 여기도 후져서 와보니까 되게 편하고 좋은데요 뭐."

"...그래 여기가 좀 후진건 사실이지. 근데 대학은 그게 아냐. 고려대, 연세대 그런 이름난 곳 나오면 몸과 마음이 매일같이 편하고 이름도 모를 구린데 나오면 억세게 구린게 대학이야."

"뭐가 구린데요?"

"그러니까... 조금 요상한 예일지도 모르겠다만 이것밖에 안떠오른다. 너 야동 많이 보지?"

"네. 저 C드라이브 꽉차서 D드라이브에도 넣어서 봐요."

"...보통은 애들이 안본다 하면 내가 '안보긴 뭘 안봐.'하면서 대화가 이어져 나가는데... 너는 너무 당돌하다. 어쨌든 야동에 나오는 여자들. 몸매며 얼굴이며 죽이지 않냐?"

"끝장이죠."

"그래. 그건 좀 학생답네. 그런데 네가 후진 대학 들어가서 그런 여자들 막 만나고 싶어. 근데 여자들이 대학 후지다고 만나주질 않아. 그럼 인생 외롭게 조지는거야."

"짚신도 짝이 있겠죠. 왜 솔로로 살아요."

"그래. 짚신도 짝이 있지. 근데 야동에서 네가 접하는 그런 쭉쭉빵빵한 여자가 짚신을 거들떠보겠냐고. 구두는 구두끼리 만나고 짚신은 짚신끼리 어울리는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야."

"짚신이면 어때요? 발 꽂는 구멍만 잘 뚫려 있음 되지."

"...야. 말대꾸좀 하지마라. 선생님 진짜 화날려 한다."

"아녜요. 말대꾸가 아니라..."

"그런게 말대꾸야."

"아 그래요?"

웃는 얼굴에 침 못뱉는다고
주철은 병석의 순진무구함에 성질을 부려봤자
그가 자신의 뜻을 그닥 깨닫지 못할 성격임을 알고 있었다.
주철은 조금더 현실적으로 다가가기로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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