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한국을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런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우리는 자유 의지에 따라서 직접 선택하여,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해 왔으며, 이에 따른 모든 결과는 모두 자신의 몫에 의했다는 것이다. 능력에 의한 보상은 언제나 정당하다는 능력주의적 해석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외부적인 요인과 운명 그 자체를 거부하며, 주체성에 따라 인생을 개척해야한다는 실존주의와 개인주의의 맥락과도 일치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지금 Z세대라고 불리는 세대는 그 이전의 세대보다 열 배 넘는 과열 경쟁을 겪어왔으며, 그것에 따른 결과는 모두 노력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들은 수능을 위해 청소년기를 지내온다. 수능의 시스템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소위 수험생활이라는 시기 동안 밥 먹고 공부만해야 높은 성적을 거두어낼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모두가 시간과 노력을 무수히 많이 쓴다고 하더라도 수능의 좋은 성적은 일정량으로 제한되어 있고, 그것을 쟁취한 자는 매우 극소수가 되기 마련이다.

이런 과열 경쟁을 겪는가면 극소수의 결과를 쟁취한 자는 자신이 노력하고 투자한 만큼 보상받을 자격이 있다고 정당화하게 된다. 반대로 그것을 쟁취하지 못한 자는 사회적 요인, 운이 따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과 능력이 부족했다고 여기게 된다. 과열 경쟁은 능력주의와 결합하여 이 세상은 개인의 노력과 능력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가치관을 널리 퍼뜨리고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시회의 기본 원리가 되어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는 과연 전적으로 타당한 논리인지 반드시 검토해봐야 한다. 외부적 요인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개인의 동기와 노력만이 결과를 결정짓는 요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세계에는 운이 따른다. 여기서 운은 흔히 일상에서 사용하는 행운과는 결이 살짝 다르다. 인간의 자유 의지로부터 선택할 수 없는 무언가라는 더 넓은 의미에서의 운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능력주의가 팽배해질 수록 운의 존재를 거부하고, 운명은 자신이 결정한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우리는 자연재해를 직접 제어할 수 있는가? 자연재해가 발생하는 것은 우리의 도덕적 자질이나 성과, 그리고 능력에 비롯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런 물음을 통해 능력주의가 이 세상의 원리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한계점도 갖는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다. 과거 서양에서는, 뿐만 아니라 동양에서도, 자연재해를 개인의 신앙심이 잘못되어서 혹은 왕이나 황제의 통치가 잘못되어서라고 여겼다.

과연 우리는 자연재해가 우리의 도덕적 자질과 일종의 성과에 의한 것이라는 것에 동의하고 있는가? 시간이 흐르며 과학 기술이 발전하며 현대인의 사고방식은 다소 바뀌었으며, 더군다나 자연재해와 기후위기를 인간은 현재 실제로 통제하지 못 하고 있음이 증명되면서,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