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만 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유치원 시절이었는지, 초등학생 시절이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여튼 그 즈음의 성탄절 기억이다.

내가 기억도 거의 나지 않을만큼 어린 시절, 부모님은 중국집을 운영하셨다. 흔히 오픈빨이라고 하는 것 덕분에 개업 직후엔 장사가 굉장히 잘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몇 년 간 운영에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가게 문을 닫게 되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식당을 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심신이 지쳐있었고, 나는 그 상처를 후벼파지 않기 위해 자세한 얘기는 물어본 적이 없다. 아마 물어봤었더라도 그냥 ‘장사가 안 됐다’ 정도로 얘기해주셨을 당신이지만.

그 때 타격을 받은 것은 아버지의 멘탈 뿐만이 아니었다. 폐업의 영향으로 우리집은 적지 않은 빚을 지게 되었다. 원래 살던 동네에서 다른 동네 월세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그것이 아마 예닐곱살즈음 일 것이다. 빚을 갚아야 함은 물론 월세에 어린 아이 둘까지, 아버지 혼자 벌어오는 월급으로 처자식을 먹여살리기는 꽤나 빠듯했다. 어릴 적 우리 가족은 일반적인 가정에 비해서 많이 가난했다. 밥을 굶은 적은 없었지만 간장에 참기름만 넣어서 비벼 먹은 날도 적지 않다. 지붕이 있는 집이었지만 겨울엔 코가 시려웠다. 그늘이 있는 집이었지만 바퀴벌레가 나왔고 지붕과 천장 사이에서는 쥐가 층간소음을 냈다. 물론 쥐가 천장에만 있던 것은 아니다. 종종은 부엌으로 침투를 해서 쥐끈끈이가 싱크대 밑에 늘 자리잡고 있었다. 아마 가장 고역이었던 것은 부엌과 화장실이 바깥에 있었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겨울마다 부엌 수도가 동파되지 않도록 하는 게 어머니에게 가장 어려운 미션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릴 적 성탄절에 선물을 받고 뛸 듯이 기뻐한 기억은 없다. 여느 집처럼 크리스마스 이브에 양말을 머리 맡에 두고 잤지만 보통 자고 일어나면 머리 맡에 크런키 초콜릿 하나가 있거나 과자 한 봉지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나와 누나는 불평을 한 적이 없었다. 이미 그 때도 산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뿐더러 우리집은 돈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과 7~8살 먹은 아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았다. 그 때의 경험으로 내가 뼈저리게 느낀 사실은 하나다.


아이가 돈에 대한 개념이 없으면 부모가 힘들지만
아이가 돈에 대해 너무 빨리 알게 되면 아이 그 자신이 힘들다.


어쨌거나 그 시절 거의 유일무이하게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먹는 것이 아닌 진짜 선물 같은 선물을 말하는 것이다）. 그 해의 12월 24일도 그럴리는 없었지만 혹시나 내일 일어나면 머리 맡에 선가드 로보트가 있지는 않을까 기대하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아침, 나는 일어나자마자 머리맡을 보았다. 거기엔 쇳덩이로 된 비행기와 마차모양의 연필깎이가 있었다. 처음으로 받는 성탄절 선물이었지만 내가 생각한 것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엄마가 실망한 내 모습을 볼까봐 너무 좋다고 표정을 꾸며내어 기뻐하는 척을 했다. 아마 지금 생각해보면 그 꼬맹이가 애써 기뻐하는 척하고 있다는 것을 부모님은 모두 아셨을 것이다. 그것이 더 부모님에게 가슴 아픈 일은 아니었을지 생각해본다. 그 때 받은 두 가지 연필깎이는 당시엔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 중이다. 내가 처음으로 독립할 때 집에서 가장 먼저 챙긴 것도 비행기와 마차 연필깎이였다. 20년도 훨씬 지나고 보니 오히려 레트로한 맛에 장식품으로 아주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이 연필깎이는 내게 자극제다. 이 연필깎이를 보면 그 때 그 크리스마스 아침의 한기와 이불 속의 따스함까지 다시금 떠오른다. 그리고 더 이상 돈 때문에 마음이 다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게 된다. 어떤 날엔 스스로 너무 돈에 목을 매는 경향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부모님이 아무 일도 안하셔도 편히 지낼 수 있을 정도로 내가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때까진 이 기억이 나를 채찍질하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우울한 크리스마스의 기억이지만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 기억인 것 같다. 이 기억의 가장 긍정적으로 생각되는 점은 그 당시에 나와 누나가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는 투정을 부리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랬다면 아마 이 연필깎이는 내게 후회를 자극하는 짐덩이가 되었겠지. 하지만 다행히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었기에 우울하지만 한 편으로는 나에게 위안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내가 연필을 깎도록 만들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