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는 밤은 그 언제보다 단단히 준비해야한다.
조금의 틈만 보여도 찬바람은 금세 내게 들어온다.
시간마저 얼어붙은 밤, 난로 앞에 앉아 빠알간 불빛에 시간을 녹여본다.
오늘을 살아냈으면 내일을 살아내고, 내일을 견뎌냈으면 그 다음날을.
하루씩 차근차근 채워가는 내 책장에는 수천이 넘는 일기가 쌓인다.
그렇게 내 삶의 기록들은 내가 언제 즐거워 했는지, 아파했는지,
심지어 가장 깊은 곳에 다다르면 죽음에 대한 생각, 바람 등
민낯의 모습은 인간적인 매력이 하나도 존재치 않다며, 치부를 숨기는데 급급하다.

'안녕 잘 지냈니? 여전하구나. 일관된 표정을 짓고 날 역겨워 하는 넌 그대로구나.'
다른 누구에게 하는 말이 아닌 내게 하는 말.
시간이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자기혐오는 커졌고, 거울 속의 난 끔찍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모든것이 얼어붙은것 같았던 날
아슬아슬하게 작업실 입구로 들어온 작은 거미를 보았다.
문 하나의 차이가 이 작은 생물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살려낼 수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거미를 그다지 징그럽게 생각하는 편이 아니다.
다른 해충을 잡아먹어준다면 오히려 그게 더 고맙지.
그렇게 거미와 나는 기묘한 동거를 시작했다.
나 자신을 그렇게 싫어하는 내가, 많은 이들이 징그러워 하는 거미에게 베풀다니.
어쩌면 베푼다는 표현도 나의 오만일 수 있지만 말이다.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의 자비는 어떠한 것보다 모순적이고 작위적이다.
어떻게든 나를 좋은 사람으로 포장하기 위한 하나의 가면
진심으로 내가 거미를 안쓰럽게 여겼다거나, 그런 비슷한 마음을 가졌다면
보다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했겠지.
단순히 잠깐 바람을 피하고 날이 괜찮아졌을때 떠나라고 하진 않았을거다.
사실 전에도 몇마리의 거미의 삶과 죽음을 함께 한적이 있다.
그들에게 조그마한 자리를 내주면 그들은 내가 귀찮게 직접 잡지 않아도
수많은 해충을 먹어치우면 나는 조금 남은 찌꺼기만 청소기로 치우면 됐다.
이정도면 충분한 상부상조의 관계가 아닐까 했다.
그렇게 보자면 내가 거미를 조금 더 따뜻한 곳에 자리를 잡게 해줌은
자비와 배려가 아닌 내가 귀찮아 할 여러가지를 대신 해줌으로 소명을 다하는 것
단지 내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거미를 하찮게 생각하고 내려다 보고 있음이다.
그런 거미에게도 주는 여러 기회를 어째서 난 내 자신에게 주지 못하는 것인가.
내 자신을 그보다 못하게 여기는게 나의 한계란 말인가
여러가지 생각이 이곳 저곳으로 뻗어나간다.
이때 내가 해야 할 것은 퍼지는 생각을 한곳에 모아두는 것
내 자신을 파괴하지 않도록 나를 지켜내는 것

뭔가 괜히 고달픈 하루였다.
마음의 결이 멋대로 바뀌는 걸 막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나
내게 주어진 수면 시간은 두시간 남짓,
그 잠깐이라도 내가 바라는 잠을 잘 수 있다면 눈을 떴을때 개운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