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감정의 가장 깊은 곳에 닿았다.
감정의 사점（死點）. 더 이상의 감정을 느끼기 힘든 상태.
몸은 쉬어주면 된다고 하지만 마음은 어떻게 해야 할까.
두 번째 다가왔던 죽음은 나를 비웃듯 스쳐 갔고,
정말 내가 쉬어야겠다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마음에 얹어둔 짐들을 내려놓는 법을 고민했고
쏟아질까 두려워하던 내가 품은 것들을 편하게 놓았다.
깨져버린 마음은 아프지만 묘한 해방감을 줬다.
잔뜩 어질러진 나를 억지로 정리하고 싶지 않았다.
흐드러지게 핀 꽃들을 하나씩 정리하지 못하듯
내 마음도 피어있는 그대로 두고자 한다.
내 삶은 백화난만하지 못했다.
보다 저물어있는 겨울에 가까웠다면 모를까.
그런 와중 동백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내미는 것을 봤을때,
조금은 내가 바뀐 것 같았다.
온갖 꽃이 아름답게 활짝 흐드러지게 핀 것보다
내 겨울의 한 송이 동백이 더 아름다움을.
내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 때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나눠줄 수 있음을.
매일 나를 비워낸다.
나를 가득 채웠던 사람도, 꿈도 잠깐은 쉬어갈 시간.
이 시간을 소중히 하지 않는다면,
내 존재의 유효기간은 계속해서 짧아질 테니.
내 바람은 그저 잠깐만 쉬어가고자 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