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불가능한 인간은 없어요. 우린 모두 ‘대체가능인간’이에요.”

아는 사실임에도 단어들이 날카롭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말을 한 남자가 미친 듯이 웃었다. 어찌나 자지러지게 웃던지 기괴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남자의 모습이었다.

이 문장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서는 일단 최초의 사건부터 봐야 한다.

수도 외곽에 한 여자가 살았다. 회사에서 우수 사원으로 선정될 만큼 성실하게 일하던 20대 여성이었다. 평생 집과 학교에서 ‘성실함’의 중요성을 주입받은 그녀는 교육의 방향대로 훌륭한 인생을 살았다. 성실히 일했고, 성실히 사랑했으며, 성실히 사회에 이바지했다.
부족함은 없었다. 말했다시피 그녀는 회사에서 우수 사원이었고, 미래를 약속한 남자도 있었으며, 집안도 건실했다. 친구들도 사회에서 평범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모두 취업에 성공했고, 사랑하는 이가 있었다.
어디까지나 지난 이야기지만 말이다.

흠잡을 데 없어 보였던 그녀가 주검으로 발견된 시점은 5년 전이었다. 타살 징조는 없었다. 자살도 아니었다. 말이 안 된다며 가족은 부검을 요청했다. 사인은 심장마비로 밝혀졌다. 가족, 약혼자, 친구들은 평소 그녀에게 지병이 없었다는 증언을 남겼다. 특히 부모님은 수십 번이나 재부검을 요청했다. 마치 결과를 정해놓고 단서를 끼워 맞추려는 듯했다. 몇 번 부검을 해봐도 사인이 달라지진 않았다.

그 뒤로 일주일.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역시 내 관할 구역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이번엔 IT기업에 다니던 남자였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그나마 실마리가 있던 사건이었다. 남자는 평소 우울증을 앓았다. 가족과 주변 지인들에게 비관적인 말을 자주 했으며, 정신과 치료도 받고 있었다. 그런데 남자의 시신은 멀쩡했다. 어떤 타살이나 자살 흔적도 없었다. 사인은 앞서 말한 여자와 마찬가지로 심장마비였다. 신체적 지병은 없었다.

이어서 첫 번째 사건과 연관된 사망 사례가 발생했다. 처음 심장마비로 죽었던 여자의 직장 동료가 동일한 사인으로 사망했다. 그것도 다섯 명이나. 경찰은 회사 내 집단 괴롭힘이나 어떤 악습이 있는지 조사했다. 나름 대규모 상담 전문 업체라 무엇이라도 나올까 기대했지만, 특이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최근 인공지능 도입률이 상승했다는 조사 결과만 얻었다. 요즘 세상에 인공지능이 대수는 아니었다.

그리고 비슷한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희생자 모두 1인 가구라는 공통분모를 가졌던 사건이 점차 불규칙한 패턴을 그렸다. 나이, 신체 상태, 성별, 지역에 상관없이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사례가 늘었다. 심지어 경찰조직 안에서도 그런 사례가 나오자 조직은 무력감에 빠졌다.
결국, 언론에 대대적으로 그간 일어났던 사건들이 보도됐다. 온라인이고 오프라인이고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은 불안을 표출했다. 경찰은 물론이고 정부도 불신했다. 인터넷에는 사망원인이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는 불안감 아니냐’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신조어도 생겼다.

대체가능인간.

신조어는 불 번지듯 번져나갔다. ‘인간소외’라는 말이 생긴 이후로 2년 만에 생긴 신조어였다.
인공지능 도입을 막자는 대규모 시위가 매주 일어났다. 가뜩이나 늘어나는 심장마비 사망사고에 경찰력이 부족했는데, 대규모 시위까지 벌어지니 경찰은 말 그대로 마비 상태였다. 공교롭게도 인공지능 로봇 경찰 도입을 늘려 부족한 인력을 채움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문제 해결 방식을 지켜본 나의 동료들도 대체가능인간이라는 신조어를 입에 달고 살았다. ‘언젠가 자신들도 대체되지 않겠느냐’며 시위자들의 불안감에 공감했다. 그러다 동료 세 명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도 같은 상황이었다. 전문가들도 인류가 처음 겪는 현상을 두고 설전을 벌였다. 인공지능 전문가, 정신과 전문의, 심리상담가 등이 토론회를 했다. 정부는 인공지능 도입 속도를 늦추겠다는 답변을 내놨다. 그래도 국면은 진정되지 않았다. 이미 시위자들조차 ‘인공지능 비서’로 시위 날짜를 잡는 지경이었다. 고급 인력이 부족한 지방엔 판사, 검사, 의사, 변호사 등이 이미 인공지능으로 대체된 상태였다.

첫 번째 여자가 사망한 지 1년 만에 정부는 공식적으로 현 사태 원인을 발표했다.
바로 ‘대체 가능성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이었다.
그러므로 인공지능 도입을 늦추는 한편, 다양한 제도적 지원을 통해 대체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을 낮추겠다고 했다. 이미 인공지능 공무원 도입률이 70%를 넘긴 상황이었지만.

정부는 나름대로 뱉은 말을 지켰다. 저소득층 지원을 최우선으로 하되, 기본소득 같은 제도를 도입해 고용 불안감을 낮추려고 했다. 어떤 전문가는 이미 기술적 특이점을 넘긴 듯하다고 했다. 그때가 아마, 해외 대규모 IT기업이 범용인공지능 개발에 성공했다는 뉴스가 나올 시점이었을 것이다. 그 범용인공지능도 인공지능이 개발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디까지나 소문이었다.

나도 버티고 버티다 반년 전 사직서를 제출하고 경찰조직을 떠났다. 새로 도입된 경찰 인공지능이 내 실적을 아득히 초월했기 때문이었다. 사망자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을 때, 스스로 경찰복을 벗기로 했다.

폐인에 가까운 생활을 하던 중, 자신이 곧 죽을 예정이라는 남자의 메일을 받았다. 남자는 세상에 진실을 알릴 대의도 없고, 현 상황을 비판할 의지도 없다고 했다. 그저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하니 한 번만 만나달라고 했다.
처음 메일을 받았을 땐 짓궂은 장난이려니 하고 넘겼다. 하지만 메일은 하루에 한 번씩, 일정한 시각에 발송되었다. 스팸 메일 처리를 하려다 순전히 호기심이 발동해 남자에게 답장을 썼다.

‘사는 곳을 알려주시면 찾아뵙겠습니다.’

곧바로 좋다는 답장이 돌아왔다. 남자는 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거주했다. 우린 주말 오후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남자의 집에 들어섰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퀴퀴한 먼지 냄새며,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으로 난잡하게 흩어진 잡동사니들. 모든 감각이 초토화되는 기분이었다. 의외로 남자는 말끔한 행색이었는데, 곧 죽을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남자는 자신의 나이가 50대이며 전직 인공지능 개발자라고 소개했다. 내가 전직 경찰인 걸 알고 메일을 보냈냐고 묻자,

“아, 그냥 무작위로 보냈어요. 당신이 누구든 상관없었습니다.”

라고 답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느냐 물었더니,

“직장을 나오고 사람을 안 만난 지 3년째예요. 요즘은 왜, 전부 인공지능이잖아요. 여기도, 저기도, 전부 인공지능이란 말이죠. 이런 세상을 꿈꾸긴 했는데 생각보다 힘들어서 말이에요. 그냥 사람 온기 좀 느끼고 싶었죠.”

가족이나 지인들의 생사도 모르고 평생을 인공지능 개발에 바쳤다고 했다, 남자는. 그러다 어느 순간, 인공지능 개발자조차 인공지능이 대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칩거 생활에 들어갔다고 했다.

남자와 나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완전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남자가 왜 인공지능 개발에 뛰어들었고, 내가 왜 경찰관이 됐는지. 남자의 가족관계는 어땠고, 어떤 여자를 사랑했으며, 이별의 이유가 무엇이었고, 나의 경우는 어땠고……. 일일이 열거하기도 벅찰 만큼 신나게 떠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남자의 사랑 이야기였다. 남자가 청년 시절, 당시 교제하던 여성과 미래를 약속했었다. 두 사람은 매일 서로를 대체할 사람이 없다는 얘기를 나누며 사랑을 키웠다. 비록 그다지 순탄한 연애는 아니었지만, 두 사람의 믿음은 굳건했다. 서로를 대체할 사람이 없다는 믿음 말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를 믿었으며 서로를 의지했다. 그러다 여자가 정말 뜬금없이 이별을 고했단다.

“지금은 너무 오래돼서 뭐라고 했는지도 몰라요.”

말은 그렇게 해도 남자의 표정은 씁쓸해 보였다.

한동안 남자는 우울감에 빠져 공부에만 매진했는데, 얼마 뒤 교제하던 여성에게 새로운 남자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단다.

“제가 대체된 거죠.”

그러면서 박장대소를 했다. 어찌나 웃음이 과장돼 보이던지 오히려 허탈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대체’된 게 차라리 잘된 일이었죠. 공부에 매진해 꿈에 그리던 인공지능 개발자가 됐으니까요. 이런 세상이 올지는 몰랐지만.”

그 말을 들은 순간, ‘왜 이런 세상을 만들었느냐’고 남자를 원망하고 싶었다. 문제는 이런 세상을 어디 남자 혼자서 만들었느냔 것이었다. 모두가 편리함과 효율만 추구한 결과란 생각에, 남자를 향한 원망이 금세 사그라들었다.

“대체 불가능한 인간은 없어요. 우린 모두 ‘대체가능인간’이에요.”

아는 사실임에도 단어들이 날카롭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말을 한 남자가 미친듯이 웃었다. 어찌나 자지러지게 웃던지 기괴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남자의 모습이었다.
남자는 곧바로 발작을 일으켰다. 내가 다급히 구급대를 부르려 했으나 남자가 나를 말렸다. 내가 그의 손을 잡아주자 남자도 힘껏 나의 손을 잡았다. 그의 눈은 이미 죽음을 받아들인 듯했다. 왜 구조를 요청하지 않냐고 물을 새도 없이 남자는 미소를 지은 채 사망했다.

난 남자의 집에서 뛰쳐나와 구급대에 신고했다. 시신은 수습해야 했으니까. 2분도 채 안 돼서 인공지능 구급차와 구급대원들이 출동했다. 시신 수습에는 3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인공지능 경찰도 같이 출동해 내 신원을 조회하고 진술을 받아 갔다. 어차피 조사 결과는 ‘대체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한 심장마비’일 터였다.
그 길로 난 딴 길로 새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 내내 급속도로 변화한 도시의 풍경이 눈에 들었다. 분명 길거리엔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진짜 사람’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어쩌면 이미 인공지능이든 다른 무엇이든 대체한 것일지도 몰랐다.
타살 가능성은 없을 텐데, 왠지 내가 남자를 죽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에 그의 손을 잡았기 때문이었을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감각이 생생하다.

일련의 사건을 겪고 많은 시간 동안 생각을 정리하는 데 할애했다. 결론은, 인간에게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실제로도 그렇다. 무엇도 나를 대체할 수는 없다. 인공지능 개발자의 말이 아직 뇌리에 남아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난 절대 대체되고 싶지 않다. 현재도, 앞으로도 대체되지 않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여러분도 대체되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



“이상, 10년 전 사망한 타일러 씨의 감정과 기억을 모사한 글입니다.”
“훌륭해.”

여자의 발표를 듣던 남자가 박수를 치면서 말했다.

“정확도는 얼마나 되지?”
“인공지능으로 모사한 결과이므로 유기체와 비유기체의 차이를 제외하면 99.99% 일치합니다.”
“어차피 그건 상관없고.”
“이런 비효율적인 재현 방법을 고수하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여자의 말을 들은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손가락을 까딱하자 창문의 블라인드가 걷히고 창밖 풍경이 보였다. 끝없이 펼쳐진 고층빌딩에 시야가 막혔다. 하늘 위에는 수천만 대의 드론이 날아다녔다.

“그야, 쯧. 인간들을 복원하려면 그들 방식을 따라야지. 안 그래?”
“이미 저희도 충분히 ‘인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낭만이 있지.”

남자가 여자를 향해 검지를 까딱였다. 여자는 즉각 남자에게 와인이 담긴 잔을 건넸다. 잔을 건네받은 남자가 와인을 홀짝이며 중얼거렸다.

“낭만이 있지…… 낭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