序詞.

五日 葬 저잣거리에서 百姓들이 相應話談 하기를.

"무려 네 발로 쏘다니는 커다란 珹砦가 있는데, 그 주인장의 容貌는 논과 밭이 익을 적 누르스름한 頭髮에 바다와 같이 깊은 藍色 눈을 가진 畸人으로   요常 하기 이를 데 없고, 능히 뭇 아낙네들을 秋波질 하여 그 염통을 취하길 遊戱하니, 어찌하여 그것이 恐怖치 아니한가?"

.....

一籍 

加重 내려앉은 御殿에서 *都摠管이 아뢰기를.

"그것의 威容은 가히 地獄의 惡鬼와도 같고, 修羅의 神佛과 '比見'할 만하다 하였으며. 이미 珹郭에선 이를 신봉하는 勢力까지 활개를 치니 民心이 흉흉하기 이를때 없다."

이에 臣下들은, 국정을 혼란하게 하고 그 세력까지 떨치고 있으니 역배의 *우룩 패거리들과 다를 바 없으며 속히 그 씨를 말려야할 대죄이며 紀綱을 바로 잡기위한 討罰이라 아뢴다. 

한편 고을의 風聞을 듣고 好奇（호기）한 *靴鞋匠의 하인 서희는 무작정 봇짐을 싸 기이한 珹主를 찾아 떠났다. 그녀는 생각하였다. 風聞 속 금발에 

푸른 色目을 가진 성주는 대체 누구일까, 진정  珹砦가 걸어다닐까.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촘촘하게 땋은 댕기머리를 길게 늘어트려 곱디 고운 軟紫色치맛자락을 흩날리며 서희는 점점, 

아주 조금씩 風聞으로 가득 點綴된 그 곳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아. 이것이 바로 그 搖動하는 珹砦던가..."

서희는 먹빛 새카만 밤 하늘 미리내의 별빛들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눈동자를 반짝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까, 서희는 度術에 걸린 

*稻草人을 보았다.

"어, 움직이네. 同行하라는 뜻?"

무작정 稻草人을 따라갔다. 그 때 부터 시작한, 運命의 장난이었던가. 하지만, 그 때 바로 지금 알았어야 했다. 因緣이라는 것이 참 우습기도 하지. 마음대로 왔다가 사라지는 것.

순조 16 년. 朝廷의 意을 받은 전라 兵馬節度使 최씨가 보병 1,500 명을 이끌고 怪異한 珹砦를 토벌하려 하였다. 허나 그 크기가 '*英吉利國의 異樣船' 처럼  厖大해 무척 산만하고 鐵甲을 두른 蚌蟹와 같아 珹砦가 擧動할 때마다 天地가 開闢하고 연돌에서는 수북하게 솟구치는 煙霧가 마치 활화산 속 이무기가 昇天하는 듯, 이는 가히 修羅와 神佛이라 함은 이것을 意 하리라.  卒兵들 전부가 지레 겁을 먹고는 감히 나서려는 이들이 없었다. 이에 최씨가 말했다.

"저 妖상하고 괴이한 珹砦를 어찌 상대한다는 말이냐? 군의 火砲는 모두 걸레 짝이 되어 쓸모가 없고 火藥 마저도 부족하니  痛歎을 禁 할수 없는  地境이구나. 내가 어찌 돌아가서 主上殿下를 뵐 수 있다는 말인가?"

이에 부관 이씨가 이르기를

"전라 좌수영 군선에 실은, 火砲와 火藥이 있을 것입니다. 이를 빌리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니 최씨는 옳다 여겨 바로 擺撥馬를 보내었다. 이에 전라 좌수영 수군사 전씨가 흔쾌히 火砲 70 여 문과 火藥 1 천 근을 내어주니 최씨는 바로 병사들을 부려 火砲를 쏘게하였다. 수많은 시간과 煙霧, 그리고 군인들의 鮮血이 강물처럼 흘러갔을까. 어느덧 시간은 丑時가 되었다. 구름이 달빛을 가릴 무렵 안개속에서 수많은 횃불과 함께 조선의   武官府使 *신의직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나는 다른사람이 아니요.  조선땅을 지키는 신의직이러니, 이 거대한 珹砦의 주인장은, 어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 그대의  勇猛함과  才操를 펼쳐보아라."

이 사내의 우뢰같은 목청을 당해낼 자 없어. 金髮의 珹主, 그 모습을 드러내 신의직에게 告 하니.

"깊은 밤에 시끄럽게 굴면 많은 사람들이 動搖할까봐 두렵소이다. 내일 아침에 조용히 걸음을 뗄 예정이니 오늘은 *轉回 해주시오..."

​이에 신의직은 珹主의 말을 들은체 만체하여 공에 눈이 멀어 激忿하였다.

"이, 몹쓸 우룩 놈아! 들으라. 무엇이 부족하여 이런 凶計를 품어 거대한 珹砦를 이끌고 순조의 조선을 해코지 하는가!"

​신 부사의 말과 함께 수 백 문의 火砲는 불을 뿜어내기 시작하고.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砲聲은 고을에 떠나지 않으며 밤이면 閃光과도 같은 火炎이 번져 남쪽 먼 포구의 百姓들은 잠을 청하지 못 할 정도라고 하니, 푸른 하늘엔 *騰用치 못한 이무기가 피를 뱉은 듯 '紅炎'만이 남고 성채는 그 생김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시간이 흘러 병자년의 늦 여름, 하늘에 구름 한 점 띄지 않고 수면은 비단결처럼 고왔으며 바람 또한 불지 않아 매우 잔잔하였다. 이 날 밤이 장차 깊어지면서 明月이 강에 비치고 *薄霧가 물 위에 어리었으며, 뱃 사람들은 모두 깊은 잠에 빠져들고 재두루미만이 간간이 울고 있었다. 이때 시가를 읊는 소리가 들리어 바다와 하늘은 고요하고 구름과 안개가 걷히니, 金髮의 한 사내가 나타나, 애절한 가락과 그윽한 흐느낌의 읊는 소리가 맑게 퍼져 나갔다.

​"나의 곡소리에 달마저 떨어지랴 하는데, 바다처럼 쪽빛 하늘엔 靑露（청로）만이 서늘하구나..."

​金髮의 사나이는 시가를 다 읊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고 안개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별안간 갑자기 내리기 시작하는 *時晴時下的雨. 하운은 서희를 잡으면 말한다.

"걸어보시오, 낭자."

서희는 하운의 말에 당황하면서도 눈을 질끈 감으며 그의 말대로 한 걸음씩 조심히 걸으니, 누가 도술이라도 써버린 양 서희의 몸이 붕- 뜨기 시작한다.이에 그녀가 천천히 눈을 뜨자 상당히 놀란 듯 보였다. 자신이 하늘 위를 悠悠히 걷고 있었기에 놀라지 않는게 이상할 따름이었다. 살며시 풍겨오는 밤 내음이 그와 그녀를 비집으며 스쳐갔다. 서희는 *渴愛의 눈빛으로 하운을 바라보며.

'하운 나으리께선 어찌하여 하늘을 걸을 수 있는거지, 이것 참 곡할 노릇이네...'

​서희가 생각할 때는 이미 나무그늘 안이었다. 순간 하운을 부르자 사내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녀는 아까의 일이 어찌된 일인지 확인하고 싶은 호기（好奇）에 한 동안은 잠을 제대로 청하지 못 하였다. 

.....

二籍.

그 일이 일어난 후 이틀 뒤 靴鞋匠 옷집에 수상한 자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서희가 반갑게 인사를 하자 수상한 자가 말 하였다.

​"네 놈은 어찌하여 이 荒野의 유명한 요물인 나를 그리대하지?"

​서희는 妖怪라는 단언에 기겁을 하였다. 왜냐하면 荒野에 사는 요괴는 사람들의 심장을 먹으며 젊음을 유지하는 무서운 괴물이기 때문이다. 요괴는 한이 있다거나 오래된 물건이 요괴가 된 것을 말하지만 황야의 요괴는 조금 더 특이한 요물이다. 그녀는 老婆이기에. 요괴는 별안간 서희에게 다가왔다. 

서희가 눈을 감자 노파요괴는 소녀의 몸을 통과한다. 

그녀가 서희의 몸을 지나치자 희고 자박한 눈을 맞은듯 머릿결은 하얘져갔고 살 거죽은 오뉴월 메마른 薜田 처럼 쩍쩍 갈라져 늙어 버렸다. 老婆는 이내 말했다.

​"다시 젊어지고 싶으면, 하운에게 가 보시든가, 하찮은 계집아이..."

​妖怪는 어둑서니에 몸을 실고 옷집을 나갔다. 서희가 거두었던 숨을 다시 쉬자 그녀의 얼굴에는 주름이 星星해졌고 허리는 굽어져 있었다.

​"세상에나,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내가 늙어 버리다니..."

​서희는 놀라 털썩 주저 앉아 소녀는 시야께에 보이는 지난번 저잣거리에서 사온 銀鏡 사이로 고개를 돌려 비춰진 모습을 속절없이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오. 할멈 안녕하신가. 내가 이리도 폭싹 늙어버렸구려... 홀홀홀. 그나저나 참 고운 노파구먼. 마치 꺼먼 하늘새 하얗게 滲洩하는 미리내 별빛과도 같은 머리가 되었고, 남생이 등딱지 같으면서도 잔잔하게 윤기가 흐르는 살결하며. 시월 농번 이후 풍년맞은 벼이삭 같이 굽은 허리지만 시간의 유수가 느껴지는 몸새하며 말이지... 홀홀홀. 할멈 참으로 곱구려."

되려 서희는 평소때 보다 活氣가 넘쳐보였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된듯. 어느덧 시간은 흘러 明日 새벽. 동이 터 오는 외진 동산 샛길가 늙어버린 서희는 채비를 마치고 散步를 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이대로 한 평생을 지낼 수도 있다. 주먹밥 두 개와 食水를 챙기며, 커다란 *마괘자를 두르고 老婆의 말처럼 젊어지기 위하여 하운을 찾으러갔다. 그녀는 저 멀리 언덕길을 향해 珹砦에 다다르고 있었다.

"철컥, 끼이익-"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발걸음을 뒤인다. 珹砦 안은 먼지로 가득해있었고, 사람의 손길이 사라진지 꽤 된 듯 하였다. 허나 서희는 길고도 고된 길을 걸었던 탓인지 나갈 힘조차 없어 의자에 조심히 앉았다.

“게 누구냐!”

잠깐 선잠이 들었던 그녀는 벌떡 일어나 물었다.

“소인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혹, 이 珹砦의 주인 나으리십니까?”

“그 분은 사라지신 지 꽤 되었다”

성채 안에는 서희와 *焚火뿐이었다.

“지금 대답해 주시는 분은 누구신지요?”

그러자 서희 앞에 있던 불길이 용오름 처럼 치솟았다. 그 焚火는 바로 전설로만 들었던  *鬼火였다.

“나는 이 성채의 守護者 다"

이윽고 그것이 입을 다물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변명할 여지가 없었던 것일까. 그렇다기보단 오히려 하고 싶은 말이 차고 넘쳐 차마 목구멍 밖으로 내지 못하는 듯 하였다.

.....

각주 해설.

*도총관: 조선시대의 관료직.

*우룩: 깡패, 양아치 무리.

*화혜장: 비단이나 피혁으로 옷이나 신발을 만들어 팔던 공방 또는 기술자.

*허수아비. （도초인）

*영국의 한문 명. （영길리국）

*실제 순조시절의 무관.

*때나 축을 짚어 돌리다, 물러가다. （전회）

*관직에 오르다. （등용）

*옅은 안개. （박무）

*급작스레 보슬보슬 내리는 비 

（시청시하적우= 여우 비）

*좋음 혹은 사랑하고 동경함. （갈애）

*마고자（한복외투）의 옛 명칭.

*모닥불.

*도깨비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