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때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막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때 많은 남자들을 겪을 수 있었다.

첫번째로 기억 나는 사람은 노래방에서 잠깐 말다툼이 오가다가 노래방 티비를 주먹으로 치고 마이크를 바닥에 던진 1살 연상이었다. 사장님은 씨씨티비로 보시곤 놀라서 우리방에 들어오셨다. 나는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가 헤어졌다.

두번째로 기억 나는 사람은 밸런스에 집착하는 동갑이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같이 걸을때 보도블럭 선 밟으면 안되고 발 맞춰야하는 정도였다. 유식하고 개념 있어서 좋았는데 분식집에서 7개씩 나온 고기만두와 김치만두는 번갈아가면서 먹어야하고 각자 3개씩만 먹고 고기만두 1개, 김치만두 1개 남겨야한다고 고집부리는 모습에 헤어졌다.

세번째로 기억 나는 사람은 집착이 강했던 동갑이었다. 분명 학원에서 앞으로 2시간 수업이라고 연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에 부재중 60몇을 찍었었다. 그러고는 남자랑 있었는지 뭘 어쨌는지 어떻게 아냐며 나한테 화내는 모습을 보고 헤어졌다.

네번째로는 연락이 없던 2살 선배였다. 연락도 만남도 너무 없어서 헤어질 때도 서로 딱한 감정 없이 헤어졌다. 헤어졌을 때 연락이 그렇게나 안되는 이유를 물었었는데 공부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은 그때 왜 헤어졌을까 의문ㅇ,...

다섯번째로는 성관계에 대해 나를 떠보던 여럿이다. 사실 한명한명 다 기억나지 않지만 "너는 청소년들끼리 관계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는 식으로 떠보며 눈치 살피던 사람들이었다. 그것보다 심한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본인들에게도 흑역사겠지 뭐. 한 번 싫다고 했음에도 계속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과는 바로 헤어졌었다. 딱히 요구하지 않아도 그냥 내가 심리적으로 불편했다. 안하면 헤어지자고 하려나? 이런식으로. 자존감이 별로 없었나 싶기도 하다.

여러 사람과 연애하면서 느꼈던 것은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이어지는 것이 좋다','세상에는 별 사람이 다 있다.' 정도였다

그리고 연인이 아니었어도 나에게 이성에 대한 가치관을 심어준 사람들이 있다.
중학교 미술시간이었다. 다들 자신의 작품에 집중하느라 반이 조용했다. 그러다가 한 남자얘가 입을 뗐다. "어짜피 한국에 살면 여자들은 한번씩 몰카 당할 텐데 정준영은 운 안좋게 걸린 것 뿐이야" 정확하지 않겠지만 이런 투로 말했다. 충격이었다. 조두순 마인드였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다른 남자애들의 동의와 장난이다는 식으로 웃는 남자애들의 대화가 놀라울 뿐이었다. 몰랐겠지만 그날 우리반 여자들은 그 순간의 수치심으로 힘들어했다. 그 자리에 내가 앉아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순간 성적 수치심이 어느 정도였냐면 서울 1호선에 나를 벗겨놓고 세워둔 느낌이었다. 정말 끔찍했다. 반에 있던 모든 남자들의 웃음 소리와 동의하는 식의 어투...지금은 왜 가만히 있었을까 후회하는 중이다.
그때 이후로 생각한 것은 "어짜피 모든 남자들이 이딴 쓰레기 같은 마인드로 살고 있다면 차라리 그냥 조건을 보고 만나는게 맞겠다"였다. 조건이 돈이 되었든 외모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인성에 기대하지 말자였다.

틀렸었다. 유니콘 같은 남자를 봤다. 그딴 남자애들과는 정말 다른 사고를 갖고 있던 사람이었다. 몇년동안 갖고 있던 내 이성에 대한 가치관이 잘못되었다는 걸을 몸소 보여준 사람이다. 이제는 새로운 이성에 대한 가치관을 안고 살아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