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끝에 있는 것은 높게 둘러친 담장이었다.
중간중간 벽돌이 튀어나온 것이
어찌어찌 발 디딜 곳도 있을 것이며
길이 끊어진 모양새도 아닌 것이
담장을 넘으면 분명 저만치 또 이어질 것이었다.

나는 차라리 벽을 등지고 앉았다.
어깨에 진 짐이라고는
세 끼 챙길 밥과 좋아하는 책 한 권 뿐이었으나
그것을 내려놓았을 때에야 비로소
얼마나 무거운 것이었는지 나는 알았다.

여지껏 벽도 넘고 담장도 넘고
기며 뛰며 수없이 걸었건만
이번만은 높고 단단한 이 벽을
도저히 오를 용기가 없는 것이었다.

어스름 내리고
쾅, 쾅 소리 이어지니
나는 이제야 잠들 수 있겠구나 했다.
이윽고 마지막 넘은 담이
넘으려다 만 담 위로 무너지고

나는 왕 울음을 터뜨렸다.
길 위에는 더는 벽은 간데없고
새로이 깔린 길이 늘어섰다.

나는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