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항에 짓푸른 이끼가 끼었다.

아이들이 구피를 키워 어쩔 수 없이 집에 두는 어항이다.
나는 그것을 집에 들이는데 관여한 것이 없다.
이런 귀찮은 것을 집에 들이는 것은 애초에 내 생각이 아니었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성화를 아내는 흔들림 없이 묵살했다.
대신 구피를 키우도록 허락했다.
강아지를 대신해 물고기를 키우고자 의도한 것은 아니다.
일방적인 묵살이 스스로도 과했다 느꼈는지
아내는 어항을 가져가라는 선배의 말에 동의했다.
살아 있는 것들이 담긴 어항을 가져오는데는
내가 관여했다.
나는 들고 몇걸음만 걸어도 어항안에서 부대끼는 비린내나는 물들이
주정을 부리듯 튀어오르는 어항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그 선택에 관여한 것은 그것 뿐이었다.
그 선배는 이후로도 연신 고맙다는 말을 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았다.

아이들은 물고기를 좋아했다.
이틀 정도.
아이들은 물고기를 키웠다.
아이들이 물고기에 쏟아 붓는 정성은
계란 후라이에 뿌리는 소금만큼 사료를 주는 일이었으며
아이들은 그것만으로도 행복해 했다.

그래서 아무런 투정을 할 수 없었다.

여과기가 막혀 물이 나오지 않을때.
어항 물이 부패해 탁하게 변할때.
죽은 구피가 물에 떠 오를 때.

먹는 밥을 제외한 구피의 생명과 관련된 모든 순간은
오롯이 나의 책임이었다.

구피의 어항이 짓푸른 이끼가 끼었다.
이끼는 하루 이들 사이에 낀 것이 아니었다.
투명한 어항에 비치던 구피들의 모습이 녹색의 장막 뒤로
가려는 것을 나는 꽤 오랫동안 모른척 했다.

하지만 결국 움직여야 했다.

물을 빼고
어항을 다용도실로 옮겨
냄새나는 물을 버리고
바닦에 깔린 모래들을 씻고
숫덩어리를 작고 등그랗게 만든
이상한 돌을 넣고.
그것들이 만들어 내는 탁한 물을 맑게 하기 위해
한참이나 물을 흘려보내며 어항과 씨름했다.

일을 끝내고 물고기를 다시 맑아진 어항에 넣고
옷을 갈아입은 뒤 샤워를 했다.

.그날 저녁 빨래를 하던 아내가 신경질을 냈다.
왜 자꾸 크고 두꺼운 옷들을 벗어서 내놓는냐는 것이었다.

나는 남자라 원래 덩치가 크니 옷은 자연히 크다.
이제 겨울이 다가오니 내가 입는 곳도 자연히 두꺼워진다.
이끼가 잔뜩 끼고 청소를 오래 하지 않은 어항을 청소했으니
옷에는 자연 어항물이 튀었을 것이고 나는 그 옷을 벗어 세탁기에 넣었다.

나는 딱히 이런 변명은 하지 않았다.

어항에는 짖푸른 이끼가 끼었다.
나는 어항을 청소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끼는 또 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