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2013년 4월 16일
인천공항 에서는 야심을 품은 두 이방인이 짙은 벽안을 번뜩이며 타지에 첫발을 내디뎠다.
명문 마다가스카르 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에드워드 셰프와 그의 조수격인 아일리에 셰프는
이탈리아 요리를 세계에 알리겠다는 포부 하나로 서울 외곽의 한 신도시에
'샤토 오블리시옹'이라는 이탈리아 양식집을 차린 것이다.


그러나 치즈와 크림에 버무린 인스턴트면은 타지에서 철저한 외면을 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는 파리만 날리는, 런던의 오후 같은, 적막만이 감돌았다.
명문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에드워드 셰프였기에 자존심이 무너질 대로 무너진 그는
돈이 아깝다며 난동을 부리던 손님에게 귀동냥으로 익힌 c~로 시작하는 욕설을
이탈리아식 발음으로 굴렸다. 그 발음은 슬펐다. 아일리에는 소리 없이 울었다.


며칠 후 샤토 오블리시옹은 오랜 적자로 말미암아 기한 없이 문을 닫게 되었다.
절망한 에드워드는 테이블에 앉아 멍때리기가 일쑤였고 이를 본 아일리에 셰프는
지중해의 파도 같은 눈물을 머금으며 에드워드에게 말했다.


"셰프 이탈리아 요리를 세계에 알리겠다고 했잖아요! 아직 끝난 게 아니에요!"


에드워드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눈을 꾹 감고 일어서서 아일리에를 다독였다.


다음날부터 에드워드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노트에는 수십 페이지에 이르는 글이 빼곡하게 자리 잡았는데
파스타의 현지화 아이디어 밎 사업 계획에 관한 내용이었다. 계획을 간추리자면,


1. 현지의 문화를 존중하고 적극 받아들인다.


2. 서비스를 강화한다.


3. 획기적인 신메뉴를 개발한다.



첫째로 에드워드가 한 일은 식당에 있는 모든 포크와 나이프를 창문 밖으로 집어던지는 일이었다.
그 대신 수저, 젓가락을 구해왔으므로, 현지 문화에 대한 존중을 실천에 옮긴 셈이었다.
에드워드와 아일리에는 두 손을 맞잡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둘째로 획기적인 배달 서비스가 추가되었다. 로스 엔젤레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서비스였다.
에드워드는 새로운 시도에 대한 노파심을 억누르고 혁신을 강행했다.
그의 혁신은 그가 습득한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새로 시작하는 것과 같았다.


메뉴개발은 최후의 난제였다. 그는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채소와,
마트에서 한 종류씩 전부 사모은 소스를 하나하나 테스트 하는 등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별 진전이 없어 휴식 겸 tv를 보던 에드워드는
'나루토'라는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나선환으로 면을 두들겨 패는 모습에 힌트를 얻어
당장 밀가루에 물을 붇고 덩어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다. 파스타는 가격이 얼마든 인스턴트면을 쓴다.
에드워드의 뇌리에는 새로운 면에 대한 구상이 몽마르뜨 언덕의 일출처럼 떠오르고 있었다.


'그래.. 중요한건 면의 탄력성이었어. 손님들은 본능적으로 그걸 안 거야!
이제 면에 대한 본유관념으로 회귀하지 않으면 안 돼, 공장에서 만들어진 면은 이미 죽은 면이야.
난 이 면에 혼을 담겠어.'


셰프의 두뇌는 치열하게 회전했고, 두 손은 미친 듯이 면을 후드려 팼다.
주방은 이미 밀가루 먼지로 가득했다. 이를 지켜보던 아일리에는
'드디어 사장님이 미쳐버린 건가.' 하는 불안감과 왠지 모를 기대감에 전율했다.


면을 패는 소리가 잦아들고, 밀가루 먼지가 가라앉자 아일리에의 눈에는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양팔을 크게 벌린 셰프의 손에 한 아름이나 되는 면이 걸려 있었던 것이었다.
에드워드의 어깨가 가볍게 떨리었고, 손에 걸린 면에는 소금기 어린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드.. 드디어.. 완성이야 아일리에, 완벽한 면이."


아일리에는 밀가루가 덕지덕지 붙은 에드워드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우리 조금만 더 힘내요!"




새로 만든 면은 예상대로였다.
삶아진 면은 탄력성과 단가에서 기존의 인스턴트 면을 압도했고
그렇게 만든 첫 번째 파스타를 젓가락으로 시식하던 두 사람은
맛까지 완벽함에 두 번째 눈물을 쏟았다. 눈물을 파스타였다.


샤토 오블리시옹의 재개점에는 2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약 1억 2000만 원을 투자해 신메뉴 개발에 힘쓴 에드워드는
이전의 파스타와는 기술의 궤를 달리하는, 이탈리아 파스타의 궁극체라 할만한 신메뉴를 개발했다.
특별한 소스로 재무장한 파스타는 치즈와 크림 없이도 완벽한 풍미를 자아냈고
풍부한 야채와 다양한 재료에도 저렴한 가격대를 형성했다.


이것이야말로 동도서기, 오리엔탈리즘을 온몸으로 간직한 이탈리아 장인의 걸작이었다.
그들의 전략은 완벽했고, 개점 첫날부터 적지만 흑자를 내고 시작했다.
손님들은 마치 늘 대해왔던 레스토랑을 대하듯 했으므로 혁신에 대한 노파심을 깨끗이 씻어주었으나
너무나 당연한 성공에 두 셰프는 오히려 담담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두 달 후 샤토 오블리시옹의 파스타 아니, 사또 반점의 자장면은
（그들은 파스타의 현지화에 따라 간판을 비롯한 전 메뉴를 한글화했으므로.）
4개월의 수련 끝에 중식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한 양춘삼씨의 용궁 반점에 밀려
가게 문을 닫고 이탈리아로 귀향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