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비케이입니다.

다음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파견을 가는 관계로

다음주 수요일에 올려야 할 분량을 오늘 업데이트 합니다.

토요일엔 제대로 올릴게요 ㅋ

잡설 않고 갑니다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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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술 한 잔 할래?




그녀는 밴을 타고 방송국으로 가는 내내 말이 없었다. 그저 한없이 창밖만 바라보고 있을 뿐. 오른쪽 손으로 턱을 괴고 어디를 보는지도 느껴지지 않는 눈빛으로 멍하게 어딘가를 바라보는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운전을 하면서도 백미러로 계속 그녀의 눈치를 살피는 것 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면 현재 그녀의 상황과 기분을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바로 나, 그녀의 매니저였어야 했다. 성은이는 한창 친구들과 어울려 다닐 학창시절을 연습실에서 하루에 열시간이 넘게 꼬박 연습을 해왔으며, 데뷔 후에는 자신의 노래를, 얼굴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다. 심지어 화장실 갈 시간까지 모자랄 정도로 열심히 달려온 그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친구와 어울릴 수 있는 시간, 친구가 아니더라도 다른 누구에게 그녀의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그룹 활동을 했다면 사정은 조금 달랐겠지만..어쨌든 지금 현재 그녀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나, 그녀의 매니저다. 그런데 나는 밖에서 활동하는 시간 외에는 그녀가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누구를 만나 뭘 하는지, 요새 기분은 어떤지 파악하려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외로웠을 것이다. 아무도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녀의 손에 스마트폰 하나만 쥐어주면 할 수 있는 스케줄 관리 따위에만 신경을 써왔었다. 난 바보같은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내가 과연 그녀의 매니저라고 할 수 있을까?
“하아...”
갑자기 그녀가 창 밖을 향해 한숨을 내쉰다. 난 그 소리에 움찔한다. 즉시 백미러로 그녀의 표정을 살폈지만, 그녀는 역시 멍한 표정 그대로다. 그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얼마나 괴로우면 모든 것을 손에서 놓은 듯한, 마치 게임을 하다가 한창 중요한 부분에서 정전이 되어 컴퓨터가 꺼진 아이의 허탈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녀는 지금...
“술마시고 싶다...”
술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일까. 분명 그럴 것이다. 하아...얼마나 괴로웠으면 술을... 술을...뭐...뭐라고???난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매우 이질적인 말에 나도 모르게 브레이크를 콱 밟았다.
끼이익!
차가 덜컹댔고, 그 안의 나도, 그녀도 흔들. 세상이 흔들거렸다.
“꺄악! 오빠! 뭐해!”
갑자기 밟은 브레이크의 여파로 운전석 앞까지 튀어나온 그녀가 나를 노려보며 앙칼진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그녀의 물음은 지금 나에게 들리지 않았다. 내 머릿속은 오로지 그녀가 술을 마시고 싶다고 말한 것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귀신을 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너...술을 마시고 싶다고 한 거야?”
내 질문에 그녀가 날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다가 날 잡아먹을 듯 째려보며 대답한다.
“그래! 술 마시고 싶다고 했다! 그게 뭐!”
그녀가 성인이 된 후 첫 술자리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나는 성은이가 말한 ‘술’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어색하게 들렸다. 그녀가 처음으로 술을 마시던 그 날, 소주 한 잔을 마시고는 바로 테이블과 입맞춤을 했었던 것이다. 술 한 잔에 주사는 어찌나 심한지...집으로 업고 가는 내내 “와!!말이다!!신난다!!” 하며 날 애먹였다. 그러고는 다음 날 절대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숙취 때문에 힘들어 죽을 것 같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술얘기를 하다니...
“네...네가 술을...? 내가 아는 너는...소주 한 잔에 가는...그런 녀석인데...??”
“쳇! 1년 전 얘기를 아직도 하는 거야? 이것 봐...오빠는 나한테 진짜 관심 없었던 거야. 오로지 수연언니 생각에 빠져 있었지...내가 일을 안 할 때는 뭘 하고 다니는지 그런 것 따위...오빠한테는 하나도 관심 없겠지. 내가 장담하는데 오늘 스케줄 끝나면 오빠 분명히 수연언니한테 달려갈거야. 내가 그걸 뭐라고 할 입장은 아니지만 말야.”
나의 무관심하게 보이는 태도에 그녀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앞으로 튀어나온 몸을 일으켜 조용히 자리에 가서 앉는다. 그러고는 다시 오른손에 턱을 괸 채 창밖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출발할게.”
나는 핸들을 다시 부여잡고 엑셀을 밟으며 나 자신에게 물었다.
그랬었나, 내가. 남들이 보기에, 아니, 남이라고 할 수 없는 성은이가 보기에도 수연이가 내 세상의 전부라고 느껴질 만큼 나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걸까. 생각해보면 수연이는 나의 ‘모든 것’이었다. 무슨 일을 하던 그녀와 모든 것을 결부시켜 생각했다. 내가 매니저라는 직업을 갖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수연이를 위해서였다. 인디밴드 보컬을 하고 있던 나에게는 가진 것이 없었다. 노래하는 것 외에는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에게 가진 것이라고는 밴드 친구들과 자그마한 연습실, 그리고 라꾸라꾸 침대가 한 쪽 구석에 펴져있는, 바퀴벌레가 득실거리는 작은 단칸방과 낡은 일렉트릭 기타 뿐이었다. 난 수연에게 뭐든지 해주고 싶었다. 세상 모든 것을 주진 못할지언정 다른 커플들이 기본적으로 주는, 예를 들면 커플링 같은...그런 것들은 그녀에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밴드를 그만뒀다. 한 때 내 밥이었고, 옷이었고, 인생이었던...다시 말해 나의 모든 것이었던 음악과 기타를 수연이와 바꿨다. 수연은 자신 때문에 음악을 포기하려 하는 나를 만류했지만, 난 나의 행복보다는 그녀의 행복을 원했다. 음악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줬지만 돈은 만들어주지 못했고, 그녀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매니저라는 직업을 택했다. 여러 번의 기획사 오디션을 통해 얻은 인맥으로 인해 어렵지 않게 매니지먼트의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선택은 그녀를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여러 음악을 빠르고 쉽게 접할 수 있었고, 음악성을 알아주는 기획자를 만날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도 가질 수 있는 직업이었다. 물론 지금은 실낱같은 ‘헛된’ 희망은 버렸고, 이 삶을 담담하게 받아들였으며,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어쨌든 내 삶이었던 음악마저도 그녀를 위해 버렸다. 다른 것들을 더 말해야 무엇하랴, 입만 아프지. 다시 말하면 수연이 내 옆에 있을 때 나는 그녀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녀는 내 중심이었고, 삶이었으며, 신이었다. 하지만 어제 내 삶이라고 생각했던 그녀는 나를 떠났다. 그것도 마치 일본도의 칼날처럼 아주 깔끔하고 매끄럽게. 결국 나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은 셈이 되었다. 그녀가 날 떠나자 내 마음은 사막의 허허벌판처럼 황량해졌고, 그제서야 주위가 보이기 시작했다. 성은의 저 말도 어제 들었다면 크게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성은의 말이 매우 큰 의미로 다가왔다. 너무 슬펐다. 그녀가 날 떠났다는 사실에. 한편으로는 미안한 감정이 불쑥 솟아올랐다. 그녀 외에 다른 것들을 신경쓰지 못했다는 사실에.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했다. 내가 수연에게만 눈을 고정시키고 있었을 때 내 주위의 사람들은 나에게 얼마나 서운했을까. 더욱이 내가 가장 신경쓰고 보살펴야 할 성은은 나에게 얼마나 서운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을까. 젠장...나는 정말 못난 놈이다.
수연을 잃은 슬픔과 내 삶에 대한 허무함, 주위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성은에 대한 미안함 등이 뒤범벅이 되어 내 눈시울을 붉히고 코끝을 시큰하게 만든다.
나는 핸들을 틀어 갓길에 차를 댔다. 차가 멈춰서자 백미러를 통해 나를 빤히 바라보는 성은. 그런 그녀를 향해 난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오늘 술 한 잔 할래?”
“응?”
“스케줄 다 끝나면 오늘 나랑 술 한 잔 하자고.”
내 말이 의외였는지 그녀는 내 얼굴만 바라보고 있다. 그러더니 갑자기 ‘풋’ 하고 웃는다.
“나 술 생각보다 잘마셔～오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그래서 오늘 얼마나 늘었는지 확인해려고.”
의외라는 듯 알쏭달쏭한 얼굴로 날 쳐다보는 그녀. 그러더니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말한다.
“뭐...좋아. 어서 수연언니한테 허락 받아. 나중에 혼나지 말고.”
그녀의 대답을 듣고난 후, 나는 다시 앞유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내렸다.
“...그러지 않아도 될 거다, 이젠.”
“뭐라고?”
“아니...아무것도 아니야. 출발한다.”
나는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고 엑셀을 서서히 밟아 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Written by 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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