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보든 네 생각이 난다.
주홍글씨처럼
네 모습, 네 기억, 네 목소리 모두
나를 좇으며 괴롭힌다.

가끔씩 넌 나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그럼 난 현실에서 벗어나 상상의 너와 대화를 하기 시작한다.
그게 수업시간이든 영화를 보든 밥을 먹든 언제든간에.

이건 꽤 곤욕스럽다.
자꾸만 나를 현재가 아닌 과거에 얽매여 발을 묶어 놓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데
나는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다.
너무 달콤한데 너무 쓰다.

물론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니다.
네가 나를 베기 위해 했던 말, 우리가 다퉜던 싸움, 헤어짐 등
생각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다.
그저 누군가 나도 모르게 버튼을 탁 누르면
영사기가 탁탁 돌아가면서 우리의 추억이 상영되기 시작한다.
난 그 영화를 보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본 걸 또 보는 건데도 늘 새롭고 늘 즐겁고 늘 아프다.

그 중에 내 발에 매어있는 제일 큰 족쇄는
나만큼 널 사랑할 남자는 없을거야
라는 말이다.

저주같은 말이다.
내가 널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다는 달콤한 속삭임과 동시에
나말고는 다시는 경험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저주의 말

나는 저 말이 제일 무섭고 무섭고 무섭다.

미스터 션샤인을 보면서 제일 많이 한건 네 생각이었다.
신분의 차이, 이방인, 슬픈 끝맺음
모든 슬픈 말들이 다 너의 얘기 같았다.

다만 다르다면 둘은 극복했지만 우리는 극복하지 못 했다는 것 정도.
아무래도 드라마와 현실은 많이 다르니까
라는 되도 않는 위안을 하면서.

너는 나의 첫사랑이 아니었지만
평생 잊혀지지 않는 것이 첫사랑이면
너는 나의 첫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늘도 나는 어두컴컴하고 아무도 없는 상영관에
홀로 앉아
똑같은 영화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