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대로 그들은 다음날 아침 속속들이 도착하였다. 참 사람들이 많기도하였다. 탤런트들만 오는 줄 알았던 문래는 많은 사람들 수에 놀라였다. 촬영장비들을 들고 높다란 장대를 들고 하는 사람들을 총 합쳐 100명은 되보였다. 사람들 눈에 띄지않는 곳에 멀찍이 떨어져 구경하던 문래는 탤런트들을 보고 기가 차서 말이 안나왔다.

'세상에.'

한 여자 탤런트가 새까만 안경을 쓰고 배꼽이 훤히 드러나보이는 윗도리에 팬티인지 바지인지 구별이 가지않는 청바지를 입고 아무렇지도 않는듯 웃고 있는 것이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세상이 그리 이리도 바뀌었는가.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순간 문래의 이마에 실핏줄이 불끈 섰다. 그들은 너무나도 태연하게 종이쪼가리를 한장 들고 창녕 조씨의 혼이 깃든 300년 역사의 종갓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문래는 조심조심히 따라갔다. 촬영을 극구 반대하던 자신이 탤런트구경에 한창인 사람들 무리에 끼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하고 걱정했기때문이다. 문래는 먼발치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사람들이 문래의 집에 들어갔다. 참으로 많은 인원이 안에서 밖에서 촬영을 하고있다. 이장은 웃으며 그들을 반기더니 좋아 죽을려고 한다. 문래는 참 그 모습이 꼴시렵다고 생각했다. 특히 안경쓴 메뚜기같이 생긴놈은 뭔 말이 그렇게 많은지 재잘재잘 종알종알 지치지도 않나보다. 시끄러워서 조상님들이 노하시면 어쩌나 문래는 걱정 또 걱정 뿐이다.

'마누라는 어디 있을까?'

불현듯 마누라 옥분에대한 죄책감이 들어왔다. 문래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나 싶다. 문래는 그만두고 마누라부터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뒤돌아서려다 다시 돌아선다.

'그것도 다 저놈들 때문이야.'

촬영한다고 안했으면, 촬영한다고 자신의 집을 선택하지만 않았으면, 마누라가 서울에 간다고 떼쓰는 일 따위는 없었을것이다. 탤런트들이 오지만 않았어도 저놈들만없었어도 아무일이 없었을 것이다. 순간 문래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저 놈들이 내 마누라를 울린거야!'

문래는 극에 달한 분노를 삭히기 위해 천천히 숨을 내쉰다. 숨을 아무리 들이마셔도 분노는 사그라들질 않는다. 저 놈들을 당장 내집에서 쫓아내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 순간에도 메뚜기는 지치지 않고 입을 놀려대고 있었다. 그때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팬티같은 바지를 입은 여자가 메뚜기같이 생긴 남자를 나무란다. 그 장면을 보고 문래는 또 경악한다. 어떻게 여자가 하늘같은 남자한테 뭐라고 할수 있는지? 할수만 있다면 저 년의 주둥이를 꿰매버리고만 싶었다. 문래는 둘러보다가 적당한 굵기와 길이의 나무가지를 하나 발견한다. 조심스레 흙을 털어내고 나뭇가지를 있는 힘껏 꽉 쥐었다. 조상님을 화나게 하면 더이상 가만있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장네가 떠나고 나서 쥐방울만한 늙은남자가 재잘대더니 왁자지껄 떠들며 어딘가로 향한다. 주민들은 신기해하기도 지쳤는지 논에 나가 흩어졌다. 탤런트 따위를 보고 환장하는 것은 젊은이들이지, 노인들은 아니다. 홀로 남은 추격자는 조심조심히 그 뒤를 밟았다.

그들은 전나무 숲으로 향했다. 아름다운 전나무 숲에는 역시 창녕 조씨의 역사와 유서가 담겨있는 곳이다. 조상님들은 이 숲에서 태어난 자연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특히 여기에는 조상님의 생가가 보존되어 있었다.

'조상님들에게 해코지라도 한다면...'

또 도착하자마자 메뚜기가 쉴새 없이도 떠든다. 아까도 떠들더니 지금도 쭈욱 떠드는 것이다. 나머지는 뭐하러 왔나 싶을정도로 자기 할말만 한다. 그때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여자가 끼어들더니 뭔가 발견한듯 놀라며 조상님의 생가로 향한다. 뭐라뭐라 지껄이며 생가 앞에서 요염한 포즈를 취해보이고, 나머지는 왁자지껄 하며 너도 나도 요염한 포즈 취하기에 여념이 없다. 문래는 더이상 분노를 참을 길이 없었다.

"야이 새끼들아!"

"꺄아아아악!"

제지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문래가 여자의 허리를 나뭇가지로 있는힘껏 강타한것이다. 특히나 여자의 상체가 길어 맞추기가 쉬웠다. 여자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허리를 감싼다. 여자의 매끄러운 허리가 피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주위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뭐야 이게 시발!!"

총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이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해져서 앞으로 튀어나온다. 일제히 장비들의 빨간 불이 꺼지고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문래를 쳐다본다. 여자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진흙탕속을 뒹굴었다. 온 몸에 피며 진흙이 범벅이다. 그제서야 사태를 파악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사람들은 여자를 부축하며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경찰을 부르는 모양이다.

"야이 새끼야 너 뭐야!"

대가리에 피도 안마른 녀석이 육십먹은 노인에게 새끼란다. 문래는 기가찼다.

"너야 말로 뭐야 이 새끼야!"

나뭇가지를 휘두르려는 찰나 나뭇가지를 제지하는 손이 있었다.

"할아버지 그만하시죠?'

근육질의 남성이 화가난 얼굴로 물었다. 문래는 지지않고 대답했다.

"야이 새끼들아 조상님 앞에서 벌거벗고 뭔짓거리들야 이 쌍놈새끼들아 엉?
너네 조상님앞에서 이럴수가 있느냐구?"

"야이 시발새끼야 조상이고 나발이고 안꺼져 이 시발새끼야?"

일주일 밥줄을 망쳐버린 피디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쏟아져 나온다. 그는 돌아가면 국장에게 시말서를 제출해야 할것이다. 그는 누런 메리야스 한장에 낡은 작업복바지를 걸치고있는 이 앙상한 노인에게 엄청난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순식간에 스태프들이 몰려와 노인을 붙잡았다. 그 때 요란한 소리가 울리더니 경찰차들이 속속이 도착했다. 경찰차 중에는 앰뷸런스도 한대 끼어있다.

"아유 시발 재수가 없으려니까!"

"피디님, 참으세요..."

"누나, 괜찮아요? 효리누나!"

이효리가 정신을 잃은채 앰뷸런스에 태워지고 있었다. 경찰들이 몰려와 노인의 손에 수갑을 채우려고 한다. 이 앙상하고 볼품없는 노인은 부끄럽지 않았다. 조상을 지켜낸것만으로도 이미 그는 뿌듯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이 작고 마른 손으로 창녕 조씨를 지켜낸 것이다.

경찰이 수갑을 꺼내며 알고싶지도 않은 말을 읊조린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수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수 있습니다. 모든 진술은 법정에서..."

그때 피디가 세차게 자신의 머리를 헝클며 소리친다.

"아오 시발 조씬지 뭔지 하여튼 좆같을라니까 재수가 없어! 이게 다 뭐냐구!"

순간 이 앙상하고 불쌍한 노인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잘못 들은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분명히 그 작고 볼품없는 귀에 똑똑히 들려왔다. 창녕 조씨를 모욕하는 그 말이 선명하게 들려온 것이다. 도저히 용서할수 없는 말을 들은 그의 몸에서 초인적인 힘이 뿜어져나와 경찰을 밀치고 피디를 향해 달려든다.

"어어?? 어어?"

사람들이 놀란눈으로 묵직한 돌을 들고 달려드는 노인을 본다. 노인은 순식간에 피디의 몸에 올라타 연거푸 그의 머리를 가격한다. 불쌍한 그의 팔에는 그럴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아보였다. 노인은 약간의 희열까지 느끼는 듯하면서 미친듯이 피디의 머리를 찍는다. 정신을 잃은 피디의 머리에서는 피가 줄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때 노인의 몸을 총알이 뚫고 지나간다. 아마도 신입 형사였을거라고 생각하며 노인은 비참하게 쓰러진다.

"꺄아아아아악!"

여자들은 울부짖으며 입을 가리고 눈물을 뚝뚝흘린다.

"이사람들도 태워! 어이 거기 앰뷸런스!"

문래를 제외하고는 사람들이 참으로 정신이없어보였다. 하지만 그 순간 그는 평온했다. 그는 조상님들의 혼이 깃든 전나무 숲의 온기를 가만히 느껴보며 죽기직전 마지막 하늘을 보았다. 하늘이 어지럽고 사람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조상님의 소리는 똑똑히 들려왔다. 조상님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도 들려왔다 ...

문래는 숨을 거두기전 마지막 한마디를 토해냈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은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