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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혈 여대생 모모] 31.








주변은 고요했다.








어느새 안개까지 껴있는 공원의 밤공기는 매우 쌀쌀했고,









공원 주위를 어스름하게 비추던 달빛도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은은한 미광이 나와 모모가 앉아있는 벤치를 비출 뿐이었다.








모모는 대답이 없었다.








약간은 놀란 표정으로... 그리고 약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내 진지한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알 수 없는 고요속의 긴장감...









무슨 말이든 해주길 바랬다. 아무말이나...








지금의 이 침묵은 내 고백 자체를 정면으로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녀의 눈빛이 나를 무력화시키고 있었다.









미친듯이 쿵쾅거리는 나의 심장박동이 가슴을 뚫고 나올 것 같다.








어느새 내 이마엔 송글송글 땀방울까지 맺혀 있었다.








나는 마른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무슨 말이든 꺼낼 심산으로 입을 열었다.








....그 때, 모모의 떨리면서도 분명한 목소리가 어둠을 타고 내 귓가에 전해졌다.









모모 : .....오빠, 미안해....









........미안해... 라니. 온몸의 힘이 쭈욱 빠졌다.









....분명 거절의 뜻이었다. 미안하다라는 그 말의 의미...








.....그 것밖엔 생각할 수 없었다. ...풋...








생각 못했던 것도 아닌데 뭘.... ...오히려 이 말을 듣기 무서워서 고백을 미뤘던게 아니었나.








.....하아~ 정작 결과를 알게 되니까 마음은 편하네... ㅋ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내가 말했다.









나 : 미안하긴... 내가 더 미안해. 거칠게 굴어서....










모모가 조심스레 내 눈빛을 바라본다. ...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기위해 얼굴 근육을 풀었다.








편안하게... 그녀가 부담을 느끼지 않게... ........젠장... 자꾸만 눈시울이 붉어진다....








졸라 웃길거야 지금 내 표정.... 조용히 내 얼굴을 바라보던 모모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모모 : 민우 오빠. ....내 이야기 들어볼래?








나 : ......이야...기?









그녀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자세를 고쳤다.








벗어놓은 구두를 천천히 신고, 다리를 모아 앉았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옛날옛날의 동화를 읽어주듯,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내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모 : 나... 단 한번... 남자를 사귀어본 적이 있었어.

내가 17살이었을 때... 나보다 10살이 많은 남자였거든. ...자상하고...

친절하고...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이해해 줄 것만 같았어. ......헤헤..

꼭 민우 오빠 같은 사람이었네. 어쨌든, 난 내게

너무나도 잘해주는 그 사람한테 마음을 열었어.....

그리고 곧 우리는 연인이 됐지.

그 사람은 회사원이었는데, 항상 회사일이 끝나면

나와 함께 차를 타고 도시의 밤거리를 자주 구경했었어. ...

일 때문에 피곤했을텐데 그 사람은 내색조차 하지 않았지...

그 사실에 난 굉장히 행복해했어.

나를 위해 이렇게 애써주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구나... 라고 생각했거든.

지독한 따돌림 때문에 지쳐있던 나는, 엄마가 내 곁을 떠난 이후로 처음..

행복이라는 걸 느꼈었어. 그렇게 우리 사이가 깊어갈 무렵...

갑자기 그에게서 전화가 왔어. ......이제 그만 만나자고. 더 이상 나에게 관심이 없어졌다고....

난 이상하게 생각했지. 느닷없는 이별통보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그에게 찾아갔어..

어떻게든 따지고 싶었으니까..... ...그의 집으로 무작정 달려간 나는 그의 집 창문너머로

집안의 광경을 목격하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 ......아내가 있었거든, 그 남자...

나와 사귀기 전부터 결혼한 아내가 있었어....

두살 된 아들까지.... 그 자리에 주저 앉아서 펑펑 울었어. ...

내 자신이 죽고 싶을정도로 비참하고 한심해서 견딜 수 없었으니까...

사실 난.... 그 사람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찾았던 건지도 몰라.

상냥하고 자상한... 원래 내가 가지고 있어야 했던 '아버지'의 그 모습을... ...

그 모습을 쫓아 바보같이 휘둘리기만 하다 버림받았지...

내게 있어서 남자라는 건... 딱 3가지야.. ...우리 아빠같은 인간...

그리고 엄마와 같이 지냈던 그 집에서 만났던 쓰레기들... ...

마지막으로 얼마 되지 않지만... ....오빠같이 좋은 사람이야.

하지만 난 너무 겁나. ....또 다시 나의 누군가에게 아버지의 모습을 강요할까봐...

그렇게 '아버지의 상냥함'에 휘둘리다가 버림받게 될까봐.... .....새로운 시작 때문에...

현재에 나를 대해주는 그 자상함들을 잃게 될까봐... 그게.... 너무 겁나.










모모가 이야기를 마쳤다. 나의 머릿속이 윙윙 울리면서 멍해지고 있다.








....신은 어째서 모모에게 고통만을 안겨주고 싶어했던 걸까...








이렇게도 여리고 상처받기 쉬운 마음을 부여하시고는... ...왜









그렇게 잦은 고통으로 아프게 만든 걸까...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내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가 피가 나는지도 모른 채, 나는









울분에 치여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굳게 마음을 다잡은 내가 말을 이어나갔다.








나 : 모모, 내가 예전에 말 했었지? 그 모든 우연의 조건을 충족시켜 우리가 처음 만나게 된 거... ...

신이 심심해서 장난쳤던 거라고........만약 예전이었다면 난 그 신을 저주했을거야.

온갖 욕지꺼리를 다 내 뱉어내면서 너한테 고통만 주는 그 신을 증오하고 또 증오하면서 말이지........

근데, 이젠 신에게 감사할래.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어줘서... 나에게 모모,

너라는 여자를 알게 해준 것에 대해서 말야.

그리고 나로 하여금, 너의 고통을 모두 지우게 하는 큰 임무까지 줬으니... 더더욱

감사해야겠지? .....신은 너에게 아픔을 준 대신, 나를 너와 엮어줬어.

이제, 너한테 남은건... 뺏겨버린 행복을.... 오직 너만을 위해 만들어진 행복을...

되찾아오는 것 뿐이야... 내게서 네 아버지의 모습을 찾게 하지 않겠어. ...

그렇게 방황하게 가만히 보고 있지만은 않을거야. 오로지 내가....!! ....

나로 인해 행복한 너를 만들어줄거야. ...겁내지 마, 모모야..

니가 겪어온 남자와 내가 다르다고 말하지 않을게. ...

행동으로 보여주겠어, 너를 슬프게한 그 쓰레기들과... 내가 다르다는 걸... 증명해보이겠어.

제나 네 곁에서... 니가 필요할 때마다 니 곁에 서서... 널 위한 남자가 되어볼게. 나....

선택해줘.








........미쳤었다. 어디서 저런 말이 생각났는지...








....애초에 내가 생각했던 로맨틱 프로포즈는 다 어디갔는지;;








지금은 머리속이 새하얄 뿐이었다.








그저 하얀 캔버스처럼 백지화 되어있는 내 머리속에서 순간순간 튀어 나오는 단어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언어였다 정신을 차린 나는 달아오르는 창피함 때문에 고개를 숙여버렸다.








차마 모모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정도로 부끄러웠다.








자신있게 프로포즈를 해놓고 고개를 숙이다니...









아차, 싶었지만 차마 고개를 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귀까지 빨개져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내 뒷머리를 쓰다듬는 손이 느껴졌다.








살며시 고개를 들어보니 모모가 내 얼굴쪽으로 다가와 걱정스런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나는 다시 얼굴이 빨개진 채 고개를 숙이려했다.









...그러자 모모가 다정한, 그러면서도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모 : 아까 그 자신감은 어딜가고 이래... 괜찮으니까 고개들어.









나는 고개를 살짝 들어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얼마나 울었는지 화장이 이미 다 지워져있었다.








내 셔츠의 가슴부분을 내려다 봤더니 그녀의 립스틱과 색조 화장이 모두 묻어나 있었다.








...내가 자신의 화장자국을 바라보자, 그녀도 부끄러워 졌는지 내 턱을 잡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모모 : ...보지마... 부끄러워..;;









나 : ....니 얼굴 화장도 다 지워졌는데 뭐.









모모 : ....우;; 얼굴도 보지마 그럼;








나 : ....싫어. 볼래.. 화장 지워져도 훨씬 이뻐.









나는 내 턱을 잡고 있던 모모의 손을 잡았다.








가늘게 떨리는 그 손으로 따스함이 전해져왔다.








모모가 살폿 웃으면서 내 손으로 부터 자신의 손을 갈무리했다.








내가 가만히 그녀를 응시하고 있자, 그녀의 입술이 다시 열렸다.








모모 : ...대답... 해줘야겠지?








나 : ....니가 싫으면 나중에 해줘도 돼. ...부담 가질 필요도 없어.

니가 친한 동생으로 남고 싶다면, 그게 너한테 행복을 주는 길이라면 난 주저없이 받아들일거야.









모모 : ...나, 한가지만 물어봐도 돼?









나 : ....뭔데?








모모 : ....동정이야? .....사랑이야?








나 : .....








모모 : 오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니까... 날 동정해서 이러는 거라면... 나 차라리 그냥 이대....








나는 그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일갈하며 소리쳤다.









나 : 동정으로 시작한 사랑. .....지금은 순수한 사랑만 남았어.









모모 : ....








모모는 눈을 살며시 내리깔며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나는 가만히 그녀의 행동을 주시했다. 느린 동작으로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던 그녀가 다시 말했다.









모모 : ....핏.. 너무 솔직해...








나 : 속일 생각은 없어.... 지금까지 내 마음을 속여왔던 것도 미안하구...








모모 : .....속인게 아니잖아... 표현만 안했던 거지...








나 : ....그렇게 생각해주면야 고맙지...








모모 : 오빠... 그 말 기억나? 오빠가 늘 해줬던 그거...








나 : ...어떤거?








모모 : 행복해 질 수 있냐는 거.... 나한테... 했던 그말...








나 : ...아... 응. 기억나.








모모 : ....나 처음엔.. 악에 받쳐서 대답했었는데... 이제 알 것 같은걸.








나 : .....








모모 : ......나... 행복해질 수 있을 거 같애.








모모는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내 오른손을 붙잡았다.








...조용히 그녀가 이끄는 대로 가만히 응해주었다.








모모 : ....따뜻해... 오빠 손은 정말 따뜻한 거 같아.








나 : ...마음이 차가운 사람은 손이 따뜻하다던데;








모모 : 오빤 예외야...








나 : ....대답, 더 기다릴까?








모모 : ...아니. 기다릴 필요없어. 지금 할거야.








나 : .....








모모 : ....모모... 행복하게 해줄 자신... 있는거지?








나 : ....!!








모모 : .......모모... 다른 사람들이 모모한테 한 것 처럼... 울리지 않고... 그렇게 언제나...

곁에서 행복하게 해줄 자신.... 정말 있는거지?








......믿을 수 없는 현실... 그녀가 내게 갈망하고 있었다.







자신의 행복을 책임져 줄...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









그 '위대하고 존귀한 존재'를 나에게 임명하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건성으로 대답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최대한 진지하게 말했다.








나 : ....있어.









모모 : .....








내 눈을 말없이 쳐다보고 있는 모모의 젖은 눈동자.... ....








난 그것이 내 가슴을 꿰뚫어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짓을 걸러내는 진실 유도의 힘... 그녀는 그런 눈빛을 내게 보내왔다. .....








나는 떳떳했다.








그녀 앞에서... 떳떳하려 노력했고, 떳떳했다.








적어도 그녀에 대한 내 마음... ....








세상이 다 변해도 이 것만큼은 변치 않으리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내 진실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모모 : ....그럼 나..... ....맡길게... 내 행복을.... 오빠한테...

나 기대볼게..... ......오빠, 받아들이겠어.









[혼혈 여대생 모모] 32.








우리는 공원 벤치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며, 어느새 모모의 집앞까지 와버렸다.








나 : ....벌써... 다 와버렸네;;;








모모 : 가깝잖아 그 공원... 우리집에서;;








나 : ...으으... ㅠ_ㅠ 헤어지기 싫어...








모모 : 첫날부터 왠 어리광이야... 바보 ㅎ_ㅎ








나 : ....친한 오빠에서 그렇게 원하던 남자친구가 됐으니까 어리광이지;








모모 : 이제 쭈욱 만날 수 있는데 뭐... ;








나 : ...그래; 벌써부터 이렇게 애같이 굴면 안되지;

그럼 모모, 잘 들어가. ...오늘, 절대 잊지 못할거야.








모모 : 응 오빠도 조심해서 들어가~








내게 손을 흔들어 보인 그녀는 몸을 돌려 맨션의 현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자리에서 지켜보던








나는, 그녀가 완전히 들어간 다음 발걸음을 집으로 옮길 수 있었다.









나 : .......훗... 후후후훗...









내 발에 감각이 없었다.








그냥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느낌... 걷고 있는건지 달리고 있는건지,








날아가고 있는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다. 나는 날고 있었다.









끝없이 이어진 도로 위를 나는 죽어라 날고 있었다.








나 : ...으하하...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웃어제끼며 밤늦은 거리를 날았다.








가슴이 터질것 같이 부풀어 올랐다.









기분이 너무 좋아 시키는 일은 무엇이라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너무 좋았다 ㅠ_ㅠㅋ








모모가 나를 받아주다니.. 내가... 모모의 남자친구가 되다니.. 꿈만 같았다;;;








아니, 꿈이면 안되지... 절대로 깨면 안돼 이건...








...현실이어야 한다! .....으헤헤;;; 으헤헤헤헤헤헤헤헤;;;;








나는 집에 도착할 때 까지 입을 다물지 못하며 웃어제꼈다.








다음날, 학교에서도 일대 소란이 일어났다.









...과방안에서, 친구들에게 모모와 연인이 된 사실을 말해버렸기 때문이다.








나 : ...그날은 아마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을거야~

아마 거리의 모든 새들은 지저귀며 축복했을거고~ 또 거리의 모든 자동차는 막힘없이 통행했겠지?

거리의 모든 사...








친구 1 : 이런 미친;;; 얌마! 밤에 고백했었다며! 근데 무슨...









친구 2 : 야야야; 근데 진짜 진짜야? 진짜 너 모모랑 사귀는거?








나 : 임마들아.... 속고만 살았냐... 그렇다니까








태석 : 새X 어제 결국 해냈구만? ...축하한다. 한턱쏴라.









나 : 야야! 한턱이 뭐냐!! 내가 진짜 오늘 가진돈 다 털어서라도 쏜다.









친구 3 : 오! 좋아임마! 그 자세야!! ...그래, 얼마 가지고 있냐!








나 : 2천 7백원









친구 2 : ...죽어라 이자식아!!









대부분의 녀석들이 아낌없는 축하를 해주었다.









그 동안 모모를 생각하며 힘들었다는 걸, 이놈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물론 장난섞인 욕설을 퍼부으며;;; 모모가 너무나 아깝다고 떽떽거리는 놈들도 많았지만 ㅋ ....









그마저도 행복했다. 그렇게 행복에 젖어있을 때, 과방 안으로 하은이가 들어왔다.








하은 : ....아...








하은이는 들어오자 마자, 내 옆에 앉아있던 태석이와 눈이 마주쳤다.








태석이도, 하은이를 힐끗 바라보고는 이내 그녀를 의식하며 눈을 돌렸다.









나 : ...아, 하은아. 안녕 /;;;









분위기가 묘해지는 느낌이 들자, 내가 먼저 하은이에게 아는체를 했다.








하은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과방에 들어왔다.








다른 애들 역시도, 태석이와 하은이의 현재 관계를 알고있는지라









덩달아서 숨을 죽이고 그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은 : ....무슨 이야기들 하고 있었어?








나 : 아아~ 무슨 이야기냐면! 내가 사실 모모랑 사...








태석 : 민우가 모모랑 사귄댄다.








....;;;








태석이가 갑자기 내 말을 끊고 들어왔다.








감정섞인 그 냉랭한 목소리로 하은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쏘아붙인 것이다.









하은이는 태석이의 그 말을 듣고, 일순간 그자리에 멈춰 서버렸다.









그녀는, 양 손을 꽉 쥔채 가늘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 ...왜 저러지;;;








입버릇처럼 나에게 모모랑 잘해보라고 응원해줬던 그녀인데,









제일 기뻐해줄 것 같은 하은이의 반응이 오히려 이상했다.








태석이는 그런 하은이의 반응을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차가운,








그리고 한편으로는 측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이윽고, 떨리는 그녀의 입술 사이로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하은 : 추, 축하해 민우야... 결국 해냈네?








억지로 웃는듯한 하은이의 저 미소. ...그리고 그런 하은이를 바라보는 태석이의 씁쓸한 눈빛...








알 수가 없었다. 그 두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그 어떤 것을...








- 드르르륵...








태석이가 의자를 밀쳐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멀뚱히 서있는 하은이의 곁을 스쳐 지나가 과방 출입구쪽으로 걸어갔다.








하은 : ....태석아...








태석 : ........









하은이가 고개를 돌려 태석이의 뒷모습을 보았다.








출입구로 나가려던 태석이가 잠시 멈칫하며 그녀의 부름에 응했다.








하은 : ....이해... 해줄 수는 없니?









태석 : .....








하은 : 이런말 할 자격 없지만... ....그래도... 나, 이해해주면 안돼?








태석 : .......잔인하다, 너.









하은 : ...태석아...








태석 : ....우정을 택하고 싶어서 어렵게 결정했어. ...그러니 자꾸 자극하지 마...

안그래도 미쳐버릴 거 같으니까.








하은 : .....








태석 : .....그게 아니라면 너도 민우처럼 도전해보던가. ..

혼자 속앓이만 하면 누가 알아주기라도 한대?








차가웠다. 내가 알고 있는 내 친구, 태석이가 아니었다.








언제나 오버의 삶을 살던, 감정 풍부한 저 녀석이 저렇게 차가운 말투도 사용할줄 알았었나...








얼어붙어버린 과방 안의 분위기에 짓눌린 채, 나와 친구들은 그 두사람의 언쟁을 지켜보기만 했다.









하은 : ...미안해... 정말....








태석 : ...미안해 하지마. ...아니, 그렇게 미안하면..... 잘되는 모습을 나한테 보여주면 돼. .....

네 선택이 옳았다고 내가 인정할 수 있게.....

그러니까 혼자 끙끙대면서 죽을상 하고있지 말란말이야, 빌어먹을!!!!








하은 : .....









- 쾅!!.....








태석이는 거친 동작으로 출입문을 닫으며 나가버렸다.









그 자리에 멍하게 서있던 하은이가 고개를 푹 숙이며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나 : ....하은아....









하은 : .......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은이에게로 다가갔다.








하은 : ...오지마! ...다가오지마.... ....내 곁에 오지말란말야!!








......찢어놓는 듯한 그녀의 외침이었다.








무안해진 나는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가늘게 떨리는 그녀의 어깨너머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은 : ....모모랑 잘된 거 축하해... ...그러니 이제 나 따위는 신경쓰지말고 모모에게 잘해줘...








나 : ...하은아... 대체 왜.... 무슨 말이야 그게.... 난 도무지...








하은이는 대답없이 과방을 나가버렸다.








순식간에 얼어버린 분위기를 감당하지 못한 채








나는 그녀가 나가버린 과방의 출입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친구 한놈이 내게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었다.









친구 1 : ...대충 흘러가는 분위기를 알겠다. 태석이한테 얼핏 듣긴 했는데...








나 : ...뭘? ;;;; 난 도대체가...








친구 2 : 이자식;; 하여간 눈치는 졸라 없다니까. 야, 딱보면 모르겠냐?









나 : ....?;;









친구 1 : .....너 하은이랑 중학교 동창이었다며?









나 : ...응;;;;








친구 1 : 하은이가 너 좋아하는 거 눈치 못챘냐?








나 : ....에에에에에엑???








....;;;;;;;;;;;









친구녀석의 말을 들은 나는 놀라 나자빠질 수 밖에 없었다.










[혼혈 여대생 모모] 33.









수업내내 머리가 멍했다.








과방 안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오전 수업 내내 행복한 오로라를 발산하고 있었는데;;;;;








과방에서 태석이와 하은이의 말다툼을 목격하고,








뒤 이어서 친구 녀석의 폭탄과도 같은 멘트를 들어버린 나는 넋나간 인간처럼








동공이 풀린채 어벙벙하게 수업에 임하고 있었다.










나 : .....하은이가 나를.... ...하은이가 나를.... ...말도 안돼...

하은이가 쭉 마음에 품고 있었던 사람이.... 나였다니...

태석이와 하은이가... 깨지게 만든 근본적 이유도... 나였다니이이이...








계속해서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중이었다;;;








...태석이와 하은이도 이 수업을 같이 듣지만, 둘 다 결석이다;








내 옆에 앉아있던 윤희누나가 내 어깨를 툭툭치면서 말을 걸어왔다.








윤희 : 야, 야야;;; 정신 좀 차려봐; 아까부터 뭘 중얼중얼 대는거야?;








나 :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윤희 : ...그건 그렇고, 너 좋은소식 들리던데? '-'）+








나 : ....좋은 소식... 아... 좋은 소식이긴 한데... 갑자기 부담감이...








윤희 : 킥킥킥... 그래? '-'; 암튼 축하해 이 바보야 ㅋ 결국 모모랑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됐구나?








나 : ...휴우~ 네; 그건 정말 미치게 좋은데 말예요 누나...








윤희 : ...그런데?








나 : ...하아~ 사실은...








나는 과방에서 일어난, 그리고 친구에게 들은 모든 말을 누나에게 속삭여 주었다.








누나는 교수님을 바라보며 수업을 열심히 듣는 척하며 내 이야기에 귀귀울였다.








....이야기를 다 들은 누나의 반응이 더 가관이었다.









윤희 : 결국 너도 알았네? ...한참 걸리는구나, 그거 니가 알기까지








나 : ...에엑?; 누, 누나까지 알고 있었단 말예요? ...하은이가 나 좋아한단거?

근데 왜 말안해줬어요~!!

나만 모르고 있었잖아;;;;;









윤희 : 이 나무늘보야; 그걸 내가 왜 말해줘; ...그리고!

그 정도로 티가 났었는데도 못 알아챈 니가 비정상적으로 둔감한거지;








나 : ...으어~ 그걸 내가 어찌 알아요 어찌이~!! ......난 몰라;;;;








윤희 : ....바보;;; .....대충 태석이랑 하은이 사이에 무슨 갈등이 생겼을지도 짐작간다.








나 : ...어휴.. 난 그것도 모르고 그 두사람한테 신나게 모모랑 잘됐다고 떠벌리고 다녔는데.... ...

이제 어떡해요;; 나 때문에 분위기 좋던 걔들이 일순간 원수지간이 되버렸는데...








윤희 : ...어쩔 수 있니'-';; 사람 맘이라는게 누구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니구.








나 : ...아아아아~;; 미치겠어 진짜....








윤희 : 괜히 감정에 치우쳐서 어중간한 태도 보이지마; 그게 더 최악이야.

지금의 넌, 그냥 모모에게만 충실하면 돼. 하은이나 태석이를 위해서라도 그게 제일이야. '-'








똑 부러지게 상황을 정리해버리는 윤희 누나;; 으;; 그렇지만 ....








태석이와 하은이가 그렇게 된 이유가... 나라는 걸 알아버렸는데...








어떻게 나혼자 히히덕 거리면서 모모랑 잘 지낼 수가 있겠냐고요... ;;;








내가 깊은 한숨을 내쉬자 윤희누나가 내 어깨를 다독거려준다.








윤희 : 파릇파릇하네... 너희 네명 다... 부럽다, 신선해서.








나 : 뭐가 신선해요 뭐가;;;;









윤희 : 너희들 상황 자체가 신선한거지. 젊음의 상징이라고나 할까~








나 : ....누나.... 나랑 한살차이에요








윤희 : 그래도 실제로 느끼는 체감나이는 꽤 커'-' 난 니들이 부러운데~









나 : ...부러울 것도 없네;; ...ㅠ_ㅠ괴롭다아...









윤희 : 내가 시키는 대로 하래두; 그게 최선이야 최선.








나 : ...염치 없이... 그래도 될까요?








윤희 : ..그럼! 너 모모는 어쩌려구. 염치때문에 기껏 잡은 모모는 나몰라라 내팽겨 치려고? ....

너 모모같은 여린아이 상처입히면 진짜 벌받는다.








나 : ....누가 팽개친대요...?;;;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아효~









나는 두 팔을 앞으로 쭈욱 뻗고서 책상 위에 엎드려버렸다.








윤희누나는 그런 나를 쳐다보며 그저 미소만 짓고 있었다.








...하아~ 나도 저렇게 모든 상황을 적절하게 정리할 수 있는 능력만 있었다면... ;;;








속좋게 웃는 누나가 얄미워 보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수업이 끝나고 윤희 누나와 나는 학과 사무실로 향했다.








윤희 누나가 이번 M.T건에 대해 나와 상의할 문제가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M.T는 이번주 주말, 개교기념일이 포함된 주말에 추진될 예정이었다.









윤희 : 이번 M.T... 거는 기대가 엄청 많아.

이번에 우리 학년이 이 M.T만 잘 성사시키면, 학과장님의 지원을 얻는데도 큰 영향을 미칠거야. '-'








나 : ...누나;; 이거 무슨 비밀 정치 회담같아요;;; 무서워;;








윤희 : 둔팅이; 그럼 지원이 그저 덤으로 떨어지는 건줄 아니? 다~ 비지니스이자 작전이야 작전. ㅎ_ㅎ








나 : ....누나는 과대라는 직책이 정말 딱인거같어;








윤희 : 킥킥킥; 그래?








누나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쿡쿡, 웃고는 4용지에 난잡하게 낙서된 계획서;;를 내밀었다.








나 : ....?;








윤희 : M.T 계획서. '-'）








나 : ......이 종이쪼가리 어디에... 계획이...? 내 눈엔 낙서뿐인데..;;;








윤희 : 바보야; 그게 다 계획이란 말야;;;








나 : ....누나 되게 악필이다;; 이걸 어떻게 알아봐요 어떻게!;









윤희 : 이, 일부러 흘려 쓴거지!! ;;;; 으유~ 진짜.








누나는 내 팔을 꼬집으며 내 손에서 종이를 채갔다.








그리고 새로운 종이 한장을 더 꺼내더니 정돈된 글씨로 차곡차곡








옮겨적기 시작했다. ㅋ









윤희 : ...자. 이제 됐지? ;








나 : 응응. 이제 좀 보기가 쉽네;;;; 글씨 잘쓰네요?








윤희 : 어쨌든, 민우 너한테 좀 부탁할 일이 있어.








나 : ...뭔데요?








윤희 : 니가 M.T가는거, 애들한테 전달 좀 해주고... 최대한 많은 인원이 참여하게 만드는거야. '-'









나 : ..어억?;; 내, 내가 그런게 가능해요?









윤희 : 그러엄~ 가능하지








나 : .....ㅠ_ㅠ 누나 감동먹었어... 내 능력을 그렇게까지 높이사줄 줄이야...








윤희 : ....니 능력을 높이 사는게 아니라, 모모의 능력을 높이 사는거. '-'









나 : ...엥? ?;;









윤희 : 모모랑 같이, M.T와'-'）









나 : ....;;; 누나;;;








윤희 : 우리 학년 학생중에, 남자애들이고 여자애들이고 모모 싫어하는 사람이 없잖아.

우리 귀여운 모모동생이 M.T에 참여한다고만 해도 꽤 인지도가 높아질거야 '-'）








나 : ....;;; 모모를 이용해 먹는거잖아요 그건;








윤희 : 이용해먹긴 뭘 이용해먹어 너도 모모랑 같이 오고싶지 않아?








나 : 그야 그렇지만;; ....그리고 지금 태석이랑 하은이랑의 문제도 걸리는데;

M.T에 모모를 데리고 가면;;;








내 말이 끝나자 마자 윤희누나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바로 답변했다.









윤희 : 태석이는 자기 친구를 좋아하는 여자친구 때문에 힘들고,

하은이는 남자친구의 친구를 좋아해서 힘들고,

마지막으로 너는 그 중간에 껴서 난처한거잖아 '-'）?








나 : ...예; 딱 그거죠;








윤희 : 모든 갈등의 연결고리에 [모모]가 개입되 있는거잖아 그럼. ...

모모라면 혼자서도 그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어.








나 : ...;;; 모모가 무슨 수로 해결을 해 누나;;;

사귄지 이제 하루 지났는데 괜히 나때문에 이 일에 말려들게 하고싶지 않다구요;;








윤희 : 풋; 너 아직도 모모라는 애를 모르는 구나?









윤희누나는 손으로 입을 가린채 가볍게 웃었다. 무슨 소리지 저건 또;;; 내가 모모를 모르다니...









나는 발끈, 하는 마음에 재빨리 항변했다.








나 : 모, 모르긴 누가 몰라요=ㅁ=!!!;;;









윤희 : 넌, 모모 걔가 가지고 있는 플러스 마인드를 아직 모르고 있어. .....

사람한테 상처받은 사람이 성장하면서 어떻게 변하는지 아니?









나 : ....;; 글쎄.... 잘 모르겠는뎁쇼;








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건성으로 대답하자,








윤희누나가 손으로 머리카락을 한번 뒤로 쓸어넘기곤 다시 입을 열었다.








윤희 : 부모의 사랑 없이, 게다가 여러사람에게 상처입은 모모같은 케이스는 성장하면서,








남을 절대 믿지않는 철저한 개인주의자가 되기 마련이야.

그 상처라는거.. '-' 생각외로 엄청 깊고 날카롭게 패이거든?

정에까지 굶주리면서 자랐으니 오죽하겠니....

정상적인 유대관계도 절대 갖지 못하게 되는거야...

사람과의 교류가 안되고, 바로 단절되니까.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남을 적대시하고, 증오하겠지.

자신을 배타하는 타인에 대해서 악랄한 마음으로 복수심을 불태우면서 말야. ...

근데, 모모라는 그 애를 봐봐. 누가봐도 호감가고,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착한 애지?

그 아이는 어릴적 부터 자신이 행복을 소유할 수 없는 걸, 자기가

부족한 탓으로 생각했을 거야....'-'）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

그렇기 때문에 '자기자신'을 다른 사람의 취향에 맞춰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습관이 몸에 배여 있었을테지.

그렇게라도 해야...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칭찬받고...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을테니까.. ....

그렇기 때문에 그 앤,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플러스 마인드가 있어.

무의식중에 그 애에게 빠져들게 하는 그 어떤 힘이 말야 '-' 모모 스스로도 아마 그 사실은 모를걸? ...

하지만 모모의 성장과정이... 그녀 자신도 모르게 능력을 준거야.

남을 끌어들일 수 있는, 하지만 알고보면 너무나도 서글픈 그 능력을 말야.








....;;;;









대, 대단하다... 대체 어떻게 나보다도 더 저렇게 잘아는거지?;;








나는 누나의 장황한 설명을 끝까지 들은 후, 가슴 한편이 찡해지는 걸 억지로 참으면서 질문했다.









나 : ...;; 누나, 혹시 심리학 배운적 있어요?









윤희 : 아니~ 없는데.








나 : ...그거 그냥 누나가 추측하는 것일 뿐이죠?








윤희 : 응. 내가 본 바로 추측해보는 거야. '-'








나 : ....근데 완전 기정 사실같아요;;; 말하는 순간 죄다 믿어버리게되는;; ...

그 플러스 마인드라는 거, 누나도 가지고 있는거 아닌가 혹시?









윤희 : 꺄하하하~ 그래? 니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 귀여운 모모동생이랑 많이 얘기했었거든 ㅎㅎㅎ

그 때 내가 느낀거야. '-';;








나 : ...아무튼... 그거 되게 신빙성 있네요... 한편으론, 더럽게 슬퍼... ....








윤희 : ...그러니까 니가 잘해야 하는거야. ...

그런 애를 행복하게 해주려면 마음가짐 만으로는 쉽지 않을테니까.








나 : .....M.T에 데려오면... 정말로 태석이랑 하은이... 걔들 갈등이 풀릴까요?








윤희 : 적어도 내가 아는 모모라면, 해결해 줄 수 있어. '-'








나 : ......일단, 말은 해볼게요. ...

그치만 모모가 조금이라도 싫은 기색을 보이거나 하면 포기할거에요;;

너무 기대하진 마시라 이 말씀.








윤희 : 그래.









나는 그 뒤에도 얼마간을 M.T에 관한 계획이며, 정확한 장소등등을 윤희누나로 부터 제공받았다.








그리고 덤으로 모모와 행복하라는 멘트까지 받았다. ㅋ; 이번 주말로 다가온 학년 M.T라....









예전처럼 설레이긴 했지만 그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학과 사무실을 나온 나는, 복도의 천장에 매달린 형광등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나 : .....하아~ 잘하는 짓일까...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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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입니다..

왜이렇게 주인공은 눈치가 없을까요..

답답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