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하] Vol. 14
















유하 : 쫑기~! 오늘은 안 줘?!
















분주한 입시열기로, 계절이 무색할 만큼 후끈거리는 입시 C반 교실.













막, 첫 파트의 수업이 끝나고 쉬는시간이 되자마자 C반 교실의 출입구가 벌컥 열리면서 우리




귀여운 유하양이 고개를 내밀었다.




최근 유하는 C반의 수업 진도를 훨씬 웃도는 실력 때문에, 일주일에 몇번씩 B반으로 올라가




한단계 더 높은 수준의 수업을 듣고 있었다.
















유하 : 쫑기~! 쫑기~!













.....교실 안의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는 줄도 모르고 그녀는 연신 고개를 휘적거리면서




내가 앉아있는 곳을 찾으려 발버둥이다.




은근히 낯을 가리는 것 같은 성격의 그녀였지만, 희안하게도 입시 A, B, C반을 통틀어서




어색하게 지내는 애들이 없을 정도로, 유하는 사교성이 좋았다.




....그 덕분에, 저렇게 다른 반 교실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머리를 들이대면서도 눈하나 깜짝




안할 수가 있는거지만.
















영진 : ....어여쁘신 아가씨가 뉘 집 개를 저리 애타게 찾을꼬.... ....주인이 왔는데 짖지도 않는

후레강아지 따위가 어디가 그리도 좋아서... ...큭큭큭... 전단지라도 붙여서 찾아줄까나~







나 : ....다 들린다, 임마.
















킬킬거리면서, 장난스러운 비아냥을 흘리는 영진이 녀석의 뒷통수를 가볍게 혼낸다.




....그리고 조용히 일어나, 교실 구석에 있는 가방 수납장으로 향하는 나.




수강생들의 가방이 차곡차곡 수납되어있는 그 목재보관함 중에서, 내 이름으로 된 사물함의




문을 열고, 옆으로 눕혀진 채 놓여있는 프링X스 한통을 천천히 꺼내든다.













유하 : （빨리, 빨리!!）







나 : .....（끄덕 끄덕）













오른손을 교실 안으로 내밀어 흔들면서, 복도로 얼른 나오라고 조그맣게 중얼거리던 유하가




결국 참지 못하겠다는 듯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그 앙증맞은 재촉에, 고개를 끄덕이며 교실 출입문으로 다가서자, 금새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돌아온 유하가 내 옷자락을 잡아 끌었다.













유하 : 왜 이렇게 늦어! 난 수업 끝나자마자 바로 내려왔더니만. .....B반에서 여기까지 계단

몇개나 뛰어내려와야 하는지 너 모르지?







나 : 왜 뛰어~ 그러다 다치면 너, 아웃이야. 천천히 와도 돼. 그리고 우리반은 쉬는 시간이 되도

한 5분정도는 은근히 계속 수업진행이 되잖아. 그러니까 빨리 안와도 된다고 전부터 말했는데...

너도 C반에서 늘 수업받아서 잘 알면서, 이제 B반 사람이라 이거야?







유하 : 씨잉... 프링X스 빨리 먹고 싶은데 어떡해, 그럼.







나 : 허어... 그럼 그렇지!! 내가 보고 싶어서 빨리 오던게 아니었다이거야~! 너 솔직히 말해봐.

프링X스 때문에 나랑 사귀.... .....!?
















....아차?!




순간 그녀와 나,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만들며 주변을 살핀다.













....휴우....




다행히 눈치챈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자기네들 수다떨기에도 바뻐, 우리에게 시선을 주는 애들이 없었으니까.










....아직까지 나와 유하가 연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유하와 같은 학교, 같은 반에서 수업




받는 B반의 목일예고 여자애 한명과 영진이... 이렇게 둘 뿐이었다.




학원에 소문내봐야, 전혀 좋을 게 없었던 데다가.....




현재 C반의 에이스에 속해있는 유하가, 나와 엮이면 그녀의 입시열에 균열이 갈 거라며 걱정




을 난발해대는.... 주변의 노파심에 젖게 하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내가 더 듣기싫긴 하지만..... 쳇...




그런 이유로, 요즘은 나도 정말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고....










어쨌든, 그 때문에 나와 유하는 언제나 입을 조심해야 했다.




유하 역시 어느정도 나의 의견에 수긍을 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학원에 있을 때에는 민감한




화제는 되도록이면 피하면서 대화를 이끄는 센스를 십분 발휘해주고 있었다.




여자, 그것도 좀 더 섬세한 감성을 가진 그녀의 덕분으로.... 굳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자연스럽게 '친한 친구'의 모습을 연출할 수 있었으니 나로써는 입단속하기가 한결




편했다.













....방금처럼 가끔, 실수하는 것만 빼면 말이지....













유하 : （바보야... 하여튼, 자기가 먼저 조심하래놓고 꼭 이런다니까... 아우! 아우!）













예상대로, 유하의 핀잔 섞인 잔소리와 함께 내 어깨를 콩콩, 찍어대는 그녀의 오른팔이




뒤따른다.
















나 : 킥... 미안, 미안. ....근데 너, 내가 맨날 한통씩 사주면 먹기는 먹어? 나 요즘에는 정말

너 살찔가봐 은근히 걱정되는데.







유하 : 그럼 안먹고 버려? 그 아까운걸... 헤헷... 그리고~ 나 요즘 프링X스 빈 통 모으고 있잖아.

우리 쫑기가 생각보다 훨씬 더 착실하게 먹여주고 있어서 예상한 것 보다 더 금새 모일 것 같아.







나 : ....내가 무슨 사육사냐... 먹여주게.







유하 : 그러엄. 사육사지. ....어때? 포유류? 파충류? 그것도 아니면 갑각류? 원하는 종족 정도는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을 줄게. 선택한 동물 대로 행동해주면 되는거잖아? 응?







나 : .....뱀.
















.....내 대답을 들은 유하의 눈빛이, 순간 반짝이는 것을 목격하는 나.




젠장... 왠지 불안해.




그리고 예상은 언제나 들어맞는다.




.....두 팔을 옆구리에 딱 붙이며, 몸을 꼼지락거리기 시작하는 유하.
















유하 : 쉬쉬쉿~! 쉬쉭.... 꾸물꾸물꾸물꾸물. 낼름낼름낼름. ....아, 이건 혀 내미는거야.







나 : ....지, 징그러워! 그만두지 못해! 입으로 일일이 소리내면서 꿈틀대지마.







유하 : 으헤헤...
















유하가, 도도하게 위로 뻗은 풍성한 속눈썹을 한껏 나풀거리며, 자신의 눈동자를 깜빡인다.




잠시 질렸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하던 나 역시, 결국은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풋... 프링X스가 그렇게도 좋나.....













.....




..........







유하 : 목예제, 올거지? 이제 얼마 안남았잖아. 기억 꼭 하고 있기로 했으니까 절대로

까먹으면 안돼? 알았지?







나 : 목예제라... ...너희는 정말 고등학교 치고, 꽤 대학처럼 노는 거 같어.







유하 : 응. 일단은 예고니까. 와보면 잘왔다 싶을걸? ....우리 학교 목예제, 이 근처에서는

이미 소문나있잖아, 근사하기로. 으히히...







나 : 또, 또. 푼수처럼 그렇게 웃지 말라니까. 이쁜 웃음소리 놔두고 왜 꼭 그런 웃음으로

웃어제끼는겨. ....너 자꾸 그렇게 웃으면 나도 애자처럼 웃는다? 으헤헤헤헤헤~ ....이렇게.







유하 : 우와~!! .....너무 잘어울려, 너. 또 해봐. 응? 또 해봐아.







나 : .....그만두자. 내가 널 어떻게 이겨.













으음... 목예제라....




3학년 1학기가 시작학 후 두달정도 뒤에 열린다는, 목일예고의 전통적인 축제.




....며칠 전, 유하는 그 축제에 나를 초대해주었다.




현재 그녀의 남자친구 자격이 주어져있는 나에게, 자신의 학교를 구경시켜준단다.










나도 내 주변의 친구들중에, 목일예고 여자애와 사귀는 녀석들에게 몇번 전해들은 적이 있어




그런지, '목예제'라는 이름의 고등학교 축제가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확실히... '명문 예술 고등학교의 이름을 썩혀두지는 않는다' .....일까나.




초등학교 시절의 '학예회'나 '장기자랑'같은 성격의 축제라는 목예제.




주로 목일예고 학생들의 예술적인 재주를 타 학교에 자랑하는 성향이 짙은, 어떻게 보면 일종의




'네임벨류 과시용' 이벤트이기도 했다.




약간은 외설적이고, 이런저런 소문도 많은 학교였지만.... 그래도 이 근방에서는 가장 이름나있는




명문 특수목적고 였으니까.













나 : 너는 축제때 뭐해?







유하 : 헤헤... 와보면 알아.







나 : 그 때까지 언제 기다리라구... 나 궁금한건 엄청 못참잖아. ....아주 살~짝만 귀뜸좀 해줘.







유하 : 으음... ....여러가지 행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맡아서, 거의 주연급으로 등장하지

아마?







나 : ....오?! 대단한데? 뭐하는데? 뭐하는데? 응?







유하 : 스트립쇼.







나 : ......







유하 : ......







나 : ......후우... 또 속을뻔 했잖아, 젠장. .....야, 야, 야! 넌 꼭 그렇게 남자친구를 놀려먹는

재미로 인생을 보내야겠냐? 요, 앙칼진...







유하 : .....어라, 이젠 잘 안속네... ....와, 실망 백만년! 사귄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부터 이렇게

시들시들해? 3일전만 해도 오버까지 하면서 거짓말에도 속아주고 그러더니... 요즘 귀여움

게이지가 위험수위인거, 쫑기 알아?







나 : ......폭삭 겉늙어서 그래. 하도 니가 데미지 큰 거짓말만 해대니까. 그것도 진지하게.







유하 : 풋... 내가 뭘~ 속는 사람이 바보지~
















.....킥킥....




대답 대신, 유하의 두 눈동자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이젠 그녀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봐도 예전처럼 그렇게 한없이 작어지거나 하는 따위의




기분은 들지 않는다.




....이렇게 예쁜 얼굴을 보면서, 1초라도 눈을 다른 곳에다가 돌리는 건 오히려 내 손해니까.




그냥 조용하게.... 실핏줄이 언뜻언뜻 보이는 유유빛 피부를 응시하고 있자, 한창 혼자서




몸을 움찔거리면서 키득거리던 그녀가 뭔가 다른 낌새를 알아차렸다.













유하 : .....?







나 : ......







유하 : ....에엑...







나 : .....







유하 : 어휴, 진짜~! ......또?













.....체념한 듯, 사그러드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유하.













나 : ......얼마나 됐다고.







유하 : 예전엔 자기 혼자서, 부끄럽다니~ 어쩌니~ 투정부렸으면서! 어우~ 하여간, 맛을 아니까

이제 늑대처럼 달려들기? 자꾸 이러면 곤란해. 이젠 내가 받아들이는 쪽이 되버렸잖아.







나 : 내가 늑대가 되주길 바란다고 했으면서? 그리고 솔직히, 넘치는 애정을 다른곳에다 식히지

않으면 터져버릴지도 모르는데. ....야, 그리고 원래 여자쪽이 받아들여야 그림이 나오지.....

남자가 눈치보면서 여자가 해주기만 바라는거... 너도 그런 시츄에이션을 원해?







유하 : .....하여튼, 말은....







나 : 풋... 나보단 니가 한수 위면서 뭘 그래.







유하 : .....지금? 여기서?







나 : 컥?! 여기서 어떡해 해, 애들 다 보는데.







유하 : 그럼 어디서 해....







나 : .....거기서.







유하 : ....으윽... 거기 엄청 추운데...







나 : ....껴안고 있어줄게.







유하 : 포기 안할 모양이네, 표정을 보니... ....휴우, 알았어. 가자.
















....그녀와 함께, 복도 주변에서 와글대는 아이들의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복도 끝 쪽의 계단으로 향했다.













...얼마전 영진이와 함께 학원건물 탐사를 하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
















한 층 더 올라가면 입시 A, B반 교실로 향하는 출입구가 나오고, 거기서 또 한층 올라가면




학원에서 쓰는 각종 물건들을 쌓아두는 창고 비슷한 구역이 하나 나온다.




그 구역 안쪽으로 들어가면, 꽤 큼지막한 창문 하나를 제외하면 완벽하게 밀실이 되는....




....아주 멋진（?） 공간이 마련된다.




게다가 더욱 마음에 드는 건....




공간 벽면에 덩그러니 달려있는 그 큼지막한 창문 너머의 풍경이었다.




서울로 진입하는 다리를 지나가기 위해 라이트를 켜고 분주히 달리는 차들의 잔영....




특히나 희뿌연 안개라도 자욱히 깔려있는 날이면, 미세먼지와 공기 중의 수분이 할로겐 가로등




에서 쏟아지는 은청색의 불빛과 함께 어울려....




어딘지 모르게 운치있는,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 연출된다.




온 몸이 편안해지는 자연의 풍경과는 또 다른.... 도심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날렵한 나른함.
















나 : ....어두워, 조심해서 올라와.







유하 : 응. ....손 놓으면 안된다, 너? 저번처럼 또 손 놔버리고 혼자 숨는 장난 같은거 치면,

진짜 다신 여기 안올거야!







나 : 킥킥킥.... 야, 은유하가 무서워하는 것도 있었어? 그 위풍당당 고품격 도도함의 결정체가?







유하 : 도도해도 공포는 느껴, 바보야.













....자신의 손을 마주잡은 나의 손바닥을 호되게 꼬집는 유하.




조심스럽게 그녀를 창문 쪽까지 인도해준 뒤, 먼지가 나지 않게 창문을 천천히 열어젖혔다.




약간은 서늘한 밤공기가 내 목덜미를 싸하게 감싸며, 외부 공기가 흘러들어온다.













나 : 남은 휴식시간은.... 어디보자... ....아, 딱 17분이네?







유하 : 시간 없으니까, 느긋하게 분위기 잡는건 생략하면 안돼?







나 : 그런게 어딨냐. 어휴~ 남자보다도 더 무드가 없어요, 무드가...







유하 : 무드도 좋지만, 쫑기는 분위기 잡는다고 별 짓을 다해도 전혀 와닿지가 않아.







나 : .....!?







유하 : 그냥 생략하고 들어가나, 한시간 넘게 분위기를 잡고 들어가나..... 똑같애.







나 : .....으윽...







유하 : 좀 더 단련해서 와! 킥킥킥... 그 땐 나도 쫑기가 말하는 그 분위기에 흠뻑 취해줄테니까.







나 : 뻘쭘하게 준비동작도 없이 어떻게 바로 들이대냐? ....부끄럽게....







유하 : 누구는 뭐 얼굴 두꺼워서 안부끄럽니? .....다 똑같으니까 걱정하지마. ....아앗?! 쓸데없는

이야기하는 사이에 2분이나 지났잖아아...













.........




나와 함께 한 이후, 급격하게 말 수가 많아진 사랑스런 유하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그녀의 허리께를 감싸안는다.




사귀기 전부터, 스킨쉽에 대한 거부가 크지 않은 그녀와 많이 부대끼며 지냈던 탓에...




....이제 겨우 사귄지 한달이 조금 넘었을 뿐이지만, 우리의 진도는 빠르게 진행되어 있었다.




처음, 유하를 바라볼 때는 눈도 제대로 못마주치던 내가 2주일만에 첫키스를 해버렸으니까.













그러고보니....




부끄럽게도, 우리의 첫키스는 유하의 선공으로 이루어져버렸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학원에 올 때마다 넉넉하게 택시비를 챙겨오는 습관이 들여져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학원수업이 끝나는 11시 30분.... 유하와 함께 조금 더 있고 싶은 마음에, 그녀의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냅다 올라타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유하를 집 앞까지 바래다주고 나면, 제일 늦게까지 운행하는 버스를 운좋게 잡아타지 않는한




걸어서 와야 했기에 언제나 주머니속에는 비상시를 대비한 택시비가 준비되어야 했다.













유하 : ......또 탔어? 우와... 쫑기, 안지쳐?







나 : 같이 더 있고 싶은데, 어쩌냐 그럼.
















....유하가 버스에 올라타는 것을 지켜보다,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 올라타버리는 나.
















유하 : 택시비 진짜 많이 깨지겠다.... 야, 너 아르바이트도 안하는 학생이 돈이 어딨다구!!

어차피 뒤따라서 탈 거면서, 왜 맨날 정류장에서 손흔들고 배웅해주는 척해. 자꾸 이러니까

버스에 타서도 은근히 기대해버리잖아, 바보야아.







나 : 안그래도 이젠, 이짓도 자주 못해.... 택시비도 점점 적립되니까 은근히 큰 돈이더라?







유하 : 당연하지, 그럼.... ....괜찮아? 자꾸 이렇게 바래다줘도?







나 : 혼자 보내기 걱정돼. 애가 좀 이뻐놔야지.... 적당히만 이뻤어도 내가 이렇게까지는

안하는데, 이건 뭐 연예인 수준이다보니.







유하 : ....풋. ....바보, 괜히 민망하니깐.













유하와 함께 1X번 시내버스의 맨 뒷자석에 앉으면, 그녀는 이미 익숙해진 동작으로 내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기대오면서 눈을 감는다.




라벤더 향이 코끝에 감돌기 시작할 때 쯤, 나는 왼팔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따뜻하게 추스려주고




그녀가 내릴 정류장까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다.




유하가 내릴 정류장에 도착할 동안 달리는 그 25분 남짓한 시간은....




정말 귀중하고, 값진 추억의 시간이 아닐 수가 없었다.













.....유하가 내려야할 정류장에 도착할 때가 다되가자, 조심스레 그녀를 흔들어 깨웠다.




피곤에 지친 듯, 두 눈동자가 발갛게 충혈되어있는 모습으로 잠꼬대를 하는 모습을 보니




괜시레 마음이 쓰라린다.




나 역시 입시생이었지만, 의외로 체력이 좋아서 하루에 3~4시간만 자두면 다음날 활동하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기 때문에, 유하를 걱정해줄 여유는 충분히 있었다.













나 : 다 왔어. 많이 피곤해? 내가 집까지 업어다줄까?







유하 : 흐으으응.... 아우, 어깨야... 고개를 잘못 기대고 잤나... ...괜찮아. 교복 치마도 짧은데

업어주기는 뭘... 그리고 나 보기보다 무겁다? 쫑기 힘들어서 안돼.







나 : 힘들기는, 여자애 한명 업는거야 거뜬하지.... 원래 자기 무겁다고 하는 여자애들이 실제론

말라가지고 뼈밖에 없더라.







유하 : 어? 나 말고 또 누구랑 히덕거려본거야? 수상한데...







나 : .....업히면 이야기해줄게.







유하 : 킥킥킥... 됐으니까 얼른 내릴 준비나 해.













.....당당하게 말은 하고 있지만, 여전히 잠에 취해있는 모습의 유하.




그런 유하를 데리고 그녀의 집까지 걸어가야 하는 아스팔트 길이, 오늘따라 험하게만 느껴진다.




유하가 부드럽게 내 팔에 팔짱을 끼더니, 늘어지는 걸음을 애써 추스리기 시작했다.




....같이 걷는 내가 불편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잘 알고있는 나.




그렇게 천천히, 유하를 배려하면서 느긋한 발걸음으로 걸어갔는데도, 어느새 눈앞에 그녀의




집이 보인다.




......어우, 정말.... 짧다, 짧어.













유하 : 벌써네. 헤에... 쫑기랑 같이 걸으면, 학원에서 우리집까지 정말 얼마 안되는것 같아.







나 : 나도. ...짤막한게 산책로 하면 딱 좋겠다. 킥...







유하 : ....우리 아빠 보시면 난리나시니까, 여기쯤에서 돌아가.







나 : 어? 왜? 아버지 엄하셔?







유하 : 나 외동딸인데다가, 우리 아빠 정말 나 끔찍히 생각하거든. 그래서 남자친구 사귀면

질투하셔서 안돼. 잘못하다간 쫑기 우리집에 끌려 들어갈 수도 있어!







나 : .....뭐, 뭐야 그게... 부적절한 가족애 느낌이 팍팍 튀는데?







유하 : 원래 그러셔. 그래도 얼마나 귀여운데, 우리 아빠. 난 이다음에 크면 정말 아빠같은 사람

찾아서 결혼하려구.







나 : 오, 그래? 너희 아버지 어떠신데? 그거 꽤 참고해둘만 한 것 같은데?







유하 : 아하하~ ....왜? 쫑기, 나랑 결혼하려고?







나 : 어허, 기다려봐. 그 멘트는 아껴둬야되니까 노코멘트. ....어쨌든, 아버지 어떤 분이신지

빨리 말해줘.







유하 : 베에~ 싫어, 그럼 나도. 아껴뒀다가 나중에 터뜨릴거야.
















눈웃음지으며 귀엽게 앙탈부리는 유하.




.....지금 이 순간만으로도, 충분히 너랑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요녀석아...
















나 : 가야되겠다. 더 늦으면 정말, 나도 집에서 왕창 깨질 것 같아.







유하 : 아, 응. .....아참, 쫑기!







나 : 응?







유하 : ......이리로, 이리로.













유하가 자신의 손바닥을 가볍게 팔랑거리며 나를 자신의 앞 쪽으로 불러세웠다.




그녀의 앞으로 다가서자, 아스팔트와 현관문 사이의 블럭 위로 올라서있는 유하의 눈높이가




나보다 조금 높다는 것이 느껴졌다.




약간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하자, 고개를 좌우로 돌리면서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한




행동을 보이는 유하.




....음? 뭐지? 아버지라도 오시나?
















유하 : .....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그녀.




....날 보고 한번 살폿, 눈웃음을 짓더니 대뜸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자신의 두 팔까지 허리 뒤로 돌린 모습으로, 반듯하게 서서 뒷굼치를 까딱거리기 시작한다.




.....뭐, 뭐하는거지 얘가...
















유하 : .....
















.....어둠속에서, 복숭아처럼 발갛게 익어가는 그녀의 두 뺨을 보자...




눈치없기로 이름난 나조차도, 그녀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여자쪽에서 이다지도 저돌적인 패턴으로 공격해오자, 적잖이 당황한 나는 그 상태로 몇분간을




더 가만히 서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상대쪽에 반응이 없자 자신의 오른쪽 눈꺼풀을 살며시 떠보는 그녀.




....아직까지 내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더니, 다시 눈을 감아버린다.




킥킥... 더이상 무안하게 만들면 안되겠지....













나 : ......







유하 : .......
















촉촉하게 틴트가 발려져있는 유하의 입술.




수분을 잔뜩 머금어 터질듯이 부풀어올라있는 그 부드러운 두개의 꽃잎에 얼굴을 가져다댄다.




....이윽고 나의 코끝을 자극하는, 향긋한 라벤더 향과....




체리가 연상되는 듯한 두 입술의 감촉이 신경을 타고 온몸에 전달되었다.
















유하 : 으응.....







나 : ......













내 입술이 자신의 입술과 맞닿게 되자, 자신의 뒤굼치를 천천히 앞으로 들어올리는 그녀.




.....유하의 무게중심이 점점 상체쪽으로 쏠리면서, 한 블럭 위로 올라가있던 그녀의 체중이




내 얼굴에 완벽하게 쏠림과 동시에... 밀착되어있던 입술에서 바람빠지는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맞붙어버렸다.













- 피시식~










유하 : ....프큽... ...읍....







나 : ...크크큭... 크흡....







유하 : 푸풋... 아하하하~ 잘 안되네... 영화에서는 진짜 예뻐보였는데, 실제로 해보니까

엄청 입아프다. 킥킥....







나 : .....하여튼 못말려, 너는.













.....입술을 마주한 모습으로 킥킥거리자, 결국 우스운 모양이 되어버린다.




서로의 몸을 천천히 떨어뜨린 뒤, 쑥스러움과 어색함을 공유하고 헤어진 후, 나는 집으로 돌아




온 다음에도 입술에 느껴지는 그 따뜻한 온기를 잊지 못했다.






















....그렇게 첫키스의 추억을 일기장 한편에 아기자기하게 새겨넣은 이후.




부끄러움과 어색함이 점점 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색함이 익숙함으로 뒤바뀌고 난 후, 나는 유하에게 내 본능이 이끄는 그대로를 요구했다.













자꾸만 무언가를 요구하면, 유하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혹, 이것이 문제가 되어 나에 대한 애정을 포기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이런 걱정들은, 곧 쓸데없는 것임을 깨닫는다.




중요한 것은 그녀와 나, 그리고 그녀를 생각하는 나의 진심.




....그리고, 그 것과 마찬가지로....




은유하, 그녀가 나를 생각해주는 그녀의 진심.




그것을 신뢰하면 되는 거였다.




그 신뢰를 바탕으로, 지금 우리들은 연인이 되어있다.



















...........




...................







유하 : .....아무튼, 쫑기도 결국 남자라고 이런데까지 여자친구를 끌고와서는... 어우~
















....예전의 기억에 사로잡혀있는 사이, 창틀에 기대어 바깥 풍경을 바라보던 유하가 장난스레




수선을 떤다.




그런 유하의 말에, 잠시 옅은 미소로 회답해준 뒤......




가볍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올려 주었다.




간지럽다는 듯 살며시 두 눈을 감고, 내 손끝에 반응하는 그녀.




문득.... 이 곳에 올라오기 전, 유하가 내게 해주었던 충고가 생각난다.
















[ 그냥 생략하고 들어가나, 한시간 넘게 분위기를 잡고 들어가나..... 똑같애. ]













잠시 쓴 웃음을 머금고, 막 눈꺼풀을 들어올려 나를 바라보는 유하를 응시했다.




눈동자를 움직이며 대단한 호기심을 발하고 있는 그 눈.




.....역시, 나는 유하의 남자친구이자.... 그녀를 좋아하는 한 남자다.
















나 : 그럼 오늘은.... 생략하고서 들어간다. ....놀라지나 마. 안전벨트 꽉 붙들어주시고.







유하 : ....뭐? 무스.... .....읍....?!



















....유하의 뒷말은, 내가 생략하고 들어간 분위기처럼....




나의 입술에 의해, 천천히 생략되어갔다.
















부드러운 접촉점 속에서, 그녀가 전하고자 했던 말들은 차츰 수그러든다.




달콤하고, 조금은 끈적거리는... 행위 그 자체로 이미 모든 의사소통이 해결되고 있다.




그리고.




끝이 흐려진 그녀의 뒷말대신....










천천히 내 목을 감싸안는 그녀의 두 팔이....




.....2분남짓 남은 휴식시간을, 더욱 짧게 느끼게 해준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나 : 유하야, 좋아한다. 진심으로.












^^ 날씨가 풀리는건가..비가 오려는건가~

역시 경남지방은 알수가 없는 날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