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7살 어린 남동생을 둔 장남이다. 어렸을적 부모님은 대구에서 맞벌이를 하셨고 나는 부산의 이모네 집에서 7살까지 살았다.
이모는 나보다 한살 많은 사촌형이 있었지만 친자식처럼 잘 대해주셨다.
그래도 나는 내 부모님의 사랑을 원했고 부모님은 주말마다 날 보러 대구에서 부산까지 오셨다.
그런데 아버지는 인사 한번 해주고 주말 내내 잠만 잤다. 어머니는 애정은 뒷일이고 학습지 숙제를 다 끝냈는지가 더 중요했다.
부모님은 아직까지 원인을 잘 모르지만 자주 싸웠고 7살때 서울로 이사를 갔다. 이제 같이 산다고 하면서.
알고보니 동생이 생긴거였고 어머니는 육아휴직을 내며 자연스레 일을 그만두었다.
그때부터 나는 이제 형이니까 어른스러워야 한다는 강요를 받았다. 좀 더 사랑받고싶고 어리광도 부리고싶었는데 '넌 형이잖아. 동생에게 부끄럽지 않아야지.' 라는 말만 들었다.
동생이 태어났을때 기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시기와 질투가 늘었다. 그럴때마다 나에게 화를내고 체벌을 가했다.
어려서부터 눈물많고 여렸던 나는 점점 더 소심해지고 동생에 대한 그런 감정은 깊어져만 갔다. 동생이 태어나고 애정은 동생에게만 갔다. 나에게는 어른스러움만 강요하면서.
초2부터 빨래널기, 설거지, 분리수거 등을 했다. 형이라는 이유로. 동생이 내 나이가 되면 동생에게도 시키겠지 라는 생각으로 불만하나 없이 일을 해왔다.
어머니는 나에게 관심이 많았다. 정확히는, '내가 다니는 학교' 에 관심이 많았다. 부모회 같은걸 다니시면서 교육청장? 같은 사람과도 일을 했다고 들었다. 내가 집안일을 한건 그 이유였다.
하루는 더이상 이러고싶지 않아 처음으로 어머니께 대들었다. 그냥 엄마가 집에 있었음 좋겠다고 엉엉울면서 때를 썼다. 어머니는 화를 내면서 널 위한거라고 매를 들었다.
동생에 대한 차별은 나만 느끼는 듯 했다. 동생이 태어나고 아버지는 20년동안 피우던 담배를 끊었다. 동생에게 하는 행동들을 보고 무뚝뚝하던 경상도 남자에게 그런 면들이 있을 줄은 몰랐다.
동생은 언제나 애지중지였다. 나는 부모님께 반말이라도 하거나 땡깡이라도 부리면 언제나 회초리였다. 그래서 나는 동생이 그런짓을 할때마다 동생에게 화를 내고 엄마아빠한테 혼난다고 했지만 되려 혼나는건 나였다. 동생좀 가만 냅두라고. 억울해서 엉엉 울어도 나를 달래기는 커녕 더 화만내고 형답기를 강요했다. 그때부터 나는 부모님과 멀어졌다.
하루는 몸살을 앓아 쇼파에 누워서 끙끙거리며 티비를 보고 있었다. 술에 잔뜩 취해 귀가한 아버지를 보고 대충 인사를 했다. 그게 뭐하는 태도냐며 똑바로 인사하라고 화를 냈다.
아픈 몸으로 겨우 일어나 다녀오셨어요 라고 인사한 뒤 다시 누웠다. 인사를 받지도 않았는데 뭐하는 짓이냐며 내 목덜미를 잡고 불꺼진 컴컴한 방으로 데려가 문을 잠그고 날 밀어 넘어뜨렸다.
당황스런 마음에 엉엉 울며 아버지 발을 잡고 죄송하다고 했다. 방 밖에선 어머니가 문을 두드리며 그만하란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아랑곳 하지 않고 내 손을 뿌리치며 일어나라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착한아이였다. 말을 들어야했다.
그렇게 서너번 넘어졌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다가 아버지는 씩씩대며 방문을 잠근채로 나갔다. 불을 킬수도 있었고 방 문을 열고 나갈 수도 있었지만 나는 바보같이 말을 들어야한단 생각에 선채로 울며 가만히 있었다.
어머니가 열쇠로 방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안아주셨다. 초등학교 2학년때의 일이다. 나는 그래서 아직까지 어두운 곳이 무섭다. 다음날 아버지는 자기가 그랬냐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 뒤로 아버지가 귀가하기 전에 방 밖에서 나가질 않았다. 동생이 태어나도 날 향한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중학교는 기숙사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극도로 소극적이고 내향적인 나때문에 선생님들이 곤란해 했다고 한다. 부모님은 대체 뭐가 문제냐고 화를 냈다. 그러게 뭐가 문제일까.
부모님과 말을 하기 싫었다. 언제나 문제는 '나' 였기 때문에. 그래서 형식적인 말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질 않았다. 주말마다 집에 갈때 동생과 부모님의 화기애애한 모습을 볼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저게 내 부모님이 맞나. 저럴 수 있는데 왜 나한테는 안그랬나. 혼자 속으로만 생각하며 방 안에서 지냈다.
나는 친자식이 아닌건가 부터 시작해서 별별 망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때쯤 부터 혼잣말을 했다.
고등학교땐 결국 2학년때 자퇴를 했다. 상담사니 뭐니 하면서 별의 별 곳을 다 다녔지만 아무짝에도 소용 없었다. 아무런 말도 안했으니까. 그러다가 경주 시골에 농사지으며 공부하시는 선생님들 손에 맡겨졌다.
가족의 손에서 벗어난 나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나날들을 보냈다. 농사일을 돕고 마음공부라는 철학을 배우며 마음속 썩어가던 응어리를 조금씩 덜어놨던것 같다.
20살이 되고 그곳을 떠나 다시 서울집으로 돌아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직까지도 부모님 앞에서 괜찮은 척 하며 살아온 것 같다.
시골에서의 행복한 감정은 오래 가지 않았다. 뭘 먹고 살래 부터 시작해 행복했던 시절 듣지 못했던 그 저주스런 말들을 다시 들으니 다시 나만의 세상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겉으로 멀쩡한척 하며 형식적인 대화만 나누며.
그러다 21살때 아버지가 암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위암 1기라 목숨엔 지장이 없었지만 암세포가 위 정 중앙에 위치해서 70%를 절제하셨다. 담배 대신으로 평생 마시던 술까지 끊고 운동광이 되시면서 완전 딴사람이 됐다. 그때까지도 난 별 감정이 없었다. 가족을 향한 문은 다시 닫혀있는 상태였으니까.
나는 철저하게 부모님을 제외한 남들에겐 멀쩡한 사람으로 살고 있다.

어제 일하고 있는 곳에 정신과 의사이신 큰아버지가 서울에 볼일 볼 겸 찾아오셨는데 （일하는곳이 가족사업 하는곳） 보자마자 많이 힘들제? 하시며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상사인 외삼촌과 어머니의 온갖 개입때문에 폭발 직전이던 감정이 결국 터지더라구요. 그자리에서 엉엉 울고 큰아버지는 날 한번 잡고 얘기한번 하러 오라고 하시고.
큰아버지가 부모님께 알렸는지 집에 가니까 부모님이 얘기좀 하자고 부르시더라구요. 왜 지금까지 힘든거 얘기 안했냐고.
힘든거 있음 얘기하라고 해서 얘기 할때마다 니 고민은 별거 아니라고, 더 고생하는 사람 많다고, 애 아니고 다 컸으니까 툭하면 울지좀 말라고 하던 당신들이.
그래서 아무 말도 안했습니다. 그냥 멍하니 앉아만 있었어요. 그제서야 미안하다고 우리가 너무했다고 하시며 우시네요.
근데 저는 정말 아무런 감정도 안생겼네요. 할말 끝났으면 가보겠다고 하고 나왔습니다.
조만간 다 접고 가족 없는 곳으로 가려 합니다. 고여서 썩어있는 응어리도 좀 풀어보고요.

생각나는대로 경황없이 바로바로 쓰느라 생략된 것도 많고 두서도 없이 길기만 엄청 길어졌네요. 남들한테 인생얘기 이렇게 하는것도 처음이라 정신도 없고요.
읽으셔도 되고 귀찮으시면 넘기셔도 됩니다. 그냥 처음으로 이렇게 하소연 해보고 싶었습니다. 다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