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주변 사람들에게 어른스럽다. 나이에 비해 생각이 깊다는 말을 많이 듣고 사는 사람이다.

나도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거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 남한테 피해를 주기 싫어해서 부탁도 잘 하지 않고 혼자 묵묵히 일을 처리하고, 내 일을 처리하고도 남의 일을 도와주며 그들이 고맙다는 말을 할 때 행복을 느끼는 내 모습을 돌아보면 나는 나이에 비해 일찍 철이 들은 거 같다.

이런 모습이 싫지 않아서, 남들에게 더 도움을 주고 싶어서, 나는 언제나 어른스럽게 행동해왔다. 솔직히 말하면 난 어른스러운 사람인 게 아니라 어른스럽다는 말을 듣기 좋아하는 그냥 어른인척하는.. 아직은 철부지라고 생각이 더 들긴 하지만 말이다.

이런 나는 연애를 할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모습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까.


지금까지 연애를 많지도, 적지도 않게 해왔다. 20대 중후반을 바라보는 나는 생각보다 여자를 잘 만날 수 있었다. 외모가 뛰어난 것도, 그렇다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다. 외모는 적당한 편이고, 재력은 평범하다기보다 오히려 가난한 축에 속한다.

이런 나에게 연애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은 나름 감사할만한 일이라고 혼자 생각해본다.

나는 아직 나의 연애 횟수를 다섯 손가락 안으로 셀 수 있을 만큼 그다지 많은 연애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해왔던 이성과의 감정 교류를 통해, 나는 누가 사랑을 시작했느냐에 따라 내 마음의 크기가 어느 정도 정해지는 거 같다고 느낀다. 누구나 그렇듯이 내가 시작한 감정의 아픔이 반대의 경우보다 더 크고 오래가는거같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같이 사랑해주는 것은 기적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무척 좋아하지만 이 말을 깊게 생각하면 씁쓸함이 밀려온다. 왜냐하면 내가 시작한 감정은 한 번도 제대로 된 적이 없었다. 과거에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도..

나에게는 아직 기적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적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기적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지금도 무척 노력 중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와 그랬듯이 나에게 기적이 일어날 확률이 매우 희박하다는 것이 보인다.

기적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뛰었다. 상대가 나를 알 수 있게 열심히 표현했고, 내 표현으로 인해 상대가 느낄 감정과 불편함에 대해서도 한없이 고민하며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을 수없이 하는것과 상관없이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나의 주변인들은 대부분 나에게 어른스러운 매력을 느끼고 다가왔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임의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 그들과 함께 살고 있다.

요즘 세대에 누가 그러지 않겠냐마는 내 원래 모습을 숨기고 거짓처럼 살고 있고 이게 현명한 현대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내 모습을 숨기기 싫다고 생각이 드는 사람이 바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에게 나의 본모습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보여줬던 냉철하고 어른스러운 모습과 반대 모습인 여리고 어리광 많은 모습.

그래서일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나의 기적이 되지 못하고 떠나가고 있었다.


내 본모습의 문제 말고 다른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른인 척' 하는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성찰하기엔 아직 부족한가 보다.

내 좁은 견해로 이해할 수 있는 나의 결점은 아직은 나의 이러한 성격 문제 같다.

다행히도 나의 본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내가 좋은 사람이고 결혼 상대로 정말 좋은 남자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많은 거 보면 내가 적어도 성격파탄자는 아니라는 걸 조심스럽게 예상해본다.

그저 나의 첫인상을 보고 다가온 사람들 중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의 본모습을 보여주니 생각지도 못한 모습을 보고 다들 떠나가는 거 같다.

그렇다면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언제까지나 연기를 해야 할까.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까지 내 본모습을 철저하게 숨기고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 중 나의 이런 모습까지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게 가장 좋겠지만.. 그건 앞에 말한 기적 중에서도 확률이 매우 적은 기적이다.

앞서 말한 거처럼 나는 아직 기적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다.

내가 시작한 사랑을 한 번도 성공시킨 적이 없기 때문에 성공했을 때의 감정이 어떨지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상실했을 때의 마음이 이리도 아픈 걸 보면 성공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


내가 시작한 사랑이 아닌 상대방이 먼저 시작한 사랑을 내게 주었을 때, 그리고 그 사랑을 내가 받아주지 않았을 때 그 상대방의 상실감도 이렇게 컸겠지.

하지만 그 사랑을 받아주지 않은 나는 큰 감정의 변화가 없었다.

지금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도 그때의 나와 같을 것이다.

어떻든 간 내가 맘에 들지 않기 때문에 받아주지 않는 것이고, 감정도 없었기에 크게 상처받지도 않을 것이다.


오늘도 홀로 방 침대에 깊게 잠겨 있을 내 모습이 보인다..





내일은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