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몇년 전 일이었다.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매우 유치하고 조잡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끼리끼리 논다고 친구들의 상태도 다들 정신병자（?） 비슷했는데, 아무튼 우리는

몰려 다니면서 찌질한 짓은 모조리 하고 다녔었다.

며칠 간의 시험이 끝난 어느 날, A군이 불쑥 말을 꺼냈다.

"야, 우리 영화 보러 가자"

"영화? 니 주제에 무슨 영화냐... 가서 뽕이나 빌려봐"

B군이 어림 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닥쳐, 그럼 너는 빠지고 우리 셋이서만 갈꺼야"

"둘이겠지"

C군이 냉정히 돌아섰고, 마지막으로 내가 손을 뗐다.

"남자들끼리 영화 보러 가자고? 지금이 어느 시댄데 그런 역적 방귀 뀌는 소리를 하느냐?"

우리의 싸늘한 반응이 쏟아 졌지만, A군은 뉘 집 개가 짖는냐는 듯 지 할말을 이어갔다.

"김선아 나온대, 우리 몽정기 보러 가자"

그렇다. 김선아의 골수팬이었던 A군이 제시한 영화는 몽정기 였던 것이다.

"뭐? 몽..정...기.."

어릴때 부터 해외 유학과 고급 엘리트 교육을 받은 나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니, 어떻게 몽정이란 단어를 쓸 수가 있지? 부끄럽지도 않은가.. 자네는?"

"어제, 니가 보내준 로리 시리즈는 잘 보았다"

"컥"

A군은 간단히 내 말을 무시하고 말을 이어 나갔다.

"그저께 내 사촌동생이 봤는데, 죽인대... 완전 작살이야 작살"

"흠, 몽정기라..."

B군이 흔들렸고, C군도 갈등하는 눈치였다.

"까짓거... 그래 가자.. 오늘 죽자（?）"

끝까지 지조를 지키며 투쟁을 했지만, 과반수의 찬성으로 결국 나도 보러 가기로 했다.

우리는 서로를 지독히도 씹어대며, 영화관까지 가는 길을 견뎌냈다.

표를 사는 순간까지도, 욕설과 비난으로 맹렬히 공격을 해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봤지만, 우리는 도리어 그들을 비웃어 주었다.

"커플끼리 영화관을 오다니, 말세로군 말세야.."

남자 넷이 온 것은 우리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당당했다.

어깨를 쫙 펴고, 가슴을 내밀었다. 거침없이 어깨동무를 하고 계단을 올라섰다.

"흠.."

슬쩍 C군이 뒤로 빠졌다. 5초 뒤 B군이 신발끈을 묶기 시작했다.

남은 A군과 내가 아주 자연스럽게 어깨동무를 풀었다.

우리는 따로 따로 상영실로 들어갔다.

관객들의 수는 생각보다 훨씬 많았고, 대부분이 커플들이었다.

들어갈 때는 따로였지만, 좌석은 연속된 네자리였다.

세명이 핸드폰을 하는 척 고개를 숙였고, 손재주가 뛰어난 나는...... 의자의 다리부분을 손보기 시작했다.

이읔고,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됐다.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쳐들었고, 편안하게 등을 기댈 수 있었다.

영화는 15세관람가 였지만, 거침없는 단어들이 많이 등장했다.

"헉.."

평소 혼전 순결을 누누히 강조하던 내가 영화 내용에 충격을 받았다.

얼떨결에 고개를 돌린 나는 친구들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놈들의 한쪽 눈가가 아련히 젖어 있었고, 꿈꾸듯 몽롱한 시선이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런 변태같은 놈들, 너희와 절교하겠다'

마음속으로 한번 부르짖은 뒤, 곧바로 영화에 집중했다.

마침내 영화가 끝났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우리는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B군이 슬쩍 뱉은 한마디가 발단이 됐는데, 그말인즉슨 B군이 자신의 메신저 별명을 바꾸겠다는 것이었다.

"내 친구는 몽정왕.."

"이런 적반하장도 가분수지, 몽정왕은 너잖아"

A군이 잡아 먹을 듯이 B군을 노려보았다.

B군이 느끼한 웃음을 지은 후, 말을 정정했다.

"취소.. A군은 몽정왕.."

"커헉"

A군의 눈빛이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같이 죽자, 내 별명도 바꾸겠어"

B군의 당황한 표정이 A군을 향했다.

"B군은 몽정신"

"오오.. 몽정의 신"

"굿"

우리들이 감탄을 하자, B군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 지기 시작했다.

"A군은 몽정체"

"엥, 그건 뭐야?"

"뭔 소리야?"

B군의 말에 모두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너희들 완전체라고 알지? 드래곤볼에서 셀이 변했던 거 말야"

B군의 설명에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이난 B군이 직접 드래곤볼의 대사를 흉내내기 시작했다.

".... 컴퓨터는 그렇게 대답했다, 완전체만 되면 힘,스피드,체력 모든것이 우주제일이 된다고"

"설마..."

"헉"

A군이 당황해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그렇다, 몽정을 하기 위한 최고의 신체... A군 너의 이름은 바로 몽정체다"

"내가 잘못했다"

A군이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용서하겠노라, 앞으로 절대 까불지 말도록"

"흑..흑"

B군이 승리의 기쁨에 도취 되어 있을 때, C군이 한가지 제안을 했다.

평소 C군은 외계인적 사고방식으로 별 시덥잖은 소리를 지껄이곤 했는데,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C군은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B군에게 제안을 했다.

"오천만원을 준다면, 니 아들 이름을 '김몽정'으로 지을 수 있겠냐?"

"흠"

B군은 진지하게 고민을 했고, 잠시 후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할 수 있다, 이름은 나중에 바꾸면 되잖아"

"아니, 평생 바꿀 수 없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B군이 다시 생각에 잠겼고, 우리는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런걸 고민하냐? 이거 완전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A군이 씨부리든 말든, B군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안되겠어, 오천만원으로 무리야"

"그럼, 1억에 김븅신"

"컥"

"크큭"

우리는 한참동안 자지러지듯 웃었다.

"아들 이름이 김븅신 이래.. 큭큭.. 븅신 이란 한자는 있나? 큭큭"

B군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건 무리야,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터무니 없는 것은 안돼"

C군이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10억에 김븅신"

"하겠다"

B군이 바로 대답했고, 우리의 표정이 멍하게 변했다.

"미친놈"

"니 아들 인생은 생각 안해봤어?"

B군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항변했다.

"잘해주면 돼, 그 돈으로 누구보다 잘해주면 돼"

"에라이, 나가 죽어라 이놈아"

A군이 한심스러운 듯 혀를 찼다.

그런 A군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C군이 이번엔 A군에게 입을 열었다.

"삼십억에 박오크 어때? 물론 딸이야"

성이 박 이었던, A군이 잠시 망설이기 시작했다.

한참을 망설이던 A군이 대답했다.

"한다, 할 수 있어"

셋이 동시에 A군을 주목했다.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쥔 A군이 조용히 내뱉었다.

"이민가서 살면 돼, 거기서 정말 잘해 줄꺼야"

"독한놈.."


그때부터 우리는 서로에게 미친듯이 돈 액수와 이름을 제안했다.

"삼억에, 김본좌..."

"하겠다"


"팔억에, 이항문"

"물론 한다"


"이억에 박대변"

"그건 안돼, 액수가 적어"


"사억에 김겨털"

"한다"


"삼억에 이웃대"

"양호한데"


"일억에 김구토"

"안돼"


"육억에 이불알"

"한다"


"사억에 김강간"

"한다"


"이억에 박꼬치"

"그건 안돼"


"삼억에 이얼꽝"

"한다"


"칠억에 김정액"

"괜찮은데"


"일억에 박저그"

"한다"


"사억에 이구멍"

"한다"


"구억에 김벌레"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대부분 한다는 쪽으로 대답을 했다.

미래에 태어날 자식에겐 미안하지만, 그 돈으로 행복하게 해주면 괜찮다고 생각한 것이다.

C가 우리 모두에게 말을 꺼냈다.

"백억에..."

"헉"

"백..백억.."

C군은 엄청난 액수를 제안했고, 우리는 긴장한 채 침을 꿀꺽 삼켰다.


잠시후 C군의 말에 우리는 동시에 꼬리를 내렸다.

아무리 돈도 좋지만, 도저히 무리였다.

C군은 한글자씩 또박또박 내뱉었다.







"백억에.... 김아버지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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