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 엄마와 나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나의 가장 어린시절은

지금으로부터 약 20년전의 일들로

5살때의 내모습이 낡은 사진조각처럼 흐릿하게

머릿속에 아련히 남아있다.




그때 우리 어머니의 나이는 27세로

그당시로는 상당히 큰 키인 165센치의 키에

여성스러운 외모로 상당한 미인에 속하셨었다.

서랍속에 고이 간직되어있는 옛 앨범들을 뒤져보면

확실히 그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세월이라는 힘에는 그 누구도 대응하지 못한다고 했던가.

아무리 힘센 천하장사라도 일주일간 졸음을 참고나면

본인의 눈꺼풀이 내려가는 것을 들어올릴 수 없듯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늙어가고 낡아가는 것이

슬프지만 받아들여야만하는 인간의 인생이다.

20년전부터 지금까지 변해온 어머니의 인생을

내 시점으로 담아보았다.




- 20년전




천상 : 엄마, 나 이거 아이스크림 사주세요

엄마 : 나중에 착한일 하면 사줄게^^

천상 : 지금 먹고 싶은데요!!

엄마 : 알았어 대신 나중에 착한일 하나 꼭 해야해~

천상 : 네!




여느 가족과 마찬가지로

어린이공원을 거닐며 엄마손을 꼭 붙잡고 다니던 그때.

엄마에게 꼬박꼬박 존대말을 써가며

이거사달라 저거사달라 정신이 없을 때.

우리 어머니의 나이가 27세 이었을 때.

난 어려서인지 몰라도 그때 엄마가 젋고 이쁜 여자란걸 몰랐다.




- 7년전




천상 : 밥좀 줘

엄마 : 그래 잠깐만 기다려봐. 엄마가 금방 돈가스 구워줄게~

천상 : 그거 말고 다른거 없어?

엄마 : 그럼 삼겹살 구워줄까?

천상 : 삼겹살은 어제도 구워먹었잖아.

엄마 : 니 나이땐 고기를 먹어야 힘을 쓰는거야.

천상 : 몰라 맛없어 나 안먹을래.

엄마 : 너 말 안들어?

천상 : 학교에서 스트레스 받는게 얼마나 많은데 아들 반찬하나 신경 못써줘?



쾅!



나는 문을 세게 닫으며 내 방으로 들어가버렸고

당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한창 겪게되는 입시경쟁으로

뭔지도 모를 이유없는 스트레스 때문에

괜히 엄마에게 짜증을 내며 투정을 부리곤 했다.

남들은 김치반찬만 해준다고 투정부릴판에

나는 특이하게도 맨날 고기반찬만 준다고 화를 내곤했다.

-_-

미친놈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고3이었을 적엔 먹는것도 공부하는데 힘이되는거라면서

일주일에 6일은 항상 삼겹살을 구워주시곤 하셨다.

삼겹살을 가끔 먹으면 맛있지만 저렇게 맨날 먹으면

나중엔 내가 돼지가 된 기분이 든다. -_-




근데 나에겐 일주일에 6일씩 고기를 주면서

정작 본인은 김치로만 끼니를 때웠던 엄마의 모습을

그땐 왜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까?

정말 미련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튼 난 어느덧 엄마한테는 반말을 하는 아들로 변해있었고

집에서 책상에 앉아 공부하다가 공부가 머리에 안들어온다며

애꿎은 책상에 머리를 들이 박아서

책상 유리를 깨먹은 적도 있었고

일주일에 7일을 공부하는것에 너무 스트레스 받아

현관에 주먹질을 하여 현관유리를 깨먹기도 하였다.

이때도 엄마는 나를 나무라기전에

먼저 내가 다친데가 없는지 걱정부터 해주셨다.




- 4년전




내가 군대를 가게되었고, 이때부터 조금씩 어머니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틀에 박힌 생활을 잘 견디지 못하는 나로서는

사실 군생활을 하는것이 너무나 힘들었고

특히 훈련소 생활만큼은 더더욱 생활을 견디기가 수월하지가 않았다.

그러나 훈련소를 마치고 한달만에 집으로 전화했을 때,



엄마 : 여보세요?

천상 : ....엄마, 나 처..

엄마 : 천상이니? 어디 몸 아픈데는 없고? 거기 지낼만한거지? 응? 흑흑흑....

천상 : ......



통화하도록 주어진시간 3분동안

내내 아무말씀도 없이 울기만 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도저히 군생활이 힘들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천상 : 엄마, 그만울어. 여기 되게 지내기 좋아. 편해.

엄마 : 지내기 좋은 군대가 어딨니... 거짓말 하지마..

천상 : 진짜라니깐..? 나 봐봐 엄마랑 통화할때 눈물한방울 안흘리잖아

엄마 : 흑흑... 진짜 잘 지내는거지?



교관 : 3분지났다. 자, 이제 다음사람 통화하도록.



3분간 어머니와의 통화를 마치고 난 후에야

난 드디어 어머니 몰래 30분동안을 혼자 울 수가 있었다.




- 현재




집에서 편하게 누워 낮잠을 자려고 하는데,



엄마 : 야 이놈아 너 또 화장실쓰고 전등 안껐지?

천상 : 어? 내가 그랬나?

엄마 : 하여간 이놈자슥.. 이렇게 정신머리가 없어서 어디다 써

천상 : 어 미안...



요즘 어머니는 화장실 전등을 자주 안끈다며

나에게 매일같이 잔소리를 하곤 하신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그냥 흘려듣고 다시 빈둥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엄마 : 야, 너 왜 자꾸 전등 안끄냐?

천상 : 어? 화장실 전등 또 켜져있어?

엄마 : 내가 너 때문에 못산다 정말.. 정신좀 차리고 살어.

천상 : 어 그래.. 내가 깜빡했나봐.



사실 아까전에 어머니께서 화장실을 쓰고 나오시면서

전등 끄는걸 깜빡하고 그냥 나오신걸 봤다.

오늘뿐만이 아니고 사실 매일같이 화장실 전등을 안 끄는건

내가 아니라 바로 우리 어머니이시다.

본인이 요즘 건망증이 점점 심해진다며 걱정하시는데

차마 전등 안끈 사람이 어머니라고 말할 수가 없었기에

늘 내가 안끈것처럼 잔소리를 듣고 혼나는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요즘 어머니가 식사를 준비해서 주실때에는

예전보다 확실히 음식맛이 많이 짜졌다는 생각이 들곤한다.

내 동생이 어머니가 해준 밥을 먹다가

갑자기 놀란듯이 말을 건냈다.



동생 : 엄마, 이거 국이 왜이렇게 짜?

엄마 : 어? 그래? 이상하네. 아까 내가 간봤을땐 괜찮았는데..

동생 : 엄마가 와서 먹어봐 그럼

엄마 : 음... 뭐야 괜찮잖아

동생 : 헐.. 뭐야.. 엄마 미각을 잃었어?

천상 : 줘봐 내가 먹어볼께.



내가 한숟갈 입에 떠서 넣었을 때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국이 짜다는게 느껴졌다.



천상 : 니 입맛이 이상한거 아냐? 난 괜찮은데..

엄마 : 그치? 괜찮지? 얘가 얘가.. 니 미각이나 조심하렴!!

동생 : 헐..ㅜㅜ




여러 책을 읽다보니 알게된 사실이 있다.

사람은 늙을수록 점점 미각이 둔해져서 짠맛을 더디게 느끼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자연히 음식을 할때 짜게 만들게 되고

짠 음식을 점점 더 많이 먹게되서 다른 병도 더 쉽게 찾아오게 된다고 한다.

지난 기나긴 세월동안 아들과 딸을 키우느라

어머니는 미각이 둔해진것까지 잊어버리고 계셨다.




하루는 내가 냉장고에서 케찹을 꺼내서 계란에 넣어 먹고 있는데

장을 보고 돌아오신 어머니가 놀란듯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엄마 : 어? 어저께 분명히 케찹없었는데? 그래서 내가 지금 하나 사왔단말이야

천상 : 응? 아...허허... 어쩐지 없더라.. 그래서 내가 나가서 하나 사왔어.

엄마 : 그랬어? 엄마가 지금 막 사왔는데.... 왜 니가 사왔어..

천상 : 괜찮아. 엄마가 사온건 나중에 먹으면 되지.




엄마..

내가 먹고 있는 케찹..

케찹없다면서 엄마가 어제 사온 케찹이잖아..

왜 점점 이렇게 건망증이 심해져..?




내가 5살이었을때만 하더라도 젊고 아름다운 20대였던 여인이

이제는 심각한 건망증에 미각까지 둔해진

그야말로 점점 늙어가는 아줌마가 되어버린듯하다.

그렇게 만든 죄인이 바로 나인것같아서

지금까지 어머니한테 제대로된 효도한번 못한 아들노릇을 한게

뼈저리게 후회가 된다.



지금은 이마와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생기셨지만

아직 내 마음속에는

옛날 앨범속에 남아있는 젊은시절 어머니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고, 또 그 모습을 머릿속에 평생 안고 갈 것이다.

내가 아무리 자라고 커가고 늙어가더라도

어머니의 눈에는 내가 어린시절 그때의 철없는

개구장이의 모습으로 비춰지듯이.






Fin.





혹시라도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반찬이 짜졌다고 생각되는 날이 오면

그냥 웃으면서 맛있다고 해주세요^^

거창한 효도만이 전부가 아니라

오히려 그런 작은 배려가 효도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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