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통해 탄생합니다.
짜장면을 좋아하는 나, 짬뽕을 좋아하는 너.
소스를 찍어먹는 나, 부어먹는 너.
구분되는 '너'가 없다면, '나' 역시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나는 교만합니다.
나는 내가 알 수 있는 것만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짬뽕이 맵기만 한 피학적 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육수에서 비롯되는 시원한 얼큰함은 모른 채.
나는 부어먹는 사람들이 눅눅함을 즐기는 변태라고 생각합니다.
딱딱한 튀김옷이 입천장의 살을 벗겨내는 고통은 모른 채.
영화의 주인공, 트래비스 비클은 '나'입니다.
그는 포르노 영화에서 심미를 찾는 독특한 평론가이고,
한 사람만을 열렬히 사모하는 사랑꾼이자,
성적으로 착취당하는 미성년자를 구하려는 정의의 수호자입니다.
그는 '너'를 멸시합니다.
그는 뉴욕의 밤거리를 걸어다니는 약쟁이, 호모, 창녀를 증오합니다.
그는 절대로 '너'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짝사랑, 베키는 그를 향해 선언합니다.
그 역시 뉴욕에 흔하디 흔한 '너' 중 하나라고.
그렇게 그는 '너'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포르노 영화를 즐겨보는 변태이고.
짝사랑하는 여자의 직장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 스토커이며.
미성년자 창녀에 집착하는 성도착증 환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어쩌지? 이제 어떻게 하지?
혼란에 빠진 그는 온 세상의 '너'를 파괴하기로 결심합니다.
위선 가득한 상원의원,
미성년자를 착취하는 포주,
그리고 거울에 비친 '너'까지.
그의 시도는 거의 실패로 끝났습니다.
포주를 제외한 '너희'들은 거의 모두 살아남았습니다.
이제는 세상의 '너희'들에게 지탄을 받는 일만 남았겠죠.
그런데 이게 웬걸, 그는 포주를 죽이고 미성년자를 구해낸 영웅이 되어.
세상의 '너'들은 그를 '우리'라며 반기려 들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트래비스는 구분짓는 것을 그만둘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뉴욕의 사람들을 쓰레기 같은 '너'로 취급하는 것을 그만두고서.
'우리'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베키가 내민 마지막 손길을 거절한 트래비스는 다시 뉴욕의 밤거리로 사라집니다.
계속해서 쓰레기 같은 '너희들'과 구분되는 '나'로 살아가기 위해.
지루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0
0
0
161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네티켓의 기본입니다.게시물에 상관없는 답글이나 추천유도성 답글을 달지 마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