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대중, 광기와 다정함, 삶과 죽음이 끝나는 지점과 만나는 지점
★★★★★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도 있잖아요"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
아일랜드계로 보이는 인명들이 많이 보여서 문득 전율했다.

'마틴 에덴'이나 '나이트메어 앨리'처럼
시대적 배경이 긴장감을 조성하는 작품들과는 좀 다르게
아일랜드의 외딴 섬 이니셰린은 내전 중인 아일랜드와 철저히 격리되어 있다.
하지만 이니셰린 사람들 사이의 불화 또한 그 때의 그 내전과 다르지 않다.

기본적으로 아일랜드 내전의 정치적 이유는
아일랜드 독립의 방식에 관한 것이었지만
각자의 방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겐
―정치 논쟁이 대부분 그런 것처럼―
이념뿐 아니라 수많은 말할 수 없는 사정들이 얽혀 있었을 것이다.
이니셰린의 사람들도 수많은 각자의 이유로 서로 등을 돌린다.
말해야만 하는 사람과 말하고 싶지 않은 사람,
뭔가를 남기고 죽어야만 하는 사람과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친구들에게 다정하기만 하면 되는 사람 등등.

내일의 망자가 오늘의 망자를 만드는 전쟁터처럼,
왜 싸우게 되는지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들은 갈등하고 자해하며 서로를 마모시킨다.

쓸쓸하고 우울하며 위험한 싸움의 끝에
남은 일말의 다정함을 찾을 수 있다면 다행이다.
다정함이라는 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오해하고 있더라도 그 상대의 손을 잡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강한 힘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