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인적으로 메세지가 담긴 영화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가 메세지를 위한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라는 말에는 120% 동감하는 편인데, 영화의 재미와 메세지를 동시에 담을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은 영화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고, 또 그만큼 많은 것이 영화 아니겠는가
우연히 어느 분의 도움으로 악명만 들어온 이 영화를 접할 수 있었고, 나는 8시간 가까이 이 영화에 때문에 머리를 쥐어 뜯어야 했다
....대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라는 생각으로.
영화는 총 4개의 에피소드로 되어있지만, 애초에 기승전결의 형식을 띈 스토리가 아니다.
오히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이미지를 나열하는 일종의 청사진 모음집 같달까.
첫 번째는 메스를 이용해 여성의 난소를 끄집어내고
두 번째는 매춘을 하는 여동생을 이성으로 사랑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세 번째는 나체로 자연에서 뒹구는 사람들의 모습을 잠시 보여주더니
네 번째는....한 남자의 악몽을 보여주는데, 문제는 이 남자....꿈 속에서 성기의 가죽이 벗겨지는 끔찍한 고문을 당한다.
그것도 모자라 신성모독을 하기로 작정한 건지 갑자기 교회 앞에서 울부짖는 예수님 형상의 남자를 보여주더니 그를 어디론가 데려간 후 몸을 물어 뜯고, 몸에 소변을 뿌리고 내장을 뽑는 세 여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쓰면서도 다시 생각하니 정신이 살짝 아득해지는 느낌이긴 한데.
무튼, 영화는 국내에서는 <대뇌분열> 이라는 제목으로 통하긴 하지만, 원제를 해석해보면 '무의식의 잔혹함' 이다
제목도 그렇고, 첫 시작시 나오는 나레이션에서 '인간의 현실은 추악한 방향의 이면을 향한다' 라는 대사에서 이 영화가 기본적으로 성악설을 깔고 들어간다는 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난소에 눈이 달려있는 기괴한 형상은 시작부터 이 영화가 보통의 정상적인 구성에서 벗어나 있음을 암시한다
두 번째에서 남자는 '정자는 창조의 선물이며, 월경은 질 나쁜 농담이다' 라는 말을 한다
이것만 놓고 보면 살짝 남성 우월주의 느낌이 나긴 하지만 당연히 그딴 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이 영화는 '인간 혐오에 대한 청사진' 에 가깝다
남자가 임신한 여동생이 출산을 하자 그 아기를 눈 앞에서 죽여버리는데, 이런 관계는 주로 야생에서 수컷 동물들이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벌이는 행위와 동일하다
게다가 자신의 동생을 이성으로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정상적인 사고방식도 아니고 （아니, 애초에 이 영화에 정상이라고 보여지는 에피소드는 단 하나도 없긴 하지만）
세 번째는 얼핏 보면 평화로워 보이긴 하지만, 땅을 파헤치고 나무를 꺾으면서 쾌락을 느끼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인간이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 라는 걸 은근히 암시하고 있다
심지어 땅과 부러진 나무가지에서 피가 나는 걸 보면 거의 확실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
네 번째 에피소드를 짚고 넘어가기 앞서, 이 영화에는 성적인 암시와 묘사가 굉장히 많이 나온다
첫 번째는 여성의 난소, 두 번째는 말 할 것도 없고 세 번째의 경우 칼을 입에 넣고 핥는 남자가 나오는데 보통 칼은 남성성을 의미하지만 이 장면에서 칼을 들고 있는 사람은 여성이다
이건 아마도 여성성과 남성성의 전복이 아닐까 싶은 장면이다.
정신 분석 심리학에서 프로이트는 삶에 대한 욕망, 즉 '리비도' 가 무의식에 깔린 정신적 에너지 라고 주장했는데
네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그 남성성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성기를 불구로 만듦으로서 이런 '성적 자기 가치' 를 무너트리려 한 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기독교 그 자체를 상징하는 예수의 모습을 한 남자를 끔찍하게 무너트림으로서 결국 '종교도 인간이 만든 것이며 그 자체에는 어떠한 가치가 없다' 라고 주장하려는 것이 감독의 의도 아닐까..... 싶기는 한데
뭐 이건 어디까지나 그냥 내 개인적인 생각이니까...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개인 -> 가족 （혹은 아담과 이브） -> 인류 -> 신, 이라는 계단 형식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난 이 영화를 다른 사람에게 도저히 보라고 추천해 줄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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