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라는 미디어를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영화'의 유해성에 이야기 한다고 한다면 사실 그닥 유쾌하진 않을 것이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게임을 오래 하면 사람이 폭력적으로 변한다' 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불쾌한 주장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묘한 영화가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을 좋아할 수 밖에 없기도 하다
유선 방송 사장 맥스는 고통에서 성적으로 흥분하는 닉키와 사귀게 된다.고객들의 욕구와 환상을 비디오를 통해 해소 시켜주는 걸 업으로 삼은 맥스. 그는 어느 날 '음극서 전도단체' 를 통해 브라이언 교수를 만나고, 그가 만들어낸 '비디오드롬'을 통해 그 무엇보다 강렬한 환각을 맛보게 된다
크로넨버그 감독 영화의 특징이라면 역시 뭐니뭐니해도 '인체 결합' 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보통 공포 영화에서 '인체 훼손 or 절단' 이라는 방식을 통해 공포와 혐오를 유발한다면, 그는 인간을 다른 무엇가와 결합시키면서 그만의 독특하고 기괴한 영화 세계관을 구축해왔다
（그나마 가장 대중적인 <플라이>만 봐도 인간과 파리의 결합이며 <크래쉬>는 인간과 기계의 결합과 섹슈얼리티 라는 그로테스크한 조합을 절묘하게 성공시켰다. 이건 크로넨버그 감독이 아닌 이상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영화를 포함한 미디어를 보는 이유는 뭘까?
당연하게도 그것이 '재미있기 때문' 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근본적인 재미는 어디서 올까?
현실에선 겪을 수 없는 경험에 대한 대리 만족, 혹은 판타지의 구현일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점점 지나면서 경쟁은 과열되고 욕구는 높아지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끔찍하기 그지 없는 영화이다
영화 속 맥스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기괴한 환상에 빠져들고 이내 보여지는 상징에서 일반적인 사람이라고 볼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른다
（그의 오른손에 결합된 권총은 남성의 성기를 의미하며 복부에 생긴 틈은 여성의 성기를 상징한다. 묘하게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연상 되는 부분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래서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영화가 더 끔찍한 이유는 그가 영화에서 말한 '미디어라는 도구를 통한 폭력의 생산과 소비'는 이제 비디오와 TV를 넘어 인터넷에 만연하게 늘어져 있기 때문이다
2023년이 고작 하루 남은 지금 이 시점에 무려 40년 전 실험 정신으로 무장한 영화가 여전히 그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건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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