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말 개봉한 초록밤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GV를 통해 배우분들, 윤서진감독과 함께 했던 시간이었고
굉장히 인상깊은 작가가 등장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독립영화의 최근 추세가 어떤지 제가 감히 판단하긴 어렵지만, 최근 보게된 몇편의 단편영화들 그리고 장편을 보면서 청년 세대와 부모 세대에 대한 청년 입장에서의 성찰같은것이 느껴진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방향은 모두의 아픔이 드러나는 방식이라서, 굉장히 안타까운 한국의 현재를 바라보게 되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우리 청춘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고 있는 예술은 어찌보면 영화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감히 해봅니다. 지금의 음악은, 가사들은 이제 시가 되지 못합니다. 대중가요의 가사들은 막연한 사랑을 노래하거나 자극적이고 반복적인 후크로 중독성, 청자를 사로잡고 있긴 하지만 진정 삶을 성찰하는 가사를 만나본 것은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다이나믹 듀오가 "청춘"이라는 곡을 부를때처럼요.

각설하고 "초록밤"은 집요한 영화입니다. 롱테이크로 끌어가며 긴장감과 감정을 오롯이 그 화면에 담아내려는 노력이 너무도 끈질기고, 그래서 슬프고 답답한 감정이 가득한 게 '힘들다'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무기력함, 무력함. 목을 조르는 듯한 답답함은, 영화속에서 대놓고 밧줄로 표현되고, 그들의 밤은 짙은 녹색의 아주 습하고 밀림같은 장소로 장면화됩니다.

큰 드라마가 있지않고,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장례식장에 모이게된 가족이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는 동안의 여정동안 겪게되는 평범하고도 잔혹한 삶의 단면들을 살펴보는 영화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신이 롱테이크에 가깝고, 카메라의 움직임 또한 극도로 제한되어 정적인데, 그 화면에 감정선을 부여하는 것은 사운드였습니다.

세밀하게 표현되는 현실의 소음이 계속 들립니다. 자동차의 엔진소리, 떠드는 소리, 전화벨소리, 비행기소리 등...동시에 나가시마히로유키의 스코어들이 들려오면서 화면안에 담기는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게 만듭니다.

소음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물들에겐 어떤 강박이라든지, 짜증이라든지, 거슬리는 것들이면서 동시에 관객으로 하여금 화면에 현실감이 느껴지는 장치로서도 활용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종수의 주변에는 소음이 항상 들렸던 것이 종수라는 인물의 심리적 상황이라든지 그 사람의 현실적 요건을 설명해주기도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파주에서는 대북확성기의 소음, 송아지의 울음소리, 티비에서 떠드는 뉴스나 예능, 시도때도 없이 울리는 집전화의 소리 서울의 소음... 등이 종수가 듣게되는 그런 소리인 것이죠.
（그리고 그것은 수수께끼의 게츠비 '벤'이 듣는 음악과 상당히 대비됩니다）

초록밤 또한 그런 장치로서의 여러 사운드들이 층위를 구성하고, 볼륨을 조절해내면서 훌륭하게 장면에 감정을 실어넣는 것에 성공한 것 같습니다. 그 감정은 어딘가 처연하고 갑갑하며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그 공허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초록밤 속 인물들은 존재하나 프레임 바깥에서 안으로, 안에서 바깥으로 넘나들며 현실에 그들이 어딘가에 살아가고 있는듯한, 또한 그들의 삶의 무게에 공감하게 하면서, 우리 삶을 성찰하고 가장으로서의 아버지와 가정을 지탱해온 어머니의 모습을 이해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저 다큐멘터리, 일기장이 아니듯이 영화를 보고 있다. 라고 생각이 드는 지점이 있는데, 그것은 갑자기 죽었을것이 당연한 개가 어머니（故김민경 배우님）앞에 피투성이로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마치 지아장커의 '스틸라이프'에서 등장하는 뜬금없는 비현실적 장면을 생각하게 만듭니다.（갑자기 건물이 날아가는 장면）

그것은 시네마적인 무의식의 표출, 이리치이고 저리 치인 이미 상처투성이인 어머니의 자화상을 화면에 고스란히 노출시키고 있습니다. 공포와 함께 연민의 의식을 같이 느끼는 어머니의 표정은, 김민경 배우님의 연기는, 그야말로 어떤 경지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초록밤은 분명 작가적 야망이 보이는 그런 영화인것 같습니다.
우리의 밤은 왜 그렇게 외로울까요.


여러 독립영화관에서 상영중이니, 기회가 되시면 보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