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신론자 이지만, 종교에 대해서 딱히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냥 없어도 그만이고, 있으면 좋다 하는 정도...?
하지만 종교, 혹은 믿음이 정말로 마냥 좋기만 한 것일까? 어쩌면 이 영화는 그런 질문에 대한 감독의 답변일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 의문의 사람들에게 납치를 당해 온갖 학대와 폭력을 당한 루시
고아원에 들어가게 된 루시는 같은 방을 쓰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안나와 친해지게 되지만, 그녀가 어릴 적 봤던 고문 당하던 여자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그녀를 여전히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시간이 지난 후, 어느 한가로운 주말의 아침
단란한 가족의 집에 불청객 루시가 찾아온다. 다만, 빈 손이 아닌 산탄총과 함께.
집안의 가족을 처참하게 살해한 루시를 찾아온 안나
하지만 루시는 오직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정체불명의 여인에게 공격을 당하게 되고 결국 루시는 자살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들의 비극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흔히들 '공포 영화 매니아도 기피하는 영화' 라는 악명으로 불리는 이 영화
아마 너무 유명해서 웃대인들도 다들 이름 한 번 정도는 들어보지 않았을까 싶은 영화다
이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이라면 다들 하나 같이 '잔인하다, 불쾌하다' 라고 말 할 것이다
뭐 어쩔 수 있나. 사실인 것을.
영화 속에 나오는 불쾌한 폭력의 향연이 영화를 그렇게 만든 것도 사실이고.
다만 나는 이 영화를 굉장히 흥미롭게 봤다 （그렇다고 내가 SM에 흥미가 있는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라）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볼 때 중점을 둔 포인트는 바로 '종교와 믿음' 이었다
루시를 인간의 악 / 안나를 인간의 선, 으로 분류하면 영화는 한결 이해하기 쉬워진다
루시가 저지른 태초의 죄는 바로 '고통받는 이를 외면한 것' 이리라. 그리고 이 죄책감은 그녀를 평생 따라다니게 된다
두 번째 죄는 바로 '천사를 죽인 것'
이게 뭔 소리냐 하면, 영화 초반 등장한 가족 중 어머니의 이름이 가브리엘, 즉 대천사의 이름이다
그런데 이 부분도 감독은 일부러 성경을 상당히 뒤틀어 버린 것이 느껴졌다
가브리엘은 애초에 남자로 묘사될 뿐더러, 그녀는 첫 등장에서 집 바깥에서 배수관 같은 걸 고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남편이 직접 요리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성경에서는 이런 '고정된 남녀의 역할' 을 매우 강조하는 걸 보면
감독이 의도적으로 뒤집어 버렸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가브리엘을 처참하게 살해하는 것 역시 루시다
즉 그녀는 천사를 죽임으로서 타락한 천사이자 악마, 루시퍼로 재탄생 하는 것.
일반적인 영화라면 권선징악으로 루시가 심판 받아 마땅하지만, 스스로 자살하는 것 역시도 어쩌면 감독이 관객의 예상을 뒤틀어 버린 것이 아닐까 싶다
이후 등장하는 비밀스런 종교 집단은 '고통으로 천국을 엿볼 수 있다' 라는 요상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대체 세상 어느 종교가 사도 마조히즘을 교리로 삼는단 말인가
아니, 어쩌면 감독에게는 '스스로를 채찍질 하며 신에게 가까워지려 하는' 모든 종교가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장면도 아마 자신의 모든 믿음이 틀렸다는 걸 안 집단의 우두머리가 지금의 집단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p.s 앞에서도 말했지만 난 이 영화를 굉장히 재미있게 보고 <세르비안 필름> 의 경우 3일 동안 후유증에 시달릴 정도로 충격적이었는데, 의외로 <세르비안 필름> 보다 이 영화가 더 충격적이라는 사람이 많아서 놀랐다
아마도 예상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 전개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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