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평 : 당신이 꼭 봐야 할 컬트 영화
간혹 그런 영화가 있다. 아무런 생각도, 기대도 없이 골랐는데 가슴 한 구석에 천천히 들어와 그대로 박혀버리는 영화들
한참 정신적으로 내가 뭘 해야 할지, 뭘 할 수 있을지 몰랐던 20대 초반 나를 울린 영화
<성스러운 피>는 나에게 그런 영화였다
피닉스는 서커스 단장인 아버지와 양 팔이 잘린 채 살해당한 소녀를 숭배하는 사이비 종교 교주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환경이 환경인지라 범상치 않은 그의 어린 시절 유일한 안식처는 자신과 비슷한 또래인 소녀 알마 뿐.
교회에서 나온 사람들로 인해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교회는 사이비로 몰려 강제로 철거 당하고, 아버지는 단원들이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불륜을 저지르는 이런 막장 환경 속에서 자라던 피닉스
어느 날 밤, 눈 앞에서 남편의 불륜 현장을 지켜보던 피닉스의 엄마 콘차는 자기 남편의 성기에 염산을 부어버린다
화가 난 남편은 그녀의 양 팔을 잘라버리고, 피닉스가 보는 앞에서 스스로 칼로 목을 그어 자살해버리고 불륜을 저질렀던 여자도 알마를 데리고 그대로 떠나버린다
충격으로 인해 정신 병원에서 지내며 성인이 된 피닉스.어느 날 그는 병원 바깥에서 자신을 부르는 어머니의 부름을 듣고 병원을 탈출하게 된다
이 영화는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영화들 중에선 그나마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편이었다
（적어도 <홀리 마운틴> 이나 <판도와 리스> 에 비해서 이긴 하지만, 그냥 대중 영화 보듯이 하면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로 이게 뭔 영화야 싶긴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방식을 너무나 좋아한다
심리학, 신화 등등 온갖 잡학 지식을 끌어와 자신만의 스타일로 세련되게 연출해 빚어내는 그만의 요리를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영화는 결론적으로 구원에 대한 영화이다
어릴 적부터 억압 받으며 살아온 주인공, 자신의 의지를 거세 당하고 어머니의 팔이 되어 살다가 결국 자신을 짓누르는 모든 현실을 깨트리고 구원을 받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그 당시 꽤나 동질감을 느끼고 위로를 받았던 것 같았다. 결국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주인공의 대사를 계속 나 혼자서 따라하며 고개 숙이고 울었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이 밑으로는 개인 해석 및 스포）
서커스단과 사이비 종교라는 두 집단은 언뜻 보면 서로 다르지만 상당히 닮은 구석이 있다
그건 두 집단 모두 완전히 닫힌 사회라는 것
또한 영화는 첫 시작에서 정신병원에서 생활하는 성인의 피닉스를 보여주는데, 이는 그가 성인이 되어서도 정신은 여전히 어린 아이의 그것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음을 （즉 성장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이 닫힌 사회는 아직 어린 아이인 피닉스의 정신적 성장을 방해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어버린다
피닉스의 아버지 오르고는 지극히 마초적인 인물이다
그의 장기가 칼 던지기 묘기라는 것도 꽤나 의미심장한데, 칼은 극 중 영화에서 남성의 성기를 은유하며, 그가 어린 피닉스의 가슴에 자신과 똑같은 문신을 새기는 것 역시 아들=자신의 분신 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을 남기기 위함이리라
이에 반해 피닉스의 어머니 콘차는 그와는 완벽하게 정 반대되는 인물이다
그녀는 성폭행의 위기에서 완강하게 저항하고 결국 팔이 잘려 죽은 소녀를 숭배하는 인물이다
다만 '순결' 을 지키고 죽은 소녀라는 인물에서 보여지듯 그녀는 '순결' 을 숭배하는 인물이며, 또한 '신도를 이끄는 자기 자신을 믿는' 완벽한 사이비 이며 이는 평소에 조도로프스키가 종교를 바라보는 시선이 온전히 묻어난 영향이 아닐까 싶었다
피닉스의 유일한 구원자 알마는 그들과는 정반대로 말을 할 수 없는 소녀이다
하지만 들을 수 없고, 말 할 수 없기에, 세상 그 어떤 부정도 타지 않은 '순수함' 을 간직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피닉스는 콘차와 마임 공연을 하게 되는데, 이때 다른 여성의 대시를 받거나, 여성에게 하기도 한다
첫 번째 여성에겐 자신의 아버지를 흉내 내며 （칼 던지기 묘기를 한다） 어떻게든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 시켜서 어머니의 지배를 벗어나고자 하지만 이내 실패한다
두 번째로는 레슬러 여성을 유혹하지만 콘차에게 들키게 되고, 자신 이외의 모든 여성은 부정하다는 그녀의 세뇌를 받으며 살아온 피닉스는 그녀에게 자신의 팔을 부러트려 달라고 한다
피닉스에게 팔은 자신의 팔이 아니라 자기 어머니의 의지를 대체하는 '살아있는 의수' 일 뿐이다
팔을 부러트려 달라고 한 것도 타인의 힘을 빌어 억압을 벗어나고자 했던 발버둥이지만 역시 실패할 뿐
결국 여자들을 살해하게 된 피닉스가 그녀들의 얼굴에 하얀 페인트를 칠하는 것은 어린 시절, 자신의 유일한 안식처였던 알마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너무나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를 구원하는 것은 알마의 역할이었다
구원, 구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보여주고 싶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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