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건 발생 전
최근 들어 연락을 피하고 읽고 무시해 버리는 것 때문에 왜 그런지 말을 해달라고 하였다. 귀찮고 연락하기 싫으냐고 물어보면 보고 싶다거나 이해해달라는 말이 돌아왔다. 몇 번을 물어봐도 제대로 된 답변 하나 없이 이모티콘이나 무의미한 ㅋㅋ 뿐이었다. 약속을 잡아 만나서 이야기 하자고 해도 당일에 약속을 취소하거나 약속을 잡고 다음날에 취소를 하였다. 사유는 일이 바빠서. 약속을 깬 당사자는 다음 약속은 잡을 생각이 없었다. 오로지 나 혼자서만 답답해 하고 매일매일이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고 사건 당일이 되었다.

# 택시
이 날까지도 만나기 직전까지도 여느 때와 같았다. 그러던 중 만나서 이야기 하자는 말을 들었다. 00시 24분 아직 일 중이라는 말과 함께. 이 말에 힘을 얻고 알바를 마치고 씻고 말끔한 모습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보는건데 꾀죄죄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마음에 급하게 씻었다. 02시 15분 택시를 타고 회사 근처인 뚝섬 역으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아직일중이냐고 물어보았고 지금 택시를 타고 가고 있다고 하였다. 30분이면 도착하니까 기다려달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여기가 어디라고 오냐고. 주말에 시간되면 보던가 다음주에 보자고 한다. 이사님과 동대문에 가서 구두를 구해야 한다고 한다. 회사 사람들이랑 같이 있고 못 나간다고 하였다. 돌아가겠다고 말은 하긴 했지만 답장이 온 건 도착할 때 쯤이라 뚝섬까지 갔다. 일이 끝날 때 까지 기다렸다가 집까지 걸어 가면서 얘기를 조금이라도 나누고 얼굴이라도 볼 생각이었는데 이기적인 나만의 생각인 거 같았다. 앞에서 누가 기다리고 있다면 일에 집중도 안되고 신경 쓰여 이도저도 아니게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해졌다.

# 뚝섬역 2번 출구
2번 출구에서 내리려고 했지만 기사님께서 돌아가야 된다고 하셔 건너편 7번 출구에서 02시 44분에 내렸다. 회사 건물이 보인다. 이왕 온 거 근처 편의점이나 24시간 카페가 있으면 좀만 있다가 돌아가자 했다. 2번 출구 앞에 편의점이 있는 거 같아 발걸음을 옮겼다. 회사 건물 바로 앞 편의점이었다. 앞인지 건물 내인지는 확실하진 않다. 걸어가던중 익숙한 뒷모습이 보인다. 내가 만나고자 했던 사람이 앉아 있다. 회사 안에 있어야 될 사람이 왜 여기에 있을까 의문을 가지며 그대로 지나쳤다. 앞에는 낯선 남자가 앉아 있었다. 이사님이랑 있다는 말에 이사님인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답답한 사무실에서 나와 밖에서 대화를 하는건가 일 하는데 방해를 하지 말아야 겠구나 하였다. 스쳐지나가면서 본 모습을 다시 생각해보니 좀 의아했다. 이사라는 직책이면 4050대 정도는 되어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을 갖고 다가가보니 너무 젊은 것이다. 남자의 피부톤이 너무 짙어 처음 봤을 때는 못 느꼈지만 걸어가며 떠올려보니 젊은 남자였다. 궁금증을 갖고 전철 출구로 가서 지켜보았다. 2번 출구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지켜보니 잘 보였다. 점점 의혹이 커져갔다.
뭐가 그리 좋은지 박수까지 쳐가며 이야기를 나눈다. 가만히 지켜보던 중 ‘조심히가 미안’ 이라는 문자가 왔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찾아간 걸 미안하다고 하였다. 읽고 무시해버리는 그녀. 바쁜가보네라는 문자를 보내본다. 내 시야에는 그녀의 핸드폰 액정이 보인다. 밝아지지 않는 액정의 모습. 아무리 보내도 바뀌지 않는다. 내 연락을 그동안 무시하기 위한 첫단계로 알림설정을 꺼버린 것이었다. 내꺼 알람을 꺼놓으니까 바로 보내도 못 보지라고 보냈다. 어이가 없었다. 그 뒤에 온 문자.
“우리 서로 연락 안하는게 좋은거같아..”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갑자기 왜 이러는지 어제까지만 해도 고맙고 이해해 달라 하였는데 이런 문자를 받으니 머리가 띵 했다. 얘기 좀 하자고 했더니 안될 거 같다는 말이 돌아왔다. 전화를 해본다. 안받는다. 어떤식으로 안받나 지켜본다. 앞에 있는 남자가 전화를 달라고 손을 흔든다. 다시 걸어보았다. 이번엔 받았다.



# 그녀와 2주만의 전화통화 （feat. 낯선남자）

“응”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하.....응?”
“갑자기 무슨 말이야?”
“하....만나서 이야기 하고 싶었는데 니가 나를 찾아온거야”
“안보고 돌아갔잖아..”
“후.......”
“무슨 이유 때문인데 갑자기?”

말을 멈추는 그녀. 소란스럽다. 줘봐라는 소리가 들린다. 강제로 뺏어가는 앞에 있는 낯선 남자와의 통화가 시작되었다.

“여보세요”
“예 여보세요”
“예 안녕하세요, 저 누나 친한 동생인데 딴 게 아니고 지금 혹시 어디계세요?”
“밖이죠”
“밖에 계시는구나”
“누구세요?”
“저 친한 동생인데요 밖에 어디계신데요?”
“그거는 왜요?”
“그거는 왜요라고 물으시면 답해드리는 게 인지상정이죠.그죠?”
“네;;”

이미 남자와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난 남자가 뺏어서 받았어도 침착했다. 남자는 내가 회사 앞을 지나가면서 자신들을 봤냐고 물어보았다. 난 못 보았다고 발뺌하였다. 그녀와 주고 받은 문자를 봤다고 남의 일에 끼어드는 건 아닌 거 같지만 이라며 말을 시작한다.

“오지랖이 넘치시네요”
“네 제가 오지랖이...뭐라구요?”
“오지랖이 과하시다구요”
“오지랖이 과하니까 어디냐고 이 씨x새x야”
“아니 뭔 지랄이야 개병x같은 새x가 또라이 같은 새야. 야 아나 미친새x 아니야 이거”
“야 나 미친새x 맞으니까 일로와봐”
“지x 똥싸고 있다 개x신같은 새x가”
“허허 지x 야”
“뭐”
“오라니까?”
“내가 왜 가? 내가 개 x같으 쌍판떼기 보러 내가 거길 왜 가냐고 이씨x롬아”
“야 그럼 너 어디야 내가 갈게 이 씨x새x야”
“니가 알아서 뭐하게 미친새x 아니야 이거”
“아니 그니까 어디냐고 내가 갈게 니가 행차 못하시니까 내가 간다고”

가니 안가니 못가니 애들 말장난을 조금 하였다.

“아 씨x 개병x 또라이 같은 새x랑 엮이네?”
“아 그래 많이 엮이지?”
“x같네 이새x"
“야 내가 니보다 동생인거 아냐?”
“동생이고 나발이고 미친새x야”
“와봐 시팔새x야”
“부천으로 와 이개병x아”
“가면 택시비 주냐? 내가 너 만날라고 택시비까지 줘가면서 가야되냐?”
“말장난 하네 이 미친새x가”
“말장난? 말장난 제대로 해줄까. 말도 못하는 새x가 말장난이래 븅x같은 새x가 뒤질라고 진짜”
“아 x나 열받네 이새x”
“너 부천 주소 찍어. 내가 갈게. 찍어.내 번호 알려줄테니까 찍어”

옆에서 그녀가 말리나보다.
“아 놔봐 씨x x같네 진짜”
“아나 쌩양아치 새x 아니야 이거”
“양아치는 니지 븅x같은새x야”
“저기요”
“갑자기 저기요?”
“저기요 오지랖 부리지 말고 꺼져 이 미친x아”
“오지랖 부리는 건 인정...인정한다고 인정하는데 이 씨x롬 안되겠네 이개새x가?”
“너 분노조절 장애야? 정신병 좀 있는 거 같은데 정신병원 좀 가봐야되는 거 아냐?”
“뭐? 분노조절 장애? 정신병~너 진짜 나 만나야겠다 이 씨x새x야 진짜”
“뭐 이개새x야”
“내가 이 번호로 전화할테니까 받아 안받으면 니가 쫄리는거니까 받아”
“그렇게 열받앗나봐”
“열받았으니까 받으라고”
“그래 해봐 이 븅신 같은새끼야”

6분 10초간의 태어나 살면서 제일 기분 더러운 전화 통화를 하였다. 끊자마자 바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어”
“니냐?”
“어?”
“니냐고”
“나다 이 븅신아”
“목소리 개x같은 거 보니까 니 맞네”
“야 이 번호로 찍어 니 집에 있는 시간이 언제냐?”
“니가 왔다고 말해주면 내가 나갈게 ㅎㅎ”
“오케 내가 주소 받고 나서 너한테 찾아갈게 연락을 주면되지 그지?”
“그지~”
“내가 갈테니까 뭐 x대가리 같은 애들 부르든 뭐든 해봐”
“내가 너같은 x밥새끼 상대하는데 누굴 부르겠냐”
“와 엄청나다 씹새x야”
“그래 이 개븅x같은 또라이새x야 연장 챙겨서 와 븅신아”
“뭘 챙겨와?”
“연장이랑 구급대 챙겨서 와”
“연장이랑 구급대를 챙겨서 와? 너 무슨 랩퍼냐? 지랄하고 x까고 있네 연장 같은 소리하고 있네 너 본 건 많구나? ”
“아니 니가 하는 꼬라지가 딱 그 꼴이잖아 븅신아~너 중2병 환자야?”
“그럼 너는 그 나이 먹고 뭐하는거냐?”
“너 술쳐먹었냐?”
“내가 술 쳐먹든 말든 니가 뭔상관인데 내가 내일 맨정신에 전화할테니까 전화 똑바로 받아”
“이거 완전 술주정 부리고 있는 거 아니야. 야 술김에 그렇게 가오잡고 그러는 거 아니야 병신아”
“가오를 잡는다? 그럼 내가 내일 술 안먹고 전화했을 땐 어떻게 대답할거냐?”
“개x도 안되는 새끼가 술쳐먹고 전화한다고 지x똥싸고 있어 내일 이불킥이나 하지마 븅신아”
“너 내일 내가 술안먹고 전화할테니가 어떻게 받나 보자”
“그래그래 어떻긴 더 쪼다 같겠지 지금 술기운에 센척 하지만”
“내가..니 생각엔 센척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내일도 이렇게 받으면 너가 어떻게 생각할지 진짜 궁금하다. 내일도 이렇게 하면 센척이냐 뭐냐?”
“나도 궁금하다 그냥 븅신이지 중2병 환자지”

옆에서 그녀가 하지마 하지마라고 외친다.

“그러니까. 찾아가겠다고”
“그래 찾아와 요새 심심한데 잘됐다”
“끊으면 주소...뭐? 심심하다고?”
“그래 심심한데 잘됐다고 좀 따분했거든 미친x아”
“어 나두”
“어 그럼 상부상조네”
“니가 좋아하는 연장 챙겨서 와봐. 나는 연장같은 x도 아무것도 안들고 갈테니까 니가 좋아하는 챙겨서 와”
“좋아하진않아”
“아 어쨌든 오라고”
“니 후달릴까봐 생각해준거지 연장 챙기라고”

또 다시 그만해 그만해가 들려온다.

“알았으니까 주소 찍어 븅신아”

전화가 끊겼다. 다시 걸었다.

“말을 하다 말고 왜 끊어~”
“주소 보내라고 븅신새끼야 끊어!”

또 전화가 끊겼다. 또 다시 걸었다.
“여보세요 술 꼴았어? 술취해서 말을 못하네 아까 지껄이던 주둥아리 어디갔어?”
“예 형.”
“옆에 여자 좀 바꿔봐”
“이거 내 핸드폰인데 내가 왜 바꿔”
“아 씨x 말장난 하지마 또라이같은 새끼야”
“나 또라이 맞는데 진짜 또라이 뭔지 보여줄테니까”
“니 이름뭐냐 근데?”
“이ㅈㅇ이다. 씹쌔야”
“너도 여기 회사야?”
“응 회산데 어쩔건데. 아 니가와 x같으면”
“너 어디살아?”
“나 여기살아 성수동. 뚝섬역 1번 출구 옆쪽에”
“1번역 출구에서 널 부르면 나오는거야?”
“어 나올게”
“아 간단하네”
“그니까 와서 불러 좀”
“그래~ 여자바꿔봐”
“직접 그쪽으로 전화해서 하라고 이사람이 안받는다고 하는데”

이번엔 내가 끊고 다시 걸었다.

“ㅋㅋㅋ재밌다 재밌어”
“너도 재밌다 너도 말장난 꽤나 하는구나?”
“찰지게 하네 서로”
“뭐라고”
“찰지게 한다고 우리 이런식으로만 안만났으면 절친되서 너 존나 나한테 쳐맞았을텐데”
“아 너한테 쳐맞겠다고 맞아보자 뚝섬역 와서 불러줘 맞아줄게”
“아 그래? 맞아줄거야? 맞고 엄마한테 가서 일러야지”
“와 그니까 와 이렇게 하자 니가 와서 부르든 주소 찍든”

전화가 끊겼다. 씨발

“여자 좀 바꿔주세요”
“여보세요 형. 제가 바꾸는 게 아니고 형이 전화를 하셨을 때 누나가 받아야지 그게 되지 않을까요. 누나가 안받는 건 이유가 있겠죠?”

갑자기 존댓말이다.

“이렇게 난리 치고 나서 안받는 것도 진짜 좀 그렇네요”
“네 어떻게요?”
“이렇게 개지x 떨고 나서 이런식으로 그냥 넘어가려는 게 개 x같네요?”
“아 개x같으시구나 근데 이거는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거 아시잖아요?”
“네 그렇긴하죠”
“그러니까 누나가 전화를 받을 때 까지 하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통화 내용은 녹음되어있는 걸 바탕으로 작성하였으며 거짓은 없습니다.）

# 그녀의 집 앞
이렇게 낯선 남자와의 짜릿한 전화통화가 마무리 되고 여자한테 전화를 걸었지만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전화를 하면서도 나는 편의점 앞에 앉아있는 남녀를 보고 있었다. 몇 번 되지도 않지만 중간중간 그만 하라는 여자도 보았고. 통화하게 놔두자 체념한 듯 주변을 어슬렁 거리던 모습도 보았다. 당장 찾아가서 개지랄을 떨고 싶었지만 근처에 사람들이 꽤 있었기에 일단 기다렸다. 남녀 둘이 편의점 옆 골목으로 자리를 옮겨 얘기를 나누다가 골목을 따라 쭉 걸어간다. 뚝섬역 1번 출구에 산다던 저 새끼의 말이 떠올라 왜 저기로 가는걸까 의구심을 가지고 몰래 따라갔다. 저 새끼랑 뭔가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의심과 어디서 나타나 얘기를 시작하면 좋을지 생각하며 거리를 두고 따라갔다. 15분 정도는 걸어갔을까 사람 사는 건물로 들어간다. 나는 바로 따라가지 않았다. 경비실 입구를 지나 건물 입구 앞에서 얘기를 나누는 두 사람을 기다렸다. 무슨 할 말이 더 있는지 궁금했지만 들리지는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고 답답한 나머지 남녀에게로 갔다. 남자는 날 보더니 눈을 부라리며 그녀에게 이 사람이 맞냐고 물어본다. 나는 그녀에게 얘기 좀 하자고 하였다. 그녀는 할 말 없다고 들어가려 한다.

“개 막장으로 끝나는구나 ㅋㅋㅋㅋㅋㅋㅋ얘기 좀 하자고”

남자가 나를 가로막아 섰고 여자는 내 앞으로 온다. 얘기할 마음이 생겼는지 왔다. 그동안 왜 연락을 그런식으로 하고 무슨 생각이고 회사 스케쥴이 생겨 약속 취소했는데 거짓말인 거 안다고 왜 그랬던건지 물어보았다. 대답을 들었다. 중간중간 남자새끼가 끼어들어 개x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오지랖 부리지 말고 얘기 좀 하게 꺼지라고 했다. 감정이 격해져서 남자한테 말을 할 때면 여자는 왜 그런식으로 말하냐고 하지 말라고 한다. 기분이 더 드러웠다. 그래도 알고 싶은 건 꼭 해결을 해야되는 성격이기에 최대한 무시하고 물어보았다. 답변은 웬만큼 들었고 분노조절장애자 새끼를 상대하였다. 전화통화 때의 패기를 꾸준히 보여주면서 중2병을 가진 자 다운 모습을 보아서 좋았다. 나는 계속 비꼬면서 이야기를 하였고 이새끼는 자꾸 싸우자고 한다. 대화 내용을 남자새끼가 녹음을 해놨었는데 파일을 갖고 싶다. 기억나는 대화 내용이 있긴하다.

“cctv 없는데로 가서 남자답게 하자구요”
“내가 왜 그래야되는거지? 니 존나게 쳐맞고 엄마한테 가서 일르려고 하는거잖아~”
“하 씨x 그럼 여기서 하든가!!!”
“맘대로 해 ㅎㅎ”

“내가 지금 못 때리는 게 합의금이 없어서 그러니까 저 좀 먼저 때려주세요”
“난 합의금도 없고 힘도 없고 약해서 못 때리겠는데 어쩌지??”
“아씨x 진짜 안되겠네!!!!”

한 번 비꼬아줄때마다 발끈하는 모습이 재밌었다. 옆에서 여자는 자꾸 그러지 말라고 조용히 얘기하라고 남자새끼한테 그런다. 나한테는 때려주고 싶다고 한다. 때리려면 때리라고 하였지만 바로는 안 때렸다. 내가 계속 자신의 말을 비꼬고 무시하고 그러니 도저히 못 참겠던지 갑자기 가슴을 세게 쳤다. 나중에 남자새끼 말로는 멱살을 잡으려 한거라는데 맞는 거 같긴하다. 멱살을 세게 잡으려 하면 그 부위에 타격이 가해지고 그 뒤에 멱살을 잡을테니 말이다. 멱살이 잡히자마자 나는 생명의 위협을 너무나 느껴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살려주세요!!!! 사람살려!!!!!!”

남자새끼한테는 조용히 하라고 구두경고만 하였는데 웬걸. 느닷없이 들어오는 그녀의 킥. 입막음을 시키기 위해 날 폭행하였다. 이 과정은 불과 몇 초만에 일어난 일이다. 멱살이 잡히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소리를 질렀지만 생각지도 못한 발차기에 난 소리 지르던걸 멈추고 가슴쪽과 다리를 잡고 뒤로 물러섰다. 공동으로 날 폭행한 것이다. 거리를 두자마자 경찰에 신고를 하였다.

# 112에 신고
전화를 걸자마자 받았다. 전화하는 나를 지켜본다. 남자는 비웃듯이 쳐다보고 여자는 하지말라고 한다. 난 건물 이름을 불러주었고 빨리 와달라고 하였다. 04시 14분 접수완료, 출동에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긴급상황시 112로 즉시 연락주세요. 라는 문자를 받았고 마음이 놓였다. 남녀와 거리를 두고 있던 중에 남자가 경찰이 왜 안오냐고 오긴 하냐고 묻는다.

“오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하네요 문자 왔어요”
“네? ㅋㅋㅋㅋ봐봐 내가 신고할까 그냥?”

내 폰을 만지면서 보려고 하길래 폰에서 손은 떼고 보라고 하였다. 남녀 둘이 다가와 문자를 본다. 보고 나더니 남자가 여자에게 옆에 가서 음료수나 한 잔 하자 이런다. 어이가 없었다. 음료수를 사려고 향하는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경찰차가 들어왔다. 경찰에게 상황 설명을 하였고 폭행죄는 반불벌의사죄에 해당하여 내가 처벌을 원하면 지금 현행범으로 체포를 해주겠다고 하였다. 옆에 있던 다른 경찰은 나보고 소리 지른 거 맞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여자가 내가 소리지른 거 맞다고 확인시켜주었다. 나도 내가 소리 지른 거 맞다고 하였다. 물어본 경찰은 아까 신고 들어온 게 맞다고 하였다. 누가 내 목소리를 듣고 신고를 해주었나보다. 고마웠다. 다시 경찰관이 처벌 의사가 있는거 확실하냐고 물어보길래 있다고 하였다. 여자는 그냥 보내주려고 했지만 자기도 때렸다고 계속 우기길래 같이 처벌 시키자고 하였다.
경찰차에 타라고 한다.

“여자분은 앞 쪽에 타세요”
“네? 제가 피해잔데 제가 앞에 타야죠 무서운데”
“아..그러세요”

피해자는 난데 대체 왜 여자를 앞에 태우려는건지 빡대가린 줄 알았다.

# 지구대
경찰차를 타고 지구대에 도착하였다. 진술서를 쓰라고 한다. 가해자들은 써도 되고 안써도 된다고 하였다. 여자는 안쓴다 하고 남자는 쓰겠다고 하였다. 진술서를 작성하고 앉아서 기다렸다. 목이 말라서 물 좀 마실 수 있겠냐고 물어보고 정수기로 갔다. 정수기로 가는 길은 가해자 남녀가 앉아 있었다. 누가 피해자고 가해자인지도 모를 정도로 매우 태연하고 죄책감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표정이었다. 핸드폰이나 쳐 만지고 있고 피곤하고 귀찮다는 느낌밖에 받을 수 없었다. 난 궁금했다. 이런식으로 진행이 되면 어떻게 되는지 매우 궁금했다. 물을 마시고 다시 가해자 남녀 앞을 지나가면서 한 마디 건냈다

“우리 이것도 인연인데 셀카나 한 장 찍을까?”

나보고 미친새끼라며 꺼지라고 한다. 안에 있던 경찰관이 가해자들을 안보이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주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과 함께.
이 때까지는 나도 후유증이 없었다. 진행되어 가는 상황에만 집중할 뿐 나를 돌아볼 틈이 없었다. 전 날에 3시간 밖에 못자서 몸은 피로했고 시간이 5시를 지나고 있었다. 그동안 미안하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이 침묵만이 가득했고 가해자 남자는 담배를 피러 두 번 나갔다 왔다. 두 번 째 담배를 피러 나가있는 중에 지구대에서의 일이 완료가 되었는지 경찰차에 타라고 한다. 아까 가해자인 여자를 앞에 태우려던 경찰이 나를 앞에 태웠다. 드디어 제정신을 차렸나 보다. 어디 가는거냐고 물어보니 경찰서로 가는 거라고 한다. 이제 지구대에서의 일은 끝이 났나 보다.

#경찰서
경찰서에 도착 했고 우리는 이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게 되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해서 앉으라고 자리를 지정해주는데 처음에는 내가 가해자인줄 알고 화장실 앞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그러다가 내가 피해자인 걸 듣고 나서는 미안하다며 피해자의 자리로 갔다. 어떻게 봐야지 날 가해자인 줄 알까. 입구쪽에 앉아 있는 형사는 당직? 같은 개념인 거 같았다. 이 형사가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해 하였다. 남자새끼가 대답을 했다. 가슴을 친 게 아니라 멱살을 잡은거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니까 형사가 답답했는지 그게 아니라 왜 때렸냐고 왜. 내가 옆에서 분노를 참지 못하고 때린 거 같아요 라고 하니 가만히 있으라 한다. 형사가 그럼 둘이 사귀는거냐고 물어보니 가해자 남녀 둘 다 동시에 아니라면서 고개를 흔들고 손을 흔든다. 아닌가보다. 쭉 설명을 듣고 이해 안되는 부분을 이해하셨는지 알겠다고 하셨다. 몇 분이 흘렀을까 갑자기 가해자 여자가 나보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러 왔다. 일이 정말로 심각해져 간다고 느낀건지 출근을 해야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사과를 하러 왔다. 나는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하려면 진작했어야지 경찰 불렀다고 비웃고 벌레보듯 보던 모습들이 생각나 이야기도 하기 싫었다. 고개를 숙이길래 나도 일어나서 같이 고개를 숙였다. 당직 형사가 이런 모습을 보더니 여자를 다시 자리로 가서 앉게 하였다. 나에게는 밖에서 담배 피면서 얘기 좀 하자고 해서 나갔다.

“요즘 데이트 폭력이 문제가 많아. 게다가 밤에 벌어진 일이고 이러다가 저 쪽에서 맞대응 할 수도 있을 거 같으니 이쯤에서 정리하고 끝내는 것도 좋을 거 같아.”
“네? 스토킹도 처벌이 되나요? 게다가 스토킹도 아닌데 그렇다고 해봤자 1회성이고 남자랑 같이 있었는데도 적용이 되는건가요?”
“스토킹도 경범죄로 가능해. 뭐 어떻게 하라는 게 아니라 경우의 수를 얘기해주는거야”
“네..”
“잘 생각해보고 ㅎㅎ”
“네 감사합니다”

얘기를 나누던 중 담당 형사도 담배를 피러 왔다. 얘기 나눈 형사와 비슷한 얘기를 좀 더 나누었고 쿨하게 잊고 좋은 여자 만나라고 하신다. 이쯤에서 남자답게 끝내고 딱 잊으라는 말도 했다. 나는 남자만 처벌 받을 수 있냐고 물어보니 생각보다 소심하네라고 하였다. 할 말이 끝나고 같이 들어가 난 다시 아까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아있었다.
조사 준비가 끝났는지 형사가 오라고 했다. 앉자마자 둘 다 처벌하는 걸로 하는거냐고 묻더니 난 그렇다고 했다. 신분증을 가져오라 했고 조사가 시작되었다. 묻는 질문에 대답하는 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형사의 타이핑만 계속 되던 중 이번에는 가해자 남자가 왔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늦었어요”
“죄송합니다”

남자는 연기자를 준비하고 있다는데 들려오는 감정이 옆에서 여자가 억지로 시켜서 하는 듯한 말투였다. 형사가 이런 모습을 보자 남자를 돌려보냈다. 조사는 계속되었다. 질의응답. 편했다. 어디서 울음소리가 들린다.
‘어디서 자꾸 울음소리가 들리는거야?’
여자가 울고 있다. 자기가 한 행동에 우는건지 무서워서 우는건지 알 수는 없었다. 듣고 있던 형사가 안쓰러운지 그만 울라고 한다.

“울지마~ 그냥 한 행동에 책임 지고 잊고 살아. 울만한 일 아니야. 동생 같아서 오빠로서 얘기하는거야”

형사가 한 마디 해주니 그친다. 그 뒤로는 나에게 문자가 왔다.
“제발 그러지마...여기 진짜 경찰서야..우리 출근도 해야돼...”
“알아”
“제발...쉽게 그러지마....”
“진작 그랬어야지. 내가 경찰에 전화 할 때는 그렇게 비웃듯이 쳐다보더니 이제와서 왜그래. 그리고 닌 왜 나서서 이러고 있냐”
“아니 나 때문에 직장 동료 분이.....나 당황했어”
“분? ㅋㅋㅋㅋㅋ분 잘챙기세요”
“너가 온거잖아..제발...그러지마”
“얘기 좀 하자고 했잖아 그전부터”
“.....우리 일가야 해...제발 살려줘 미안해”
“사건 다 터지고 이제 와서 왜 그래”
“그냥 날 죽여...나만 죽여라”
“날 왜때렸지?”
“하......”
“그만얘기하자 답안나온다”
“한번만 생각해줘”

문자를 주고 받던 중에 형사는 몇 가지 질문을 더 했다.

“공동으로 폭행을 당했다고 생각해?”
“네”
“공동으로?”
“네 동시에 연타로 들어왔으니깐요”
“알겠어”
질문이 끝나고 프린트를 준다. 형사랑 주고 받은 대화가 적혀있는 프린트물이었다. 읽어보고 맞는지 확인해보라고 하였다. 앞에 몇 장은 잘 읽혔다. 그러다 다른 점을 발견해서 고쳐달라고 했다.

“저..여기 말싸움 하기로 했다라고 적혀있는데 하기로가 아니라 말싸움을 했습니다.”
“어디”
“몇 페이지 맨 아랫줄이요”
“음..아 하기도 하기도”
“아 하기도군요”
하기도로 고쳐주었고 더 읽었다. 지금 떠올리면 뒷부분 내용이 기억이 안난다. 거짓으로 작성이 되었을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찝찝하다. 다 읽고 엄지 손가락으로 지장을 찍은 뒤 집에 갔다. 가해자들은 남겨진채로..
마지막으로 가해자 여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둘이 더 돈독해지시길, 지금도 충분해보이지만”

답장은 없었고 그렇게 긴 하루가 끝이 났다.

# 집
정말 너무나도 긴 하루를 겪고 나서 집에 왔다. 지금 느껴지는 감정은 무엇일까? 그동안 왜 그렇게 날 대했는지를 알게 되어 후련한걸까? 슬픈걸까? 멱살이 잡힌 와중에 내 편이 되어주지 않던 모습을 보고 배신감을 느낀걸까? 남자는 대체 누굴까? 직장동료로 끝인건가? 모르겠다. 분노인가? 애정인가? 애정이 있으니 분노가 생기는건가? 처음 느껴보는 복잡한 감정을 하나하나 더듬어 보았다. 출발 후 느꼈던 감정부터 일이 정리 되고 돌아오면서 느낀 모든 순간순간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명치 위쪽에 막혀 있는 느낌은 지워지지가 않는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막혀 있는 곳이 아려온다.
씻으면서 발견한 쇄골 쪽에 작은 멍. 멱살을 잡히던 중에 생긴건가? 모르겠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순간이다. 길고 긴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씻고 잠을 청해보려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멱살을 잡힌 곳에서 날 부른다. 남자의 거친 손 맛이 남아있다. 나의 돌발행동이 없었다면 얼굴에 묵직한 것이 날아왔을까 모르겠다. 이제와서 생각해보지만 차라리 이랬으면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았을 거 같다. 이렇게 됐다면 여자는 날 발로 때리지 않았을 거라 믿고 싶다. 이미 끝난 일이지만 후회는 남는다. 내가 가지 않았으면... 갔다 해도 집으로 돌아왔으면...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따라가지 않았다면... 소리 지르지 않았다면... 신고하지 않았다면... 처벌을 원하지 않았다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지금쯤 가해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여러 가지 가정을 생각해보던 중 두 통의 문자가 왔다.

‘[서울ㅇㅇ경찰서] 귀하의 사건을 ㅇㅇ지구대 ㅇㅇㅇ수사관이 접수하였습니다.’
‘[서울ㅇㅇ경찰서] 귀하의 사건이 형사ㅇ팀 ㅇㅇㅇ수사관에게 배당되었습니다.’

조사가 끝난건가? 조금전까지만 해도 마지막으로 보낸 문자를 읽지 않았던 여자가 읽었다는 표시가 나왔다. 답장은 여전히 없었다. 가해자들은 어떻게 얘기를 했을까? 밖에서 날 타이르던 담당 형사가 날 조사할 때 보내던 안 좋은 시선도 잊혀지지 않는다. 고작 이런 일로 사건을 이렇게까지 만드는 거냐는 느낌을 매우 받았었기에 가해자들을 어떤 식으로 대해줬을까.
멱살 잡힌 곳에서 누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한 채 어느샌가 잠이 들었다. 문자가 09시 11분에 왔으니 30분쯤에는 잠든 거 같다. 13시 30분쯤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더 자고 싶었지만 눈꺼풀에 힘을 줘야만 눈이 감겼다. 몸이 자기를 거부한다. 그래서 새 하루를 시작하려고 다시 씻었다. 씻으면서도 느껴지는 가슴의 통증과 아까까지만 해도 못 느꼈던 왼쪽 허벅지 쪽의 통증. 나에게 아프지는 않지만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문신을 새긴 두 남녀가 떠오른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젠 감정적으로 하기 보다는 이성이 우선이어야 하는 상황이라 생각했다. 폭행 피해자의 사례들을 검색 해 보고 필요한 게 무엇인지 찾았다. 경찰서에서 조사하면서 형사가 공동폭행인지 아닌지를 왜 물어봤는지도 알게 되었다.
폭행죄와 상해죄. 공동폭행으로 폭처법 적용, 상해진단서, 기소유예, 무혐의, 합의, 검찰청 등등 여러 가지 낯선 용어들이 검색이 되었다. 한 가지 일로도 각기 다른 시선으로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나, 그녀 그리고 낯선남자. 서로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을 할테고 조금이라도 유리하지 않다면 억울함에 분노를 하겠구나 느꼈다. 아직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여 정신이 없는 나는 어려운 법률 용어들을 뒤로 한 채 가장 먼저 병원으로 갔다.
병원으로 가서 ‘상해진단서’를 발급 받았다. 멱살 잡힌 부위에 지속적인 통증과 잡히면서 생긴 목의 작은 멍, 걷어 차인 왼쪽 허벅지 쪽의 통증 등으로 전문가의 해석에 따라 전치 2주를 판정 받았다. 이젠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알 수 없는 감정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피해자를 위한 심리 치료와 상담을 해준다는 각 지방 경찰청 청문감사담당관실 피해자 심리 전문 요원과 지역별 스마일센터를 찾아 보았다. 그나마 가까운 게 인천에 위치한 스마일센터였다. 메일로 문의를 하였고 지금의 나로서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허기가 졌다. 어제 저녁을 먹고 아무것도 먹지를 않았구나. 집에서 밥을 먹는데 넘어가지를 않는다. 물만 들이킬뿐. 물이라도 들어가서 다행인 거 같다. 병원에서 진단서와 함께 처방해 준 약을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잊을 수 없는 기억에 머무르며 벗어나지 못한 채 시간이 자꾸 흘렀다. 어느덧 알바를 갈 시간. 평소처럼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알바를 하러 떠났고 잠이 들기 직전까지 기분 나쁜 감정에서 벗어 날 수가 없었다.

# 다시 경찰서로
다음날 눈을 떴다. 꿈도 꾸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전 날에 자기 직전까지 더러운 생각을 하면서 잤기에 걱정이 되었는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제 발급 받은 진단서를 서에 제출하기 위해 준비했다. 밥을 먹을까 했지만 입안은 텁텁하기만 하고 가슴에 막혀있는 것 때문에 아무것도 들어갈 거 같지 않았다. 경찰서까지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입구에서 무슨 일로 왔냐길래 진단서를 제출하러 왔다고 하였다. 들어가란다. 들어가니 또 다시 묻는다. 형사과로 가면 된다고 한다. 어제 이미 와봐서 어딘지는 알지만 모른 척 했다. 담당 형사에게 가서 진단서를 보여주었다.

“진단서 제출하려구요”
“누구시죠? 아 ㅇㅇㅇ씨. 네 잘 보낼게요”
“이거 혹시 원본대조필 사본 작성 되나요?”
“네? 복사? 복사해드릴게”

여전히 까칠하다. 까칠하다 못해 띠껍다. 명색이 피해자인데 가해자를 대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복사본을 주길래 미리 알아본 원본대조필 도장 사실과 상위 없음을 찍어주지 않냐고 물어보니 도장은 무슨 도장이냐며 그런 거 없다고 하였다. 알겠다고 했다. 진단서에 적혀있는 ‘멍’ 사진을 찍자고 했다. 다리를 보면서 멍이 어딨냐고 한다. 제대로 읽기나 한 건가? 멍이라는 단어에 정신 팔려서 빨리빨리 찍고 꺼지라는 기분이 들었다. 멀리서 한 번 가까이서 한 번. 목 주변과 허벅지 쪽을 찍었다. 급하게 진행되었고 이제 가라고 한다. 혹시 경찰서 바꿀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또 다시 올 일이 있을까 궁금했고 너무 멀었기에 바꾸고 싶었다. 다시는 올 일 없고 이미 접수 돼서 못 바꾼다고 했다. 알겠다고 했고 어제와는 다른 더러움을 느끼고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