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일본 문학에 빠져 살던 시절이 있었다
에쿠니 가오리, 가네시로 가즈키 같은 작가들도 좋았지만 나에게 가장 위안이 된 건 무라카미 류 였다
다들 하루키를 좋아하던 와중에도 굳-이 류의 책을 고른걸 보면 내 취향도 어지간히 보통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무튼 이 영화는 그의 단편집 <토파즈>를 본인이 직접 영상으로 만든 영화다.
SM이라는 소재도 역시나 무라카미 류가 자주 쓰는 소재이니 만큼 그리 놀라운 건 없었고, 사실 영화 자체는 크게 재미있다 라고 느낄만한 구석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SM 콜걸로 일하는 아이는 지하철에서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노인의 말에 토파즈 반지를 산다.그리고 그런 그녀를 중심으로 그녀가 만나는 남자들과의 이야기가 주 내용인데
자극적인 소재 때문에 뭔가 그렇고 그런 걸 기대하고 보려 한다면, 말리고 싶다 （아니, 내 개인 취향이 이쪽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걸지도）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은 야하다 혹은 재미있다가 아니라 '슬프다' 라는 느낌이었다
주인공인 아이는 영화 진행 내내 무표정하다
그녀도 사람이고, 감정이 있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기대하기도 하지만 매일 대하는 사람이 사람이다 보니 이런 감정들이 무뎌질만 하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단순한 상술일지 모르는 노인의 말에 기대 반지를 항상 지니고 다니는 그녀의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없다
SM이라는 뒤틀린 관계 속에서만 오로지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불안한 남자들과
그 뒤틀린 관계 속에서만 소통이 가능한 애처로운 여자의 이야기는 현대인이 지닌 가장 어두운 욕망과 단절된 소통을 도시의 네온 사인에 녹여내 풀어내고 있었다
그들이, 혹은 그녀가 천하다고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어차피 우리 모두 똑같이 소통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건 마찬가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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