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버닝' 으로 돌아오신 이창동 감독의 최신작（8년전...）

'시'를 간단하게 리뷰해볼까 합니다.

이 영화는 2007년 '밀양'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입니다.

이동진 평론가가 말했듯, 2부작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

'밀양'에서는 피해자의 이야기를

'시'에서는 가해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이 영화는 시를 짓는 이야기이면서도

또한 깊은 윤리적 성찰에 다가선 영화이기도 합니다.

주인공은 밀양에서 일어났던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의 보호자이며

또한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러 치매에 걸린 노인입니다.

자신의 손자가 벌인 사건에 대하여 조금은 겉도는 듯하며, 피하는 듯하고

어수룩하지만 조심스럽게 사건을 해결해 나가며

또한 그녀가 시를 짓는 과정도 진행돼 나갑니다.

스포일러가 되기에 자세히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극의 후반부에 주인공이 택한 선택은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녀가 가진 고민들이, 어찌보면 잊고 싶어지는 - 그래서 치매와 연관되는- 그러한 태산의 무게를 지니고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와도 비교해볼만한 지점이 있었습니다.
마더의 결말과 '시'의 주인공이 맞닿아 있다고 느껴지더군요.

이 영화는 대상을 다루는 데 있어서 리얼리즘적으로 접근하는데, 그것이 비윤리적인 시각이었다면 굉장한 불쾌감이 느껴졌을 법한 영화입니다.

그러나 이창동 감독은 깊은 성찰을 통해 대상을 바라보며 인물이 어떤 선택을 하게되는가를 조심스럽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편의 시가 완성되듯, 또한 그렇게 영화가 완성되는 과정은
이른바 이창동 감독만의 '문학적'인 영화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영화가 상당히 잘짜여진 서사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서정적인 장르로도 느껴집니다.

"사과는 깎아 먹는 맛"이라는 대사가 마치 세계를 자아화 하는, 그런 감상을 주기도 합니다.

이런 면에서 이 영화는 이창동 감독에 대한 문학적이다는 비판을 정면돌파하고자 선택한 아주 당돌한 시도이지 않나 싶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가 으레 그렇듯, 영화는 엔딩크레딧을 보고나서 시작하는 느낌입니다.

그 여운과 여러가지 생각에 영화가 끝난 다음에야 본격적으로 음미하게 되면서도 충격을 받은 느낌.

아마 이 영화를 보고나면 그러한 느낌이 들겁니다.


이 영화는 전개가 빠르지 않고, 단 한 번도 배경음악이 깔리지 않습니다.

지루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는 영화입니다. 느린전개에 거부감이 없으신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또한 주인공 윤정희씨는 상당히 오래 외국생활을 하신 분이어서 그런지, 대사가 약간 어색한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 영화는 20~30대의 인물은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 나이들거나 아예 10대거나 하는 인물들이 등장하며

청년층 세대가 아예 단절된 영화입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해서 영화를 선택해보시기 바랍니다.

한국 영화제작심사에서 0점 맞은 각본이
칸의 각본상을 수상하게 된 작품,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