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부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전 유학을 와있습니다. 이런 아픔을 겪을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하고..


100퍼센트 한국에서 망나니가 되가는 아들꼴을 차마 보지 못하시던 어머니의 권유였죠.


유학을 온지 벌써 3년이 다되갑니다.


이 외국땅을 밟은게 엊그제같은데 벌써 그런 세월이 흘러버렸네요.


전 축구를 정말로 좋아합니다.


6살때부터 축구광인 아버지와 함께 공을 차고 축구장에 다니곤 했습니다.


축구광이셨던 아버지께선 2000년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버지와 기억에 남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월드컵에서 1:3 멕시코에게


역전패를 당한후 티비 앞에서 자리를 못뜨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10살 어린아들의 어깨를


잡으시곤 일어나라 2002년은 우리를 위한 대회가 될것이다라고 말하셨던 아버지는 끝끝내 대한민국의 4강기적


을 보시지 못하셨습니다.


중학교시절, 저는 그야말로 망나니였습니다. 중1때는 실장이 되어서 똥통 3반이라는 별명을 갖게 한


장본인이었죠. 아버지없이 자란놈이라는 소리를 밥먹듯 듣고 다녔습니다.


연합체육대회에 학교 축구대표로 나가서 맹활약 했던적 빼고는 선생님들에게 좋은소리를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중3, 처음에 말한대로 전 어머니의 권유, 아니 반강제로 유학을 오게되었습니다.


영어는 한마디도 못해도 두발로 공을 다루는 기술때문에 주변 남자애들에게 무시는 당하지 않고 살던 저도


1년이 넘어가자 의사소통이 모두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유학을 와서 공부는 1분도 안하지만 방과후 어두워질때까지 푸른 잔디구장에 반해 맨날 혼자 공을 차던 저에


게.. 항상 축구에만 빠져있던 절 동경해오던 반반한 녀석에게 주말에 있는 파티에 함께 가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녀석 아빠차를 몰래타고 나오던 토요일밤, 그녀석의 친구집에서 열렸던 파티에서 전 처음 그녀를 만났습니다.


그녀석의 친구집에 들어가자마자 머리를 아프게 하는 음악소리와 담배냄새와 함께 내눈에 들어온 짧은 청치마


의 그녀.. 어느순간 나도모르게 전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무엇인지 모르는 이 낯설음과 쑥쓰러움으로 멋쩍게 좋은밤 보내라는 말만 한채 전 아무 재미도 찾지


못하고 그 파티에서 나와버렸습니다.


다음날 날라온 한통의 문자. 그녀였습니다. 이름도 모르던 그녀의 문자를 받고 웬지모르게 가슴이 뛰던


그날..


우린 매일 문자를 주고받으며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무뚝뚝하고 말이 별로 없던 내게 그녀는 항상 따뜻했습니다.


그리고 첫 그녀와의 첫 데이트날, 친구들에게 잘해보라는 응원을 받고 나간 저와는 달리 그녀는


그녀의 친구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었습니다. 동양인과 데이트를 한다는 이유로..


전 그녀의 친구들의 입을 다물게 하기위해 괜히 오버를 하며 그녀에게 이것저것 사주었고 결국 그녀의


친구들도 돈많은 남자앞에서 아무말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매주 일요일, 제 축구경기를 하러 그녀는 항상 보러왔었고 그녀를 친구로 만난지 4개월째,


아무도 없는 경기장에서 연습을 하고 있던 제게 그녀는 다가와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녀와 사귀기 시작한 후, 전 그녀의 집에 자주 놀러갔다왔고 그녀의 사생활, 가족사에 관해 많은걸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떠나버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아버지, 그리고 정부에서 보내는 생활보조금의 거의


대부분을 술과 남자와 어울려다니는데 쓰는 30을 갓넘긴 젊은 어머니.


그녀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녀와 그녀의 여동생의 점심,저녁값 그리고 태어난지 1년도 안된 남동생의 기저귀,


우유값을 벌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집에 놀러갈때마다 항상 웃으며 남동생, 여동생과 놀아주고 있는 그녀를 볼때마다 어찌나 가슴이


아프고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던지..


그녀는 모처럼 갔던 동네근처 바닷가에서 제게 물었습니다.


"넌 모가 되고싶어?"


"글쎄, 모르겠다."


"좋아하는것같은거 없어?"


"글쎄.. 축구가 좋긴한데.. 몰라."


그녀가 실망하는 눈치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다짐을 했습니다.


내 목표는 프로축구선수.


그 후로 방과후 늘 가던 그녀집에 가는걸 자제하고 전 그녀를 만나기 전과 같이 텅 빈 넓은 축구장으로


뛰어갔습니다. 축구의 모든 기본기를 연습하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주위는 캄캄해졌고


녹초가 되어서 하숙집에 들어가곤 했습니다. 그녀를 만나는 시간은 일요일 축구경기가 끝나고..


그런 생활이 두어달이 흘렀고 혼자 연습도중 물을 마시로 핸드폰 옆에 두었던 물병을 가지러 갈때


문자가 한통 와있었습니다.


"너 요즘 소식이 뜸하다?"


"아 나 연습하느라"


"너무 무리하는거 아니야?"


"난, 프로선수가 될거야. 남들에게 묻히지 않고 스카이 스포츠채널에서나 볼수 있는 그런 선수.
자 상상해봐, 그렇게 되서 골을 넣게 되면 골세레모니는 너를위한걸로 할거야, 넌 집에서 동생들과
내 경기를 보다가 나의 세레모니를 볼거고, 넌 나의 여자친구기때문에 인터뷰가 들이닥칠걸?
어때 굉장하지? 유럽에선 축구선수라는 직업이 엄청나, 돈도 잘벌고."


"너가 프로가 되기전에 빨리 우리집에 스카이채널을 달수있는 돈을 모아야겠다 하하"


난 내 가슴을 찌르는 그 문자에 더이상 답장을 못하고 다시 필드로 뛰어나가 리프팅을 하며 다짐했습니다.


"방금 말한게 거품이 되지 않토록 하고 말겠어.."


그렇게 2006년이 흘렀습니다.


축구와 그녀에게 빠져사느라 거들떠조차 보지않았던 학교성적은 당연히 밑바닥이었고,


한국에서 전화로 왜 이런 성적인지 이유를 대보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전 "축구 할거에요."


라는 대답밖에 할수가 없었습니다.


며칠후, 성격이 불같으시던 어머니는 말도없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여느때와 같이 연습을 하고 있던 나에게 아무말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신 어머니, 어머니는


두켤레의 축구화, 세개의 축구공, 한쌍의 무릎보호대 그리고 모아놨던 모든 대표팀,프로팀의 유니폼을


모두 가지고 다음날 돌아가셨습니다. 모든 현금과 카드도 빼앗으신채..


모든 꿈이 사라진 그때...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그저 방안에서 바보처럼 천장만 보고 뒹굴거리며


한달간 연말방학을 보내고 있을때, 그녀가 찾아왔습니다. 손에는 상자 하나와 둥글게 생긴, 낯선 축구공을


들고선.. 상자안에는 내가 신던 새 머큐리얼베이퍼3 한켤레가 들어있었고 그녀는 웃으며 그것들을


전해주곤 돌아갔습니다. 한달간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돈으로 산거니 다시 시작하라는 말을 남기곤..


그리고 다시 시작된 나의 축구인생, 운이 따랐던걸까..


비록 세미프로팀이긴 하지만 축구시장이 크지 않은 이나라에서 가장 상위 리그의 팀,


두세명의 십대를 영입하려고 눈을 돌리던중 운이 좋게 저와 이나라 17세이하 대표팀이었던


제 친구에게서 세미프로팀 x타고fc라는 팀에서 입단테스트 제의가 들어왔고 프로가 되기전에는


세미프로를 거쳐야한다는 생각에 무조건 승낙을 하였습니다.


입단확정이 된 후 깜짝선물같이 다시 축구를 하게 해준 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에


그녀에겐 한국에 잠시 놀러간다는 소식을 전한채 전 그 팀의 연고지로 하고있는 남쪽 더니x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리고 성공적인 입단테스트, 매주 열리는 경기에 가는 비행기표,숙박비는 모두 스폰을 해주고 주당 120달러에


계약을 마친채 그녀가 있는곳으로 돌아가는날 아침, 공항티비에선 뉴스가 나오고 있었고 제가 돌아갈 도시에선


교통사고로 인해 16살 소녀가 목숨을 일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비행기에 다시 몸을 실고 내리자마자 그녀에게 보낸 문자에선 한참이 지나도 답장이 오질 않았고,


다음날.. 전 그녀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녀에게 알려줄 깜짝뉴스를 간직한채...


그녀의 집에는 처음 보는 반쯤 취한 그녀의 어머니와 울고있는 그녀의 남동생, 그리고 그 남동생을


어떻게든 달래보려하는 그녀가 아닌 그녀의 여동생.. 그녀는 어디에서도 볼수가 없었습니다.


입단테스트를 받으러 떠나기 전날, 그날이 그녀를 볼 마지막날이었단걸 알았다면... 더욱 멋진 말을


해줬을텐데..


그녀가 이세상에 없는 지금.. 저에겐 꿈이란건 사라졌습니다..


스카이스포츠 채널에 나올 돈 많이 버는 유럽 프로선수가 되는것도.. 프로가 되어 골을 넣어 그녀를 위한 세레모


니를 하는것도..


가끔씩 가는 그녀의 묘지앞에는 아직도 그녀가 제게 선물해진 축구화가 놓여있습니다..


가끔씩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제 또래애들도... 저의 이 사연을 아는지.. 아무도 훔쳐가지 않네요..


일반인들만큼만 살았다면...


어쩌면 자신 옆에 놓여있는 축구화로 골을 넣고 자신을 위한 세레모니를 하고 있을 절 볼 수도 있었을텐데..


정말.. 천국이라는게 있다면.. 그녀는 거기서 절 그리워하고 있을까요? 제가 그녀를 그리워하는만큼?


그녀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절 보고 있을까요..?


혹시나 하는 맘에 적습니다.. i luv u to da death sere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