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은 1907년 연해주（沿海州）로 망명하여 의병운동에 참가하였다.'



라고 책의 문구에 쓰여져있다. 뭐 일단 안중근이 일본과 투쟁 활동을 했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으니.

그리고 그렇다는 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안중근은 의병이나 다름 없다는 말이다.

맞지?

안중근은 1909년 10월에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쏴 죽인다.

훌륭한 사격 솜씨까지 겸비한대다 히로부미를 죽였기에 안중근이 유명한거지.




헌데... 지금은 손가락이 아직 멀쩡하다?

그렇다면 지금 내 앞에 있는 안중근 의사는... 지금껏 역사책에서 배워온 그가 아닌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기 전의 그라는 말인가?

이거 뭔가 좀 복잡한데...?





"저기... 지금이 몇 월인가요?"

"지금말인가? 9월 이라네."





안중근 의사는 통쾌히 대답을 해주었다.

9월.

책의 내용을 보면 10월이 그 날이라 나온다.

그렇다면... 한 달. 약 한 달 안에... 안중근은 손가락을 끊고... 하얼빈 역으로 간다.

그래. 분명히 간다. 그는 그런 인물이고,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인물이니깐.

그런데...





"안중근... 당신 정말 안중근 맞나요?"

"음? 그게 무슨 소리인가?"

"당신은 지금 의병활동을 하고 계신거 맞나요?"

"... 자네가 그것까지 어떻게 알고 있는거지?"





지금까지 묵묵히 있던 털보가 열변을 토한다.





"거봐요! 내가 뭐랬어요! 이 자식 역시 수상한 녀석이라니깐요? 어떻게 방금 전에 처음 본 사이인데 그런 것

까지 파악 하겠어요? 그냥 콱 죽여버려요! 일본의 첩자가 틀림없다구요! 아우~"





뭐가 그리 답답한지 가슴팍까지 퍽퍽 두드려 가며 침까지 튀기며 열변을 하는 털보를 살짝 무시해주며

안중근은 태연하게 말을 이어갔다.





"난 정말 자네가 누구인지 궁금하네. 일단 자네의 이름이 이 한이라는 건 알겠으나..."

"예. 제 이름은 이 한 입니다."

"허허... 그래그래. 자네 이름은 이 한이야. 헌데 어디서 온 누구지? 사실대로 이야기 해주게나."

"... ..."




저는 대한민국에서 온 사람입니다.

아니, 외계인 입니다.

이해가 안딘다구요?

쉽게 말해서 지금부터 약 1000년 후의 미래에서 온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믿을 것 같냐고...

하지만... 어떻게든 설득을 시켜야 하는데...





"전...! 안중근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어렸을 적부터 쭈욱 존경해 왔습니다! 이토히로부미를 총으로 쏜...!"

"이토히로부미? 지금 분명히 이토히로부미라고 했는가?"





아차차! 너무 성급했다!





"아, 그,그야 당연히 알죠!"

"히로부미는 누구인가?"

"... 에... 이토 히로부미는... 그러니깐..."





히로부미가 누구지? 뭐하는 인물이지?

으윽... 역사쪽으로는 쥐약이라서... 그냥 일제시대의 나쁜놈이었단 것만 아는데... 덜덜

조때따.

얼렁뚱땅 넘겨야 겠다...





"여,여튼! 절 믿어 주세요! 전 당신을 돕기위해 온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묻겠네. 이토히로부미는 누구인가?"

"... 그는... "


"게다가 나를 돕기위해 온 것이라고? 말이 앞뒤가 안맞지 않는가? 방금 전에는 길을 물어보러 온 것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 그,그게 처음에는 그랬지만 상황이 달라져 버렸습니다. 당신이 안중근 의사인것을 알고부터는."

"... 난 도무지 자네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네."

"... ..."


"미안하지만 이 집에서 나가주게. 자네를 믿을 수가 없어. 미안하네. 같은 조선인이라면 어떻게든 함께

싸워보고 싶지만 지금은 자네를..."


"... 전 조선 사람입니다. 명백히 조선인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증거가 없지 않은가? 난 혹시라도 자네가 일본에서 온 첩자가 아닐까 두렵네. 지금 이 순간도."

"두려워 마세요. 일본에서 온 첩자는 죽어도 아니니깐."

"... 미안하네. 나가주게. 지금 조용히 사라져준다면 아무 해 없이 그냥 보내주겠네."

"정말... 믿지 못하는군요. 그래요. 증거라면 있잖아요! 지금 우리가 이렇게 한글로 대화를 하고 있잖아요?"

"일본사람들도 한글을 공부하여 조선사람들만큼이나 한글을 잘 구사한다네."

"... 헐."





일본놈들 그 어려운 한글 공부가지 해가며 침략을 한단 말인가?

그나저나 이거 위기인데. 어떻게 안중근을 설득 시켜야 하지?

그냥 콱 사실대로 이야기 해버려?

아냐... 섣불리 그런 이야기를 할 수는 없어... 자칫하면 역사가 뒤틀려 버릴지도 몰라.

이게 지금 꿈이라면 내 맘대로, 내가 하고 싶은대로 어떻게든 해보고 싶지만... 지금은...

지금은... 잠깐... 내가 왜... 대체 왜 여기에 있는거지?

무엇을 하다 여기로 온거지? 현실에서 마지막으로 했던 일이 뭐였지?





"미안하네. 나가주게."

"... 선생님! 저는 정말...!"

"나가주게."

"... ..."





나는... 왜 안중근을 설득 시키려는 걸까?

대체 왜...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미안하네."





드르륵-





그리고 난 아무말 없이 안중근의 방문을 열고 나왔다.

아니, 솔직히 조금 삐졌다.

일본원숭이로 오해를 하지 않나. 난 명백히 조선인인데 말이다.

뭐 정확히는 대한민국의 시민이지만...



여튼 지금 중요한건 그런게 아니라 안중근이 어떻게 되든 내가 알 바 아니다.

한 달안에 안중근은 손가락을 끊음으로써 맹세를 한 후에 하얼빈역으로 가서 거사를 치를테니깐.

그래... 내가 관여하지 않아도... 일은 충분히 잘 해결되는거야.

내가 안중근을 설득 시킨다고 해봤자 나에게 득되는 것도 없을 뿐더러, 역사는 미래와 같이

예고된 것처럼 흘러갈 텐데...





끼익- 쿵-!





꿈만 같았던 안중근 의사와의 만남은 내가 들어왔었던 궁궐같이 거대한 문이 닫히는 소리에

깨어져 버리고 말았다.





"후아~ 그나저나 이거 참 난감하네. 이제부터 어쩐다냐? 난 아직도 이게 꿈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래! 난 지금 도서관에서 책보다가 잠이 든거야. 그래, 바로 그거였어. 그러니깐 제발 이 꿈에서 깨라!"





조선을 넓고 넓다.

게다가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른다.

이제부터 어딜가야하지?

허... 조선시대라 pc방도 없을 거 아냐?

... 아놔 이거 불편한게 한두가지가 아니네. 내가 대체 왜 조선시대에 있는거야!





저릿 저릿-





그 순간 방광 쪽에서 극심한 통증이 밀려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오줌 마려. 볼일 좀 봐야겠네.

그렇게 어디서 볼일을 볼까 주위를 살피다가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기와집 담벼락 이었다.





"크크. 담벼락에다 싸주마. 날 믿지 못한 벌이다."





그리고 그렇게 대문의 반대쪽으로 쪼르르 돌아가 기와집 반대편 담벼락에 섰다.





"얼래? 이건 뭐야?"





볼일을 다 보고 뒷정리（?）를 하는 순간 내 시야로 지붕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포착 되었다.

그리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난 사다리를 잡고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와집 지붕위에 발을 딛고 서자 저 멀리 산도 보이고 간간히 마을이 있는지 빛도 보였다.

아름다웠다. 처음에는 주변이 전부 어둠이라 익숙하지 않을을 뿐더러 공포가 급습 했지만 지금 이렇게

다시 둘러보니 꽤 아름다운 밤의 경치였다.

... 그리고 무엇보다 지붕위에 서 있으니 기와집 내부가 훤히 다 들여다 보인다는 거였다.

아까전에 본 방앗간, 정원들이 전부 다 보였다.

그리고 한가지 특이한 점은 전체적인 구조가 무슨 하나의 요새 같다는 점이었다.





"요새 구조가 당연한건가? 하긴 의병 활동 중이니 일본 새퀴들의 타깃이겠지."




에휴~ 그나저나 안중근 의사. 좀 사람말 좀 믿어주지.







"선생님! 정말 그냥 보내도 되겠습니까?"

"괜찮네. 수상한 이는 아니니."

"수상하지가 않다뇨! 입고 있는 옷 부터가 수상하지 않습니까!"

"목소리 낮추게나. 자고 있는 사람들 깨겠네."

"하이고~ 저런 녀석은 살려 보내면 안된단 말입니다!"





안중근의 방에서 털보와 안중근이 대화하는 이야기가 새어 나와 내 귀로까지 들렸다.

근데 이 털보 자식은 나를 못 죽여서 안달이야? 앙?






"난 알 수 있네. 그는 진실만을 말했네."

"진실만요? 헌데 그렇다면 왜 돌려보내 신 겁니까?"

"... 그건 나도 알 수 없네. 하지만 그에게서 뭔가 불길한 징조가 느껴지는 건 나도 어쩔 수가 없었네."

"그게 그거잖아요?"

"다르네. 그가 진실을 말하는 것과 내 예감이 같다고는 할 수 없네. 그렇기에 그를 돌려보낸 것이네."

"... 뭐... 정 선생님의 말씀이 그렇다면..."

"이만 자네 방으로 돌아가보게."

"네... 주무십시요. 선생님."





이크!

털보가 안중근의 방에서 나와서 푸하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털보에게 들키지 않기위해 안간힘을다해 지붕위에서 최대한 몸을 웅크렸다.





"하아~ 세상 참 어떻게 돌아가려는고~ 에잉~"





세상 한탄을 하며 털보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 ..."




아까부터 이상하다.

아까부터 조금씩 가까워 지고 있는 듯 하다.

마을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라 생각했던 그 빛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어두운 밤이라 내 착각일거라 생각 되지만 자꾸만 점점 불빛과의 거리가 좁혀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열어보았다.

바지 주머니에서 뺀 핸드폰... 그래. 그랬던 거야. 여기가 조선시대니... 기지국 같은게 있을리가 없지.

그러니 당연히 핸드폰이 터지지가 않지.

허... 그렇다는 말은 여기가 진짜 조선이라는 말밖에 더 돼? 아놔.

그리고 책. 겉표지가 온통 흰 색뿐인 책.


'한 권으로 읽는 한국의 역사'


뭐라 설명이 필요없는 참 좋은 책. 덜덜.

그리고 로션이랑... 빗, 공책 몇 개 랑 펜이랑 샤프 뿐.

허... 고등학생의 가방이 참으로 단순하구나.



이걸로 어떻게 조선시대에서 살아남아?

아니, 살아갈 생각을 할게 아니라, 어떻게 다시 대한민국으로 돌아가지?

이런데서 죽을 때까지 살고 싶진 않은데...





"뭐... 뭐야... 이건 대체..."




그렇게 혼자 푸념을 늘어 놓고 있었을 때 내 불안함은 결국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점점 가까워져 오고 있는 것이라는 착각을 일으켰던 불빛은 어느새 거대하게 커져서 코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게다가 사람들 목소리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마치 군대의 행진을 연상케 하는 전투화 소리.

사람들의 대화 소리도 들리는 듯 하지만 뭐라고 하는지 알아 들을 수는 없었다.




한가지 확실한 건... 지금 누군가... 아니, 어떤 한 무리가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내 몸이 불길함을 알려주고 있다는 것.




뭔가... 뭔가... 불길하다!





그리고 그렇게 마른 침을 꿀꺽 삼켜가며 15분 쯤 혼자 지붕위에 숨죽이고 있었을 즈음이었다.

마침내 불빛은 코 앞까지 다가와 거대하게 변해 버리고 말았다.





"이곳인가?"

"예. 그렇습니다."

"큭큭. 이곳에 안중근이 있다는 말이지? 쥐새끼 같은 녀석. 잘도 이런곳에 요새를 차렸구나."

"... ..."

"좋아. 수고 많았다. 그리고 안중근... 넌 오늘 내가 기필코 잡고야 말겠다. 크하하하!"






그리고 이제는 사람들이 모습도, 말소리도 뚜렷이 들리기 시작했다.

어둠속이라 저들의 모습이 자세히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실루엣 같은 모습에서 한가지는 알 수 있었다.

100... 아니 200명? 200명 가량의 사람들이 어깨에 무엇인가를 메고 있음을.

그리고 그것이 총임을 한눈에 파악 할 수 있었다.




저들은 안중근을 죽이러 온 일본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