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주말 오후.

어머니께서 절 부르시더군요.




어머니 : 이리 나와 봐...방안에서 너구리 그만 잡고, 나와서 이것 좀 해.




거실로 나와보니 어머니께서 뭔가를 툭 하고 던져 주시는겁니다.




혀니 : 이게 뭐에요?...어쩌라는거죠?


어머니 : 불어.


혀니 : 뭘 불라는 말씀이신지...전 조사해도 안나옵니다...결백하다구요


어머니 : 다 불어라 남김없이.




풍선이더군요.

제 조카 지연이 생일파티를 해준다더니 거기에 쓰실 모양같았습니다.

삼촌이 되서 그런것 하나 못해주겠냐만서도요.

하기 싫더군요.




혀니 : 싫습니다...이거 다 불면 턱 빠지고 현기증 와요...아들을 죽일셈이세요?


어머니 : 깜빡하고 공기주입기를 못샀어 그거 좀 분다고 안죽어.


혀니 : 싫어요 내딸도 아닌데, 그리고또 엄마딸도 아니잖아요...


어머니 : 너 지난달 카드값...술집...모텔.







조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풍선을 열심히 불었습니다.

번쩍거리는 츄리가 달린 조그마한 고깔모자도 머리에 눌러쓰고 말이죠.

그렇게 30여개의 풍선을 입으로 다 불고는 진짜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며

바로 탈진해서 쓰러졌습니다.




정신을 차린 전

슬그머니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올망졸망 모여있는 그만그만한 지연이 친구들

틈으로 끼어들었습니다....그리고




한손엔 피자를 들고 한손엔 닭다리를 들고 녀석들과 함께 유쾌하게

개구리중사케로로를 시청했습니다.




바쁜 지연이엄마 대신에 우리엄마가 고생하는것이 속상했습니다만,

매우 잘 얻어먹긴 했습니다.




지금이야 아이들 생일에 파티도 하고 조금은 비싼 패밀리레스또랑에서

가재도 잡고 게도 치는 일이 흔한 일이지만,




제가 어릴적만해도 저처럼 평범한 집의 아이들은

생일날 친구들을 불러서 파티를 한다는건 흔하게 할 수 있는일이 아니었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사정에 정신없이 사시는 부모님 입장에선 선뜻 매년

생일파티를 열어준다는건 어쩌면 사치처럼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랬기에 집안이 부유한 친구들의 생일파티에 초대받는다는건

굉장히 기분좋은 일이었습니다.

맛있는걸 먹는다는 것도 좋은거지만, 가진자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듯한

느낌에 뿌듯하기도 하구요.




어쩌다 간혹 그런 친구의 생일에 초대받아 가보면 남자친구들보다 여자친구들이 더 많이

초대되고 애써 엄마한테 졸라 선물로 사온 공책 두권과 연필 몇자루는 공개적으로 내밀기엔

민망하고 애꿎은 물건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생일파티는 점점 녀석과 그녀들만의 잔치로 변하고

저와 같이 초대되어 온 제 짝꿍은 존재감이 없어지면서 슬그머니 아무도 모르게

녀석의 넓은 정원을 쓸쓸히 가로질러 커다란 대문을 고개 숙이고 나오기도 했습니다.




역시 애나 어른이나 돈이 있어야 여자도 붙게 된다는 진리를 서서히 깨달아갔습니다.




그렇게 마음에 상처를 입고 집으로 돌아와서 얼마 남지 않은 제 생일에 파티를

해달라고 엄마께 졸랐습니다.

간절하게 애원했습니다...울기도 참 많이 울었습니다.




시끄럽다고 뒤지게 쳐맞았습니다.




생일을 며칠 앞두고,

올해도 역시 생일파티 한번 못해보고 지나가는것 같아 슬펏습니다.

그렇게 의기소침해져 있는데 어머니께서 뜻밖의 말씀을 하시더군요.




어머니 : 이번주 토요일날 친구들 데려와 엄마가 맛있는거 해줄께.


혀니 : 앙?...정말이야? 파티해주는거야?


어머니 : 무슨 파티씩이나 그냥 음식 조금해서 나누어 먹어


혀니 : 한 스무명 부르까?


어머니 : 너 친구없는거 다 알아...한 대여섯명만 불러...집도 좁아 터지겠구만.




의기가 다시 양양해진 전 짝꿍을 비롯해 다섯명을 엄선해서 초대하였습니다.

그리고 내심 좋아하던 같은반 민정이에게도 조심스러운 파티초대를 하였습니다.




혀니 : 민정아 이번주 토요일날 뭐해?


민정 : 그건 왜?


혀니 : 아니 그날이 내 생일인데 너도 왔으면 좋겠어서 바쁘면 안와도 되고.


민정 : 응 바빠...미안.


혀니 : （싯파）.......




여자에게 뭘해도 거절당하는 현상은 지금까지도 운명처럼 계속되고 있으니

참 사람 환장할 노릇입니다.




다섯명의 친구들이 저희 집으로 초대되고,

어머니께서는 떡이며, 과일 그리고 불고기등, 명절때나 보는 그런 음식들을 소박하지만

정성스레 준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거의 한달동안 풀만 먹었던 기억에 잠시 우울해봅니다.




즐겁게 음식을 나누어 먹고 선물도 받고 기분 정말 째지더군요.

그런데 평상시 조금 많이 친하다고 생각해왔던 기영이 녀석의 선물은 절

화나게 했습니다.




전 녀석의 지나간 생일에 당시로선 거금 1000원짜리 미니카를 선물했었는데

녀석은 꼴랑 200원짜리 프라스틱조립식장난감을 선물로 주더군요.

아버지가 의사이심을 늘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니던 기영이였습니다.

선물이란 주는 사람의 마음을 받는것인데 가격이 문제가 되는것은 아닙니다.

허나 이 띱떼는 1000원짜리 받고 200원짜리로 때우려는 심보가 얄밉더군요




우리집보다 부자면서...적어도 다이다이는 해줘야지...




주먹다짐일보직전까지 갔으나 좋은날 그러면 안된다는 이제 열두살 친구들의

만류로 그만 착한 제가 참았습니다.




그리고 훗날 녀석의 생일에 맨입으로 가서 그날의 복수를 하였습니다.







그때 당시에 겪었던 또다른 생일파티가 생각이 납니다.





학기초에 전학을 온 창식이라는 아이가 한명 있었습니다.

또래 아이들보다 체격은 왜소하고, 차림새도 그다지 깨끗하지가 못하였고,

늘 말이 없고, 쉬는시간이나 점심시간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책만보고,

그렇다고 공부를 잘하는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나이때의 개구진 아이들의 놀림이 되기엔 웬만한 요소는 다 갖춘셈이었습니다.

처음에 장난삼아 조금씩 놀리던 아이들은 이제 대놓고 창식이 녀석을 괴롭혔고,

그렇게 괴로워 하는 창식이를 보면서 더욱더 즐거워하는 반아이들,

심지어는 여학생들에게까지 놀림을 받게 되더군요.




직접 놀림엔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제가 나서서 말리지도 못했습니다.

창식이녀석의 편을 들어 주다간 저 역시 같이 놀림 받을까 두려웠던게죠.

어렸지만 나름대로의 비겁한 처세술은 알았던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와는 가끔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창식이가

어느날 잘 믿겨지지가 않는 말을 하는것이었습니다.




창식 : 혀니야...오늘 학교 끝나고... 우리 아빠가...친구들 데려오라는데


혀니 : 응?...왜?...너 놀린애들 혼내준다고?


창식 : 그게 아니고...오늘 내 생일인데 아빠가 친구들 데리고 오면 맛있는거 해준다고




잘 믿어지지가 않더군요.

도시락도 잘 못 싸오는 아인데...

물론 창식이네집 사정을 제가 잘 아는건 아니었기에 창식이의 말을 더 들어봤습니다.




혀니 : 그래?...생일이야?...파티하려고?


창식 : 응...근데 애들이 올까?


혀니 : 그게 무슨 소리야?


창식 : 애들이 나 싫어하잖아...아무도 안오면 아빠한테 미안할 것같고.


혀니 : 싫어서 그러는건 아닌거 같은데...잠깐만 내가 애들한테 말해볼께.




그리고 전 제가 친한친구 몇명을 불러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혀니 : 야 오늘 창식이 생일이래...


친구1 : 그새끼 생일도 있냐? 큭큭큭


친구2 : 그게 우리랑 뭔 상관?


친구3 : 생일 파티라도 해주자는거냐?


혀니 : 창식이 아빠가 생일파티 해준다고 친구들 데려오라 그런다는데?


친구1 : 헉...가면 맞아 죽는거 아니냐?...뻥 아냐?


친구2 : 생일파틴데 가자...맛있거나 왕창먹자.


친구3 : 선물도 준비해야 하나?




몇명의 친구들은 거부의사를 밝혔고 평상시 창식이 괴롭히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개념없는 몇명의 친구들이 가기로 하였습니다.

단지 맛있는거 먹을 생각에 말이죠.




학교가 끝나고 우린 창식이를 따라 집으로 갔습니다.

산동네로 올라가는 가파른 언덕을 헥헥대면서도 그저 맛있는거

먹을 생각에 싱글벙글거리고 서로 장난도 치고 말이죠.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창식의 미소를 그때 처음 보았습니다.




집으로 들어서자 창식이 아버지는 환하게 반겨주셨습니다.

우리는 일동 배꼽에 손을 올리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방안으로 들어서자 맛있는 음식이 푸짐하게 차려진 생일상이

우릴 반기지는 않았고, 신문지 몇장 넓게 펼쳐 그위에 새우깡이며, 맛동산,초코파이등

여러종류의 과자들 그리고 외로이 대가리에 빨대 꽂힌 야구르트 몇개가

저희를 반겨주었습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개념이 없는 친구들의 표정은 요샛말로 낚였다는 표정이었고,

오히려 제가 다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과자놓인 신문지 주위에 둘러 앉아 잠시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창식이 아버지께서 커다란 솥단지에 뭔가를 가득 끓여 오셨습니다.




처음엔 시루떡 같아 보였으나 자세히 보니 짜장라면입니다.

불어서 면발은 우동면발 같았고 스프소스가 잘 섞이지 않아 군데군데

허옇게 불은 면발은 부끄러움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창식아빠 : 아... 미안하다 얘들아 니네들 짜장면 좋아할것 같아서 이걸 끓였는데

내가 처음 끓이다 보니 이렇게 됐다...그래도 먹을만은 할거다.

내년에 창식이 생일엔 진짜 중국집에서 짜장면 시켜줄께 곱배기로...케익도 사고




약간의 실망은 잠시였고,

갑자기 창식이에게 미안해지더군요.

저뿐 아니라 오로지 맛있는거 먹겠단 일념으로 여기까지 온 개념없는 친구들의 얼굴에서도

뭔가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창식이 아버지께서 정성스럽게 끓여 주신 불어 터져 떡진 짜장라면을 먹었습니다.

나쁘지 않더군요...먹을만 했습니다.

한젓가락 먹고 물마시고 한젓가락 먹고 물마시는 번거로움이 좀 있었지만

맛있었습니다.




창식아빠 : 얘들아...이렇게 창식이한테 잘해줘서 고마워 전학을 왔는데도 친구들이 잘해준다고

창식이가 얼마나 니들 자랑을 하는지...내가 고마워서 별건 아니지만 니네들 뭐 좀 먹이고 싶었다.

니들 알지는 모르겠지만 창식이는 엄마가 없어...그렇다고 아빠가 잘 나서 창식이를 잘 보살펴

주지도 못하고 집에서도 사랑 못받고 학교에서도 사랑 못받을까봐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창식이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나니 많은게 생각 나더군요.




그렇게 저와 친구들은 창식이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을 느끼고 또 창식이의 착한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 생일에 이렇게 찾아와줘서 고맙다는 창식이의 말에 대답을 못하겠더군요.

그저 미안하고 쑥스러운 웃음만 나왔습니다.




비록 생일파티엔 어울리지 않는 짜장라면을 먹었지만

그 어떤 부잣집녀석네 집에서 한 생일파티보다도 더 의미가 있었습니다.

제겐 또 한명의 친구가 생긴것이었고, 또 창식이에겐 동시에 여러명의 친구가

생긴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그날 이후 우리 친구들은 더이상 창식이를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그날 창식이 아버지께서 오락하라며 쥐어주신 백원 때문만은 아니었고,

창식이가 엄마 없는 외로운 아이라 동정이 가서 그런건 더더구나 아니었고,

그냥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란 생각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 친해져 갈 무렵 창식이는 집안 사정상 또다시 전학을

가게 되었고 다음 생일엔 짜장면곱배기를 사주신다는 창식이 아버님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비록 짜장면곱배기를 얻어 먹지는 못하였지만 그날의 짜장라면은

스므해가 넘은 지금까지도 짜장면곱배기 백만그릇 값어치 이상의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늘 주시기만 하는 부모님

낳아주시고, 키워주시고, 생일상까지 차려주시고...





우리가 드릴건 없는지...







진짜 봄이 오려나요?

안 어울리게 조금은 생각이 많아집니다.








늘 행복하시길...









by hyu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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