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저 경력이 화려한 할아버지조차도 놀라는 게 당연하다. 저런 공격은… 절대로 예상 할 수 없으니까.

“하아, 이걸 그렇게 막으시다니.”

포스트는 쓴 웃음을 지으면서 할아버지의 검에 막혀버린 투 핸드 소드를 회수했다. 할아버지는 짐짓 놀란 표정으로 포스트를 응시했다.

“그 상태에서 검을 위로 공격하지 않고 좌우 베기를 노리다니. 그러고도 허리가 남아나나?”

“좀 쓰리긴 하지만, 늘 이렇게 어려운 공격만 합니다, 하아.”

“하긴 젊으니… 게다가 자네 몸은 보통 몸이 아니지. 하지만 몸에 무리를 주는 그런 공격은 하지 말게.”

맞다. 저런 공격은 몸, 특히 허리에 굉장한 무리를 준다. 검을 몸 뒤로 끌고 가면서 위로 한 번에 올리는 공격을 한 게 아니라, 그 상태에서 검을 오른쪽으로 옮겨 왼쪽 하단을 가르는 다리공격을 하는 건… 저 녀석이 괴상할 정도로 무식하기에 할 수 있는 공격이다. 아니, 무식하기 이전에 저런 몸뚱어리를 가지고 있으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저런 공격을 시도했다가는 뼈도 못 추리겠다.

“이번엔 내가 공격할 차례로군.”

“… 죽이지만 말아주세요.”

“허허.”

할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으시며 땅에 꼽혀 있는 검을 뽑으셨다. 그리고는 다시 표정을 굳히셨다. 작정 하신 건가.

“가겠네!”

그 순간 할아버지의 검이 번쩍이며 움직였다. 굉장한 속도로.

… 세상에. 저런 검술은 본 적이 없어. 상하좌우 어디 안 들어가는 곳이 없다. 할아버지의 문양이 없는 검은 달빛에 반사되어 오히려 더욱 빛나 보인다. 가까이서 보지 않는다면 할아버지의 검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절대 알 수 없다. 저걸 상대하고 있는 포스트는…

“헉, 헉!”

녀석도 가까스로 저 대단한 검을 막고 있었다. 도저히 반격할 기회조차 찾을 수 없다. 저런 공격은… 정말 무비루스정도의 속도와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도저히 나타날 수 없는 구역에서 검공이 쏟아져 나왔고, 아래에서 번쩍이면 위에서 검이 나타난다. 도대체 저런 형태의 검술이 어떻게 만들어진 거지?

“철저하게 살인기술이야.”

갑자기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중에 여자라곤… 한 명 밖에 없었지.

“무슨 소리야?”

“넌 아직 경험이 없어서 검술을 볼 줄 몰라. 잘 봐. 저 노인네가 방어를 하고 있는지.”

방어를 하고 있다니, 그야 당연히… 말도 안 돼.

아무리 포스트가 실력이 일천하고 검을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곤 하지만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공격만을 쏟아내고 있었다. 반격이 올 것을 예상하지 않는 건가? 아냐. 그런 무모한 공격을 하는 게 아냐. 할아버지는 지금…

절대 공격을 나올 수 없게 검을 놀리고 있어.

그래. 할아버지는 지금 반격이 나올 루트를 통해서 자신이 먼저 공격을 하고 있었다. 저런 건 절대로 반공을 할 수도 없고, 오히려 한 타이밍 빠른 역공이야. 한마디로 카운터 공격을 할아버지는 지금 계속해서 하고 있는 거야. 어떻게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거지? 카운터 검술이라… 그런 게 있다는 말도 들어보지 못 했고, 그런 게 있다곤 해도 그걸 저렇게 능숙하게 쓸려면 정말 엄청난 연습을 해야 돼. 아니, 카운터는 연습만으로 되는 게 아냐. 저건 타고난 감각이 있어야 하는 거야. 상대의 공격 경로를 까딱 잘못 예상했다간 일순간에 치명상을 입게 돼.

“저게 바로 살수야. 블랙 테일의 검술. 자기의 목숨을 버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검술… 저런 검술은 검술이 아니라 기술이야. 저 늙은 놈이 부리고 있는 건.”

“그래도 포스트가 잘 막고 있잖아?”

“그거 진심 아니지?”

그래, 진심이 아니다. 지금 할아버지는 분명 포스트를 봐주고 있다. 그것도 보기 민망할 정도로…

“하아, 하아아.”

포스트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진다. 할아버지는 그런 포스트를 염려해서 한 템포를 쉬고, 또 쉬고 느릿느릿하게 공격을 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 느릿느릿하다는 것이, 공격과 공격 사이사이의 간격이 느리다는 것이지 그 공격 자체가 느리다는 소리가 아니다. 저런 광속의 공격은 보고 막는 건 아직 포스트에겐 무리다. 포스트가 빨리 배워야 돼. 공격 방식을 몸으로 느껴야 돼. 할아버지는 지금 그걸 포스트가 스스로 배워야 하기에 저렇게 몰아치고 있는 거야.

할아버지의 검이 왼쪽 가슴을 노리고 휘어 들어갔다. 그리고…

챙!

“정확히 막았어.”

왼쪽 가슴을 노리는 건 허공이었다. 포스트는 정확히 진짜 공격을 막아냈다. 바로 어깨를 노리고 돌아 들어오는 검을.

앨런은 심각한 눈초리로 둘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니, 이제 심각하지 않아. 포스트는 신기하게도 할아버지의 공격을 점점 느끼고 있어. 난 그게 보여.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갑작스레 할아버지의 공격이 다시 한 번 들어갔다. 이번에는 다리다!

“아니!”

할아버지가 일순간 급히 옆으로 몸을 굴렸다.

“봤는가? 내 공격이 보였는가?”

뭘 봤다는 거지?

“그냥… 헉, 헉. 할아버지 가슴이 비어 보여서… 찌를려고 했어요. 헉, 헉.”

“하하하!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이렇게 빨리 터득하다니!”

할아버지는 검을 버리고 포스트를 와락 안으셨다. 포스트는 어안이 벙벙한 듯 눈을 크게 뜨고선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하하. 자네 누구한테 검을 배웠나?”

“저요? 아…. 하랑이라고 해야 하나. 하하.”

바보야. 그럼 내가 너의 스승이 되는 거고, 그렇게 되면… 아 귀찮아! 왜 그런 걸 말하는 거야!

“하랑? 하랑이 널 가르쳤다고?”

“아뇨. 그러니까, 그게…”

나는 무언의 협박을 담은 눈길로 포스트를 쳐다보았고, 포스트는 이리저리 눈을 흘기다가 문득 나를 보고서는 입을 꽉 다물었다.

“그러니까… 막, 열성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가르쳐 준 게 아니라… 뭐라고 해야 하나. 아아, 그래. 그냥 일주일에 한 번 겨루어 보는 게 다였어요.”

“그렇게 하는데 이만한 실력이라… 스승이 특별한 건지, 아니면 제자가 특출 난 건지…”

“영감. 이제 그만 하지? 영감 때문에 잠이 다 달아났단 말이야. 젠장.”

아, 그래. 누나가 깨 버렸지. 저런 괴팍한 성격에 잘 자고 있는데 깨버렸으니… 아아, 또 시끄러워지겠군.

“세니 양. 자네가 봐도 포스트, 이 친구 대단하지 않나?”

“그냥 말 할 줄 아는 오크로 밖에 안 보여.”

“뭐, 뭐라고!”

세니 누나는 심드렁하게 말하고선 다시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오오, 이대로 끝나는 건가. 다행이야. 얼마나 시끄럽게 굴지 걱정했는데 다행이야, 다행.

“하랑에게 검술을 배웠다고?”

“뭐, 그런 셈이죠.”

“그렇군.”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집어 들었다. 땀을 많이 흘리시네. 아무렴. 자기 실력을 모두 보이지 않고, 봐주면서 하는 게 더 어려운 법이지. 적당히 속도 조절도 해야 하고, 힘 조절도 해야 하고, 머릿속으로 어떻게 하면 이 녀석이 스스로 터득할까… 그런 저런 생각도 해야 하고. 아무튼 가르치는 건 어렵거든.

“흠. 역시 블랙 테일은…”

앨런이 조용한 목소리로 뇌까렸다. 블랙 테일은 뭐?

“하랑.”

“네?”

“나는 검을 들고 싸우는 건 체질에도 안 맞고, 게다가 잘하지도 못 해. 네가 보기엔 블랙 테일의 검술이 어떠냐?”

나는 잠시 고민했다. 내가 본 블랙 테일의 검술….

“강해요.”

“역시.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군.”

“하지만 동시에 약해요.”

“뭐?”

나는 할아버지가 들을까 굉장히 작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겉으론 굉장히 빠르고 박력 있는 검이에요. 하지만… 너무나도 허점이 많아요.”

“허점?”

“저런 건… 검술이 아니죠. 그저 사람을 죽이는 기술일 뿐. 누나의 말이 맞아요. 저건 기술이에요. 기술로는 검
술을 이길 수 없어요. 저렇게 해서는… 진짜 실력자를 상대할 수는 없을걸요.”

“무슨 말이냐?”

“아버지께서 말씀 하셨죠. 진정한 힘은 마음에서 나온다고요. 저런 사람을 죽이는 건 인간의 진짜 마음이 아니에요. 저런 기술은 닥터 노비츠키에게나 주라 하세요. 저런 기술들이 있기 때문에 노비츠키의 선악론 같은 것이 나왔고, 그가 그 망할 놈의 실험을 계획한 거에요.”

내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무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들으라 그래… 이건 할아버지에게 하는 말이야.

“스르나 할아버지. 저와 한 번 겨루어 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