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겠지만,

전 초등학교를 못 나왔습니다.

국민학교를 졸업했거든요.




아주 오래전;; 제가 국민학교 6학년때 였습니다.

코앞에 다가온 가을 운동회를 준비하며 운동회 연습이 한창이었습니다.




해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운동회 연습이라는거 상당히 짜증납니다.

똑같은 동작의 반복, 수시로 들어 쳐먹는 욕, 그리고 기합...

며칠째 반복되는 연습에 신경이 날카로워질 무렵 그날은 운좋게도

저와 제 짝꿍이 주번을 할 차례가 돌아온것입니다.




주번은 교실을 지켜야합니다.

그건 바로 그 지긋지긋한 운동회 연습을 안해도 된다는 이야기죠.




선생님이 오시기전에 누가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저와 제 짝궁 병진이는

화분에 물을 주고, 교탁을 닦고, 아이들이 목이 마를새라 주전자에 시원한

수돗물까지 가득 받아놓았습니다.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운동회연습을 안받는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덜고자 하는 마음이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아름답습니다.




선생님 : 운동회 며칠 안남았다...오늘은 좀 열심히 해보자...주번 누구지?




긴장되고 떨리면서 약간은 수줍은 듯이 손을 들었습니다.

짝궁 병진이도 손을 들고요.




선생님 : 오늘은 한사람만 남아...그래 병진이 니가 남아라.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더군요.




혀니 : 저도 주번인데요 선생님...


선생님 : 다들 10분내로 운동장으로 나와.




그렇게 선생님께서는 제게 눈길 한번 안주시고 교실을 나가시더군요.




혀니 : 아...이게 뭐냐?


병진 : 니네 엄마 2학기때 안오셨지?


혀니 : 응 그건 왜?


병진 : 우리엄마 어제 오셨어...늦겠다 빨리 나가라.


혀니 : ....씨박 -_-




뇌물이 만연하는 사회... 이제는 근절되어야 합니다.




가을이긴 하지만 더위는 여전했고 아이들은 지쳐갔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주번인 제게 교실에 가서 주전자에 물을 떠오라고 시키셨습니다.

엄명에 후다닥 교실로 달려갔습니다.

교실에서 쬐끔만 개기다 나갈 생각으로 말이죠.




교실문을 열고 들어가니 병진이는 한손엔 도시락통을 들고 한손엔 포크를 들고

급우들의 반찬을 절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착한 저는 화를 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혀니 : 이런 빌어먹을 하이에나같은 새끼. 정의의 손으로 널 처단하겠다.


병진 : 여기 니꺼...은정이 오늘 쏘세지다.


혀니 : 고마운 친구...혼자 교실지키느라 외롭고 힘들었지?


병진 : 근데 여기 이상한게 하나 있다. 이게 뭐냐?


혀니 : 뭔데? 어디 봐바.


병진 : 응 은정이 도시락가방에 있더라...휴지도 아니고 뭐지?




손바닥 보다는 좀 크고 파릇한 색깔의 한면은 미끌거리고 한면은 보드랍고,

미끄러운 부분에는 기다랗게 두줄로 찍찍이까지 붙어있고,

아무튼 13년 그다지 짧지않은 인생을 살면서도 처음 보는 물건이었습니다.




혀니 : 뭐냐 이거 수세미도 아니고, 새로나온 마스큰가? 눈가리갠가?


병진 : 마스크?...한번 해보자




그리고 지체없이 입에 갖다 대어보는 병진이.

그리고 눈에도 대보고, 또 코로 냄새까지 맡더군요.




병진 : 야 여기서 냄새 나.


혀니 : 무슨 냄새?


병진 : 쏘세지 냄새.




당연히 도시락가방속에 있었으니까 쏘세지냄새가 배어있었겠죠.

그걸 신기하고 놀라워하는 우리 병진이...정말 이건 뭐 병....진




혀니 : 도로 넣어둬라...아마 밥먹고 입닦으라고 쓰는건가봐.


병진 : 근데...여기 코묻었는데...김치국물하고...어쩌지?


혀니 : 아 이 디러운 시키...뭘 어째? 버려야지.




그렇게 정체불명의 물건은 두 쪼다의 만행에 그만 쓰레기통으로 유기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점심시간...




갑자기 은정이 주위로 여학생들이 몰리고 수군대기 시작하더니 이내 술렁으로 바뀌더군요.




은정 : 아흑 난 몰라...어떻게 해 흑흑.




밥도 안먹은 채 책상에 엎드려서 가련하게 울고있는 은정이를 보고 있노라니

제 마음도 덩달아 같이 아프지는 않았고, 다만 걸리면 분명 조땔것같다란 불안감만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상한 물건에 코풀고 김칫국물을 쳐발라버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게걸스럽게 밥을 쳐드시고있는 병진이를 보자 안쓰럽다 못해

죽여버리고 싶었습니다.




부산하게 반 여학생들은 교실안을 돌아다녔고 그러길 얼마지나지 않아 쓰레기통을 뒤지던

한 여학생의 외침이 들려 왔습니다.




"찾았다"




마치 보물이라도 찾은 듯이...




그러자 다시 몰려드는 여학생들... 또다시 수군대다가 술렁이더군요.

대여섯명의 여학생들이 떼로 교실을 나가고 난 얼마 뒤 저와 병진이는

담임 선생님의 호출을 받았습니다.



교무실로 가는 내내 만화속의 마귀할멈과 동급이라고 생각하는 담임선생님의

가뜩이나 주름진 입가가 생각나면서 두려움에 치를 떨었습니다.




부들부들...요렇게




선생님은 몇겹으로 쌓여진 화장지를 풀어 그내용물을 보여주시더군요.





선생님 : 이거 니네가 그런거야?


혀니 : 얘가 그랬는데요...코풀고 입에묻은 김치국물 닦고요.


병진 : 혀니가 버리랬어요 전 도로 넣어두려고 했는데.




의리도 우정도 필요없었습니다.

오직 살아야겠다는 일념뿐.

그리고 우리가 얻은건




오십대 초로의 여선생님이 날리는 맨손 파운딩 세례와 약간의 코피

그리고 그때 당시 이해하지 못햇던 한마디였습니다.




"어린놈의 변태새끼들...니네 같은놈들이 커서 범죄자가 되는거야"




변태란 말의 뜻이 뭔지는 정확히 몰랐습니다.

다만 범죄자가 된다는 말이 붙은걸 보니 아주 나쁜말인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남의 반찬을 훔쳐먹고 남의 물건을 훼손한것에 대해 뼈저린 반성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안타까운것이,

철없이 모르고 한 행동들에 대해선 무턱대고 타박하고 혼내는기 전에

바로 잡아주고 알려주는게 교육의 기본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아쉬움만 더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그후로 몇년이 지나지 않아 제몸에서 원치 않던 털들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그 정체불명의 물건의 용도를 알게 되었고, 변태란 어떨때 쓰이는 말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예언에도 불구하고 범죄자가 되지 못한 저와 병진이는 지금도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해드리지 못한것에 대해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독서실 책상에 생리대를 붙여놓고 볼펜똥 닦아가며 열심히 공부하는

병진이의 모습을 보며 전 생각했습니다.






"아 이새끼 아직 정신 못차렸구나...."








며칠전...

예전 다니던 회사의 동료로부터 제가 가지고 있는 몇몇건의 공사설계내역서를

씨디로 구워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어쨋든 그 회사에서 월급받아가며 작성했던것이기에 흔쾌이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마침 집에 공씨디가 없어 씨디를 사러 나가는 중이었습니다




네?




됐고... 변명까대지 말고 사실대로 진술하라고요?




-_-;;;;;;;;;;;;




야동 좀 구워볼까하고-_-;; 씨디를 사러 나가려 하는데 제 여동생이 절 불러 세우더군요.




동생 : 오빠 어디가?


혀니 : 응 요앞에 문구점에...왜?




그러자 만원짜리 한장을 줍니다.




동생 : 아 나 지금 배가아파서 그러는데 나간김에 약국에서...


혀니 : 약사다 달라고?


동생 : 아씨 말끊지 말고...위스퍼 좀 사다줘.


혀니 : 약국에서 뭔 위스키를 사?...그리고 만원짜리 위스키가 어딨어?


동생 : 아 그냥 위스퍼 달라 그러면 알아...날개 달린거.


혀니 : 헉...닝길...내가 미쳤냐?...안해 싫어 못해.


동생 : 잔돈 가져.


혀니 : 금방 다녀올께.




고작 잔돈 몇푼에 사나이의 자존심을 파는건 아니었고, 다만 아픈 동생의 고통을 대신하지는 못할망정

이정도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




죄송합니다...

고작 잔돈 몇푼에 자존심 팔았습니다.-_-




문구점에 들러서 씨디 두장을 사고 약국으로 갔습니다.

마침 약국에 여자손님이 약을 사고 있더군요.

그 손님이 나가길 어색한 몸짓으로 기다렸습니다.

손님이 나가고 뻘쭘함이 계속 되며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가 않더군요.




약사 : 뭐 드려요?


혀니 : 저 그게...그거말이죠...아 그게 근데.


약사 : 콘돔 드려요?


혀니 : 헉...그게 아니고




전 조심스럽게 양손을 이용하여 손가락으로 네모를 만들어보이고 약사 아저씨에게 속삭입니다.




혀니 : 위스퍼 주세요...위스퍼




약사아저씨는 별 미친놈을 다보겠다는 표정으로 위스퍼를 건넵니다.

조심스럽게 만원짜리와 잔돈을 교환하고 전 다시 속삭이 듯 말합니다.




혀니 : 넣어주세요.


약사 : 네?


혀니 : 봉투에 담아달라고요.




그리고 투명비닐봉지를 꺼내는 약사아저씨

그분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까 센스는 물론이거니와 개념의 미탑재가 의심되더군요.




혀니 : 검은봉투 없어요?


약사 : 없는데.




그대로 받아들고 남들이 안보이게 점퍼 안쪽에 숨겨 약국을 나왔습니다.

정신이 얼떨떨한 가운데 집앞 골목을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집채만한

커다란 물체가 절 덮치더군요.




"으악~~~~"


"꺄악~~~~"


"콰당~~~~철푸덕"




그리고 전 넘어지고 자전거를 타고 절 덮쳤던 아가씨도 자빠져 있고 자전거는 헛바퀴만을

하늘로 향해 돌리고 있었으며 길바닥엔 귤과 사과가 여기저기 나 뒹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손에 들고 있던 씨디 두장은 케이스에서 이탈해서 햇빛에 반짝거리고...




아프기 보다는 너무 당황스럽더군요.

혹시나 자전거가 크게 다치지나 않았나...아니 아가씨가.




넘어져있는 그녀를 부축하려 몸을 일으키는 순간 제 몸속에 숨겨져 있던

뭔가가 땅바닥으로 툭 떨어지더군요.

그리고 그걸 목격한 그녀의 놀라운 표정...저도 같이 놀라고 싶어지더군요.




땅에 떨어진 위스퍼에 눈길 한번 그리고 햇빛에 기분좋게 반짝이는 노란색 씨디 두장을

번갈아 바라보더군요.




두리번두리번...이렇게




그리고 제게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치더군요.




그녀 : 다...다가 오지마요...소리칠거야...오지마요.


혀니 : 네 진정하시고요...다치신데는.


그녀 : 괘... 괜찮아요 ...저리 가요 제발...네?




그리고 그녀는 황급히 몸을 일으켜 비호같이 자전거를 타고는 왔던 길을

빠르게 되돌아 가더군요...비틀거리며 가는 모양이 위험해 보일정도로.

그리고 골목에 울리는 그녀의 악에 받힌 소리...




"어마...변태새끼, 미친새끼...에이씨...변태야~"




눈물이 날것 같았습니다.

허탈했습니다.

엄마도 보고싶었구요.




땅에 떨어진 공씨디와 위스퍼를 주워들고는 전 그녀가 남기고 간 사과와 귤을

점퍼주머니가 가득 찰 때까지 담았습니다.

남들이 보면 제가 흘린것처럼 보이게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입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동생에게 위스퍼를 건네주고 주워온 사과와 귤을 주었습니다.




동생 : 왠 과일이야?


혀니 : 응...그거 사고 남은 잔돈으로 산거야...이래뵈도 오빤데 동생 잔돈이나 삥뜯겠냐.


동생 : 흙 묻었네?


혀니 : 닦아서 쳐먹어 이뇬아...-_-






어릴적엔 그게 뭔지 몰라서 변태 취급받고,

다 커선 동생 심부름하다가 변태 취급받고,





참...답답합니다.





사랑하는 엄마, 누나, 동생, 그리고 여친님아...

미리미리 준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사랑하시는 아들, 동생, 오빠, 남친...

잘못하다간 변태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습니다.






계속 춥습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일분일초마다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by hyuny





↓놀러오세요...어색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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