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성 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침묵의 시선'을 보고 왔습니다.

작년 '액트 오브 킬링'이 선사한 충격적이고
강력한 여운을 쉽사리 잊지 못하는 분들이 더러 계실것 같습니다.

후속작이라고 볼 수 있는 '침묵의 시선'은
'액트 오브 킬링'의 작법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지만
지향하는 바는 똑같다고 할 수 있겠죠.

전작이 가해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영화였다면
이번 작품은 피해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영화일 것입니다.


저에게는 완전히 다른 작법으로 보여주는 것이 흥미롭기도 하지만,
이렇게 다름에도 주제의식적인 면에서나 감정적인 파장으로나
짙고 오랫동안 남는 경우도 참 드물 것 같습니다.

'침묵의 시선' 역시 소름끼치고 탄식이
절로 나오게 하는 장면들이 연속적으로 나옵니다.

피해자의 유족（람리의 동생 '아디'）이
직접 가해자를 찾아가 인터뷰처럼 질문을 하는데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가?' 가 아니라
'왜 그런 짓을 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나?'고 묻고 있습니다.

격양되게 적긴 하였지만, 아디는 가해자들을 향한 복수심이나
분노로 들끓는 사람이 아닙니다.
50년이 지났는데도 아무일도 없었던 것 처럼 주위 동네에
살고 있는 주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양심이나 후회는 없는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일례로, 가해자 중 한 사람의 집에 찾아가는데
그의 가족들은 전혀 모르고 그 자리에 처음 안 사람도 있습니다.
자식은 그 사건에 대해 가해자를 대신해 진심으로 사과하는데,
아디는 너그럽게 용서를 받아줍니다.

반면, 그 가해자는 모른 척 회피하려고만 하죠.）

듣는（가해자） 입장에서는 곤란하거나 자랑스럽게 말하거나
두가지 리액션을 보여주곤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공통된 말은
'왜 자꾸 과거의 일을 들추냐?'는 것입니다.

한 상위층 대변인은 오히려 자꾸 그런식으로 나오면
지난날과 같은 역사가 반복 될 것이라는
터무니 없는 말까지 뻔뻔하게 합니다.

얼마나 뒤틀린 참상이고 사회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한데,

'아디'는 그런 그들을 두고도 깊은 죄책감에 의해
일부러 그렇게 표현하는 굴절된 생각이라 보고있습니다.
（어쩌면 이 분은 안타깝거나 연민으로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침묵을 강행한 자들이 아직까지도 자기 허울을 벗지않고
성배와도 같은 피로 얼룩을 지웠다고 생각하는 자들의
집단합리화나 최면으로까지 보이는 끔찍한 언행들은
다시 한 번 관객들에게 충격과 탄식을 줍니다.
（잔인한 살인사건의 묘사나 인터뷰가 아니라,
현재까지도 침묵을 강행하고 있는 그들의 언행과
표정들이 충격과 탄식을 주는 것입니다.）


오펜하이머는 '액트 오브 킬링'에서도 그러했지만,
가해자들에게 집단 항의와 목소리로 그들을 처단하거나
감정적으로 부풀리려는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도 합니다.）

그저 카메라를 통해 사회와 인간의 모습을 담아
조용하게 응시를 함으로써 지나온 과거의 역사와 현재를 되짚고
인간대 인간의 거울을 비춰서 문제를 바라보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한 방법론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지나온 사회가 남긴 상처를 아물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유독 고요한 풍경들이 많이 나오는 것도
실제 인도네시아의 풍경이기도 하겠지만
이러한 침묵을 깨기 위한 것이겠죠.

그리고 너무나 역설적이게도 풍경과 화면들은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또한, 눈먼 그들의 시력（시선）을 교정하려는
'아디'씨의 용기있는 시도에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감독이 피해자분을 왜 '안경사'로 선정했는지
생각해보면 단순한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



연달아 나온 이 문제적 다큐멘터리인
'액트 오브 킬링'과 '침묵의 시선'은
앞으로 오랫동안 회자되고 거론되는
걸작 다큐멘터리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 하나로 가져오는 강한 울림과 파장은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가까운 예인 우리나라도 이러한 역사를 거쳐왔고
비슷한 상황을 맞이했으니까요.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라는 말은
망각하려는 자의 자기합리화에 불과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역사는 현재와 과거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