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어느 날, 아침 7시 반쯤이 되자 나는 어느때와 다름없이 부스스하게 잠에서 깨어

시끄럽게 울려대는 핸드폰 알람시계를 신경질적으로 껐다.

오늘은 내가 엄마의 몇달간의 설득으로 온가족이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는날이다.

공부는 한양에서 시켜야 된다나 뭐라나....근 17년간 정든 동네를 떠나려니 영 마음이 편치않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배가고프다.

"엄마, 밥좀도"

엄마는 이삿짐으로 빼곡이 들어찬 마루에서 소리지른다.

"이 종간나는 이사가는날 아침부터 주 쳐묵을 생각만 하제! 이 봐라, 다 짐밖에 없는데 우예 뭘 해줄꼬?"

입밖에 꺼내지 말았어야 했다고 툴툴거리면서 구석에 대충 이불을 깔고 만든 잠자리를 치운다.

그리고는 밥이나 먹고 온다면서 돈 몇푼을 받아나와서 동네 여기저기를

나름대로 분위기 깔고 구슬프게 쳐다봤다.

그리고는 컵라면으로 대충 끼니를 때운 다음 카운터 누나에게 은근히 눈에 힘을주고

"디플 한갑만 주소"

"예..?"

"디플 한갑만 달라카이까네, 디스 플러스 모르는교"

"죄송한데 신분증좀 보여주시겠어요"

"이 키를 보소, 어데 학생이 180 넘기겠는교"

이 누나, 울상으로 어쩔줄 몰라하면서 머뭇거린다. 그때 사장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들어와서

"어디 학생새끼가 담배를 주 필라카노? 니 요앞에 중학교 다니던 금마 아이가?"

빗자루로 맞았다.

아프다.

부산은 마지막날까지 결코 나의 낭만과 우수를 이해하려하지 않았다.

기회의 땅 서울에선 이런일이 없을꺼라 다짐하며 집에 돌아왔다.

"밥쳐무러 갔다온다카던 문디가 와 이제 오노?"

"엄마는 낭마이 없다 낭마이!!（낭만이）"

낭만을 논하던 17세 소년은 또 맞았다. 가는날까지 이렇게 여러번 맞아야 하는

우리나라 체벌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곱씹으면서 서울가는 차에 올랐다.




서울은 내가 생각한것만큼 호화롭지만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남포동이나 서면이 더 좋은것같이 보였다.

내가 온곳은 송파구라고 한다. 근처엔 내가 아주 어릴적 서면 롯데백화점 꼭대기에 있다 없어진

롯데월드가 있다. 근데 그것보다 한 어림잡아 30배는 커보인다.

난 청소년이니깐 이런데는 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창밖으로 보이는 백화점과 롯데월드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서울 깍재이라 카드만 암것도 아이네, 임마들이라고 다를꺼 있겠나'

가볍게 비웃어준 뒤 인근 피씨방으로 향했다.

대세는 써든어택이라는 말에 혹해 중독되버린 써든어택. 벌써 대위다.

헤드샷이 핵 아니냐는 일부 무개념자들의 정신상태에 대해 한탄하며 게임을 즐긴다.

한 2시간 하고나니 문자 한통이 온다. 아마 부산 친구들일거라 생각하고 봤다.

[엄마 화났다. 잡히면 죽~~어 ㅡㅡ^]

이모티콘을 섞어 문자를 보내는 40대 여성에게서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을 느끼며 그리고 공포를 느끼며 집으로 돌아갔다.

가자마자 맞았다. 나도 고등학생인데.

서러웠다.

물론 서울에 와서도 바뀐건 없었다.

다행히도 이사오면서 청소기가 망가지면서 밀대걸레를 쓰기때문에

밀대걸레로 맞았다.

청소기로 단련된 나에겐 이러한 시련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맞았다.아흐.

몸 구석구석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방에서 곰곰히 살피다

문득 카운터의 예쁘장한 여학우가 생각났다.

많게봐줘도 한두살 위인것 같은데..

운동선수에겐 준비운동이 필수이듯,

나도 사전답사에 들어간다는 핑계로 개학까지 뺀질나게 피씨방에 들락거렸다.

물론 사투리가 뽀록날까봐 말은 못걸었다.

하지만 내 눈빛을 충분히 느꼈으리라 생각했다.




드디어 예비소집날이다.

학교는 남녀공학이었고, 집에서 가까웠기에 나는 새 학교의 첫인상이 좋았다.

출석을 부를때가 다가왔다. 집에서 한가로이 보내던 시간을 틈틈히 이용해

갈고닦은 서울말을 뽐내야지..난 18번인걸 확인했다.

15번...

16번...

17번...

오직 내 머릿속엔 번호의 세계만이 맴돌았고 다른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때가왔다

"18번 이정교"

"네 슨생님!"

내 세계가 무너져가는 소리를 들었다.

슨생님?

이 47%정도의 경상도 억양과 나머지를 채워주는 국어사전에선 찾아볼 수 없는 표현

슨생님..

첫인상을 곱게 심어줄 수 없었기에 스스로를 원망하면서 자리에 앉는데,

뒤에서 큭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종간나스키가 비웃는걸까.

뒤를 돌아보다가 난 사레가 들렀다.

"쿠헉!"

피씨방 카운터의 그녀다.

"너 어디서 왔어? 부산?"

8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친구의 영향으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지 않는사람들은 대뜸 경상도말을 들으면

부산말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것같다.

"어..내 부산에서 살다왔어"

어버버거리면서 표준어를 써야겠다는 생각도 잊은채로 말을 했다.

"큭큭...그랬구나..피씨방 올때마다 나 아저씬줄 알았는데, 이제 고1이구나 너도?"

아저씨? 기분은 나쁘지만 어쨌든 나도 네가 아가씬줄 알았단다..큭큭큭

"응..아무튼 그 피씨방에 니보러 다녔던건데 이렇게 보니 억수 반갑다"

갑자기 말이 없다. 너무 쌩뚱맞게 진도를 나간걸까.

아무튼 그렇게 그녀를 알게 되고 서서히 그녀의 많은것을 알았다.

이름은 진성은, 나이는 나와 같은 방년 17세에,

태풍 피씨방 사장님의 손에서 곱게 자라났다.

이 동네에서 태어나서, 죽 이동네에 살아왔다고 한다.

싫어하는건 없으며,

딱히 좋아하는것도 없다고한다.

나름대로 많이 알았다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까 별게 아니다.

아무튼 어디사는지도 알만큼 친해져서 다행이다.

그렇게 나의 행복한 서울 라이프는 시작되고,

그녀를 보는맛에 학교를 다니면서 어느덧 3월 14일 화이트 데이가 다가왔다.

지금껏 16번의 화이트데이를 지나오면서 이번만큼 기대되는적은 처음이다.

남들과는 확연히 차별을 두리라 생각하면서,

내 배꼽까지 오는 상자에 온갖 정성을 다해서 잡동사니（-_-）를 넣었다.

3월 14일 당일이다.

나는 짐꾼처럼 낑낑거리며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는 살며시 다가가서 그녀 앞에 상자를 내밀었다.

"저 저기...."

"개안타 내 마음이다"

"아니,고마운데..그게 아니고.."

"마 니 안받으면 버려야된다아이가 기껏 가왔는데"

우물쭈물하는 그녀의 모습.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성공이다

이제 돌아가는길에 그녀와 함께 집에가면 내가그린 그림은 완성되는군.

근데 이상한 정적은 뭐지...

2교시가 끝나고 물좀 마시러 가려는데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우장창창.

"이정교가 뭐하는새끼야!"

내이름인건 확실한데, 잘못한 기억은 많지않다.

무슨일일까...

궁금해하던 찰나에 뒷통수로 무지 센 발길질이 날아온다.

죽을만큼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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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라 약간 길게 써 보았습니다.

제목은 아직 미정이예요. 붙여주실 분 있으면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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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