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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지 2년 된 영화가지고 리뷰 쓰는 것도 이상하지만, 워낙 좋아하는 영화라 한 번 써보고 싶었습니다. 전에 영갤에서 위플래시에서 동성애코드를 읽었다고 하는 리뷰보고 좀 황당하면서도, 이렇게도 읽을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써보고 싶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쓴 글이지만 공유하고싶은 마음도 있어서 걍 영갤에 올려봅니다.

아래에 쓰여진 글은 모두 주관적인 해석입니다. 영화는 작품에 대해 의미를 강제하지 않으며, 각자에게 모두 다르게 해석 될 수 있습니다.

영화 내용에 대한 전체적인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영화를 미리 보셨을 관객을 대상으로 글을 작성했으므로, 관람을 권합니다.

작중 주인공들의 이름은 라이언 스톤과 맷 코왈스키입니다. 정확히 통일되게 표기하자면 둘 다 이름으로 부르거나 둘 다 성으로 불러야겠지만, 작중 내에선 라이언 스톤은 라이언이란 이름으로 많이 불리고 맷 코왈스키는 코왈스키라는 성으로 많이 불리기에 이하의 글에서는 라이언과 코왈스키라고 명하겠습니다.


영화 그래비티（GRAVITY） / DON’T LET GO

영화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지구로부터 600km떨어진 우주의 온도는 화씨 258도와 -148도 사이에서 변동을 거듭한다.
소리도 없으며/기압도 없고/산소도 없다. /우주에서의 삶은 불가능하다.”

영화는 우주왕복선인 ‘익스플로러’호가 허블 망원경을 수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수리임무가 수월하지는 않지만, 별다른 위험 없이 흘러가는 가운데, 작중 주인공인 코왈스키와 라이언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코왈스키: 하나는 인정해야겠어, 여기 경치는 최고야. 여기 올라오니까 좋은 점이 뭐야?
라이언: 고요（silence）요. 익숙해 질 것만 같아요.

영화는 마치 천국의 시야처럼 지구를 길게 굽어본다. 라이언이 허블을 수리하고 코왈스키가 그녀를 보조하며 잡담을 하는 가운데, 휴스턴은 비상상황을 알린다. 폭파 된 위성의 잔해가 다른 위성을 파괴하고, 그 잔해들이 또 다른 잔해를 만드는 ‘케슬러 신드롬’이 발생하여 위험한 잔해들이 총알보다 빠른 속도로 익스플로러 호에 접근 중이라는 것이다. 잔해들이 익스플로러를 덮치고 지상과의 통신이 단절 된 상황에서 라이언은 우주공간으로 튕겨져 나간다. 그녀는 데브리 충돌 후에 익스플로러와 단절되고 미아가 된다. 그녀를 연결하던 것들도 파괴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미아가 된다. 그녀는 극도의 공포를 느끼고 숨을 멈춘다. 마치 죽음처럼. 짧은 침묵 후. 그녀는 다시 숨을 쉰다.

카메라는 그녀의 헬멧 안으로 들어오고. 그녀는 주변을 파악한다. 백색으로 빛나던 태양은 핏빛처럼. 내장을 비춘 듯 붉게 그녀를 감싼다. 표류하면서 그녀는 계속해서 누군가를 찾고 가까스로 코왈스키의 목소리를 따라, 빛과 함께 그녀는 코왈스키에게 구조 된다.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고 익스플로러의 상황을 파악 한 뒤 코왈스키와 라이언은 생존자가 자신들뿐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대기권에 진입하기 위해 ISS로 향한다. ISS로 향하며 코왈스키와 라이언은 잡담을 나누고, 그 과정에서 라이언은 딸을 잃은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딸을 잃은 후에 그녀는 목적지 없는 운전을 계속하며 멘트 없는 라디오를 듣는다. 딸을 잃은 후 그녀에겐 삶의 목적도, 타인과의 소통도 무의미하다. 마치 그녀 자신이 죽은 것처럼 말이다.

ISS로 접근하는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은 관성에 의해서 여기저기 충돌한다. 그 과정에서 코왈스키와 라이언을 연결하던 끈도 끊어지게 된다. 라이언은 자신을 구조하고 이끌던 코왈스키로부터 떼어내진다. 마치 정자의 꼬리가 잘려나가듯, 그녀는 자신을 이끌고 유도해주었던 것에서부터 독립된다. 코왈스키는 라이언과 연결 된 줄을 풀어내며 이렇게 말한다.

코왈스키: 라이언, 놔줘.（let go.）
라이언: 안돼요. 당신은 아무데도 못 가요.
코왈스키: 당신이 결정 하는 게 아니야.
코왈스키는 라이언을 구조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라이언을 이끌어 준 사람이지만, 동시에 멀어지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이별은 라이언이 결정 하는 것이 아니다.
코왈스키는 멀어지며 갠지스강 위에 태양을 봐야하는데, 라고 말한다. 인도신화에서 새생명과 죽음이 공존하는 갠지스강. 코왈스키는 그 강 위의 태양을 언급하며 라이언을 삶으로 이끌고.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멀어지는 코왈스키의 목소리로 정신을 차리며, 라이언은 ISS로 진입에 성공한다.



그녀는 답답했던 우주복을 벗으며 산소를 마시고 태아의 형태처럼 편안해한다. 우주선 내부의 호스가 라이언에게 탯줄처럼 연결되어있고, 라이언의 자세 또한 태아와 유사한데다가, 태양광이 아름답게 비추기 때문에 이 장면에서 ‘태아’의 이미지를 포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전까지 흐릿했던 탄생에 대한 은유는 이 장면으로 선명해진다. 산소안에서 그녀는 ‘우주인’에서 맨몸의 ‘인간’으로선 처음으로 관객에게 오롯이 비쳐진다.

그녀는 ISS안에서도 사고와 어려움을 겪지만 가까스로 탈출선인 소유즈를 타는데 성공한다. 이제 중국정거장을 향해 추진하여, 중국우주정거장의 탈출선을 타고 대기권에 진입 하는 일만 남았다. 그러나 산 넘어 산으로, 소유즈에는 연료가 없었다. 연료가 없음을 깨닫고 절망하는 가운데, 라이언은 가까스로 지상과 무전으로 연결된다. 연결 된 사람은 ‘아닌강’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아마추어 통신사이다. （아닌강의 시점에서 만들어진 단편영상도 있으니 참고바람） 절망의 순간에서 라이언과 아닌강의 소통은 태아가 처음으로 바깥의 소리를 들은 것처럼 생경하다. 그녀가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는 개가 짖는 소리와, 자장가 소리뿐. 그녀는 그 소리에서 안식을 느끼며 삶을 포기한다. 그 와중에 갑자기. 헤어졌던 코왈스키가 우주선의 문을 열고 들어온다. ‘어떻게?’라는 라이언의 질문에 코왈스키는 능청스럽게 대답하며 잡담을 늘여놓는다. 탈출 방법이 없다고 말하며 포기한 라이언에게, 코왈스키는 방법은 있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해해, 여기 얼마나 좋아. 그냥 전원도 꺼버리고, 불도 다 꺼버리고, 그냥 눈을 감고 세상 모두를 잊어버리면 되니까. 당신을 상처 입힐 사람은 아무도 없어. 안전해. 계속 가야만 하는 이유가 뭔데? 계속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뭐 있냐고? 당신 애가 죽었어, 그것보다 고통스러운 일은 없을 거야. 하지만 여전히 모든 건 당신이 지금 뭘 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어. 만약 계속해서 살기로 결정했다면 그냥 가보는 거야. 자리에 앉아서 즐겨, 이 땅에 당신 두 발을 묻고 삶을 살아가는 거야. 이봐 라이언? 이제 집에 돌아갈 시간이야."

라이언은 정신을 차린다. 옆자리에 있던 코왈스키의 모습은 없다. 그녀는 다시 산소를 공급한다. 코왈스키에게 죽은 딸에 대해 이야기하며, 딸을 잘 대해주고, 제가 많이 그리워한다고 전해달라고 말한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딸의 죽음에 대해 상처입고, 죽은 것처럼 모든 걸 포기한 그녀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살기 위해서 중국우주정거장 ‘천궁’으로 향하고, 그 곳에서 탈출선을 타고 대기권에 진입한다.

“내가 보기엔 두 가지 결과가 나올 거 같다. 온전히 내려가서 엄청난 여행을 다녀왔다고 얘기하거나, 10분안에 불타 죽거나. 어떻게 되든… 밑져야 본전이니까! … 어떻게 되든 … 엄청난 여행이 될 테니까.”


중국우주정거장의 잔해와 라이언이 탄 탈출선은 대기권을 진입하며 운석처럼 불타오른다. 마치 지구의 생명체가 지구 외부로부터 운석을 타고 왔다는 이론을 상기시키듯이, 새 생명이 어머니로부터 나오듯이. 영화는 이 장면을 무척 뜨겁고 고통스럽게, 하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음악과 영상과 함께 보여준다. 가까스로 호수에 착륙한 탈출선은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자신을 보호해주던 우주복을 벗는 과정에서 그녀는 눈앞으로 개구리 한 마리가 헤엄쳐 수면으로 향한다. 수면 위에선 풀과 벌레소리가 들린다. 작중 인물들과 함께, 1시간 동안 우주공간에 있었던 관객들에게 지구의 모습은 낯설면서도 감격스럽다.


그녀는 물가에서 흙의 감촉을 느낀다. 그리고 두 다리로 서서. 천천히. 조심스럽게 걷기 시작한다. 지상으로 향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비추며. 영화의 타이틀이 다시 뜬다.




중력（GRAVITY）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삶의 고통을 안고 산다. 중력처럼 짓누르는 책임감. 상처들. 과거의 기억들. 사랑에 대한 욕구.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까지. 모두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걸 피할 수는 없다. 애초부터 탄생은 우리가 선택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결국 우리는 그런 감정들을 모두 인정해야 한다. 어쨌든, 그것들은 우리들이 살아있다는 증거일 테니까. 어떻게 되든 엄청난 여행이 될 테니까.

좋은 작품은 하나에 해석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관객들의 관점이 모두 다르듯이 작품의 해석은 개인에 따라 모두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그래비티를 생명의 윤회와 탄생을 다룬 작품으로 볼지,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지, 삶의 희망을 잃은 사람이 다시 용기를 얻는 과정으로 볼지, 아니면 그냥 재난영화로 받아들일지는 모두 관객의 해석에 달려있다. 다행히 그래비티는 특정한 해석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너무 복잡하게 보여주지 않았다. 많은 관객들에게 어필하면서도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본인은 생각한다.

그 외에 영화에서 사용 된 요소들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생각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서 적지 않았다. （수리를 하는 위성이 ‘허블’인 이유, 문제가 되는 부분이 ‘통신’ 패널인 이유, ‘착륙은 이륙이다’라는 대사 등등…）그 외 점들로 영화 관람 시, 음향이 좋은 환경이나 헤드폰의 사용을 추천한다. 소리가 중요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