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눈팅만 하다 새삼 다가오는 것들을 적고 싶어 로그인. 이 글을 남기면 당분간은 업무가 아닌 글을 사사로이 쓰지 않을 듯 하다. 그저 침대에 앓아누운 채, 한국의 늙어가는 엄빠를 생각하며 뻗어나온 생각의 가지들.

1 분명 내가 한국에서 넘어올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갈등이 심하지 않았고 스펙트럼도 지금처럼 넓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남녀갈등이 시대를 관통하는 어떤 화두인 것 같은데 이렇게까지...? 물론 외국 몇 년 살았다고 외국인 되는 건 아니지만 점점 내가 알던 현실 사회와 온라인 상에서 보고 듣는 이슈가 괴리되는 폭이 야금야금 늘어난다.

2 점점 한국은 섬이라는 생각이 든다. 막연하게 사람들 정서가 약간 예전 일본이랑 비슷해져가는 느낌이 드는데 정확한 근거는 없다. 이는 옳고 그르다의 가치 판단과는 무관하다.

3 한국에 휴가 가면 새벽에 배민 시켜먹긴 하는데, 솔직히 난 이게 마냥 좋은 부분이라고 생각하기는 좀 어렵다. 물론 한국은 서비스업의 나라이고 그런 부분에서 독일보다야 훨씬 편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이게 사람을 갈아넣을 수밖에 없게 되어버린 산업 구조와 국가적 한계 탓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이걸로 친구랑 카톡하다 친구는 '난 그래도 편한게 좋다'고 했다. 난 돈 주는데 무슨 문제 있냐는 투였는데 처음으로 그 친구가 무서웠다.

4 난 오히려 이제는 다같이 불편한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독일의 일상에서 빡치고 느려터지고 불편한 부분이 꽤나 있는 건 사실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미개함으로 보기도 하는데, 자본주의적 시선에서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살다보면 인정하는 때가 온다. 나 역시 돈 받고 나의 시간과 수고를 팔아야하는데, 이 불편함이 언젠가 나의 방패막이 되줄 거라는걸.

5 출산율을 위해 나라에서 돈을 주는 것도 뭐 방법이라고 보지만 그냥 정시 퇴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남녀 갈등에 이은 가정의 붕괴 뭐 그런 것도.. 정시 퇴근의 확립 그리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휴가 제도가 더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

6 돌아보니 나 없이 안돌아가는 회사는 진작 나와야 될 회사였던게 싶다. 업력이 20년 차고 그런데 그 동안 뭐하셨는지 진짜 물어보고 싶다. 그럼 누군가는 너 없이 돌아가는 회사에서 너 왜 쓰냐고 할테지만.. 회사를 그냥 돌리는게 목적이면 그냥 나 없이 열심히 하시고요.. 지금 회사는 만족.

7 날씨가 추워지고 엄빠는 점점 늙어간다. 효도의 기회는 줄어가고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건 용돈드리는 것 뿐. 근데 난 요즘 매일 부모님 어깨가 그렇게 주물러주고 싶고 손발을 따뜻하게 해주고 싶고 음식도 해서 먹여드리고 싶다. 그런데 그저 몇 자리 안되는 숫자와 내 이름을 그들의 통장에 찍혀나오게 하는 것, 그리고 전화해서 안부를 묻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효도라는게 조금은 서글프다. 내가 선택한 외국행이라 많이 서글프기는 힘들다.

8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