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에 갔다.



살면서 이앓이로 고생한 기억은 거의 없지만,



지난 99년 수능을 불과 십여일 앞두고



빼낸 사랑니로 눈물을 쏙 뺀 이후 내게 치과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그 이후 웬만해선 치과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동안 내가 앓았던 치통은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그저 잊혀질 정도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치과에 가서 받는 고통에 비해 그냥 참는 편이 덜 아프리라는



다분히 계산적인 행동이었다.





오늘, 내 계산적인 행동에도 드디어 한계가 왔다.



아무리 셈을 해봐도 그동안 해왔던 대로 그냥 참는 쪽보다



치과에 가서 받는 고통이 덜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치과에 갔다.





너무 오랜만에 간 치과였기 때문이었을까?



예전 웅웅거리는 기계음으로 입구에서부터



겁을 먹게했던 내 상상 속 치과와는 딴판이었다.



병원이라기보단 까페에 가까운 환자 대기실 인테리어는



그 동안의 치통을 참고 지내던 나를 자학하게 만들 정도였다.





진료에 들어갔다.



의사가 아닌 치과 직원이 막대기（?）를 입안에 넣은 채로



내게 총 열개 남짓한 질문을 던졌다.



생각나는 질문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치과치료를 마지막으로 받은 것이 언제죠?



알 수 없었다.



그래서 99년 사랑니를 제거한 것이 마지막이라 답했다.



내 기억에 '치과'는 학교 앞 허름했고 다소 지저분한



（그래서 치료 후에도 정말 불안했던） 그 치과가 전부였으니까.



2. 음주와 흡연을 하시나요?



아버지가 출석하셨던 교회의 집사님이신,



그 치과 원장님이 이 질문을 했다면



난 아마도 뻔한 거짓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3. 커피는 하루에 얼마나 마셔요?



음.



나는 그제야 내가 하루에 커필 세 잔 이상 마신다는 걸 인식했다.



4. 혹시 특정한 약에 대한 알러지가 있나요?



글쎄.



여드름 치료제를 먹은 후 탈모가 진행됐다는 말을



이 여자한테 말 해야할까.



5. 지금 복용하는 약이 있어요?



복용하는 약이라.



여드름 치료제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탈모가 생겼고



이번에는 탈모 치료제를 복용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이 여자한테 굳이 이야기 해야할까. 잠시 망설였다.





아무튼 그렇게 '치과용 설문조사'에 답했다.



설문조사만 하고 자리를 뜰 줄 알았던 이 여자는



진료를 계속했다.







의사가 아닌 그 여자의 진료 결과,



내겐 어금니 쪽 심하지 않은 충치가 있었으며



윗 이빨 가운데에는 아직 쓸만한 유치（幼齒）가 하나 남았고



선천적으로 아랫니가 다른 사람보다 두 개가 부족했다.





다른 것은 인정할 수 있었지만,



아랫니가 다른 사람보다 두 개나 부족하다는 사실에



나는 그만 울컥했다.



그래서 "제가요? 제가 남들보다 두 개나 부족하다구요?" 반문했다.





이태껏 살아오면서 내가



남들에 비해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한 개도 아니고 두 개나 부족하다니.



무언가 누구라도 잡고 따지고 싶은 기분이었다.





치료를 시작했다.



물론, 의사가 아닌 그 여자가 치료도 도맡았다.



충치 치료 이전에 그동안 쌓인 치석과 치태를 제거하자신다.





스케일링 시작과 동시에,



나는 입구에서 느낀 따뜻한 느낌의 치과는



일종의 눈속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입을 '아~'하고 벌린 채로 오랜 시간을 버텼다.



침을 삼킬 수 없어 괴로웠다.



와중에 '침이 코로 나오면 어쩌나'하는 걱정을 진지하게 했다.





기계가 （남들보다 두개나 부족한） 내 이빨들 사이에서



웅웅~소리를 내면서,



가끔은 끽끽 거리는 소리와 함께 이리저리 배회했다.



이빨을 긁어대는 그녀의 잔인함에,



아무리 애를 써도 찔금 눈물이 나오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40분여의 시간동안 섬뜩한 기계음과 싸우고 난 후,



나는 내 아랫 앞니에 구멍이 생긴 줄 알았다.



그러나 그 구멍이 그동안 쌓인 치석을 제거하고난 공백이란



사실을 알고 난 후 무식한 질문을 던진 것을 후회했다.



아. 그리고 드디어 원장 선생님의 얼굴을 알현했다.



그 분이 내게 해 준 것은



그녀가 말끔하게 씻어낸 （남들보다 두 개나 부족한） 내 치아를



한번 훑어보고 덜 씻겨진 부분을 한번 더 긁어주는 수고로움이었다.



그리곤 설문조사 결과를 본 후,



"XX가 이렇게 어른이 됐구나"하며 신기해한 것 정도였다.



하긴, 그 분은 내가 술과 담배를 즐긴다는 사실을



어른이 된 까닭이라고 받아들이고 싶을게다.





다음 충치치료 약속을 하고, 아. 계산.



계산 후 가벼워진 지갑을 들고 나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남들보다 이빨이 두 개나 없다면서 스케일링에서



이 빨 두 개 값을 빼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