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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술도가에서 고두밥을 노리는 악다구니 무리중의 하나였던 나는, 언제부터인가 고두밥보다 그 앞을 큰 몸집으로 지켜선 파수꾼인 '삼손'이 더 관심쏠릴 뿐이었다.
뚝심하나는 마을에서 제일 간다는 그는, 벼락떨어진게 가장 마을에서 1년동안 큰 화제였던 우리마을에, 언제부터인가 나타나서 술도가 앞에 술판을 벌이고 장정들의 힘겨루기를 주최하는등 상당히 나의 눈엔 위인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홀아비였던 나의 아버지는 삼손과 친근한 축에 속했고, 그덕분에 나도 삼손에 대해 몇가지아는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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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는 그가 소학교에서나 배우는 셈계산을 할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것때문에 대개의 사람들로부터 그는 뚝심만 빼면 시체인 ' 반편 ' 취급을 받았다는 것이다.
어째서인지, 사람들은 힘겨루기를 하며 태양을 등지고 선 , 마치 후광이 비치는듯한 멋진 모습의 삼손보다는 술도가에서 악다구니들이 고두밥을 훔쳐가는것을 막으며 꾸벅꾸벅 조는 , 거기다가 게게하니 입가에 침이나 고여서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세세하게 묘사하기까지 하며 입에 담기를 즐겨했다.

두번째는 그가 홀아비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가족이 보이지 않았기에,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이 없이 갑작스레 나타난 그의 모습에서 알수 있었다. 같은 처지의 홀아비들은 친하게 어울려 지내기 일쑤였고
그덕에 아버지는 급격히 삼손과 친하게 지낼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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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삼손에 대한 헛생각을 하다 얼마나 달렸을까. 앞쪽에 나무가 있는것도 모르고 부딪힌 모양이다. 얼굴 한복판에 복숭아만치 큼지막한 혹이 부풀어올라있었고,
그 아픔은 아금받게 나를 옥죄었다. 뒤쫓아오던 삼손이, 나를 업어제끼는듯 했다.
몽롱한 의식속에, 기억나는건 그의 상고머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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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지났을까, 일어나보니 삼손이 고두밥말리는 멍석위에, 고두밥을 치우고 나를 눕혀두었던 모양이다. 머리의 혹에 삼손은 침과 된장을 발라가며 안쓰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 니 많이 아프나? "

입조차 열어제끼지 않을듯했던 그의 입에서, 구린내난다고 까지 동생에게 내가 평했던 그 입에서 말이 나왔다.
의외로 그의 입에서 나온 음성은 부드러운 편이었다. 아니, 소리 자체는 걸걸하고 걸쭉한편이었으나 말 자체가 그랬다. 나를 걱정해주는것이 무엇보다 고마웠다.

"아입니더,"

나는 말을 짧게 끊었다. 그의 호의에 감사해마다않을 나였지만 왠지 다른 말이 기억나지 않았다.

" 아이다, 니 머리에 복숭아만치 큼지막한 혹이 났응께, 아플기다. 앵간한 장정도 못배긴다카이. "

삼손은 말을 마치곤 입을 닫았다. 그리고 안쓰럽다는듯이 눈으로 봐둔 고두밥덩이를 꾹꾹뭉쳐 둥글한 모양으로 만들어 내게 건넸다. 얼굴보다 큼직한 고두밥이 손에 들어오자, 아픔이 가시는듯 했다. 일시적인 기쁨으로 고통을 잊은 모양이었다.

벌써 고즈넉한 밤이 마을을 덮치고 있었다. 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않는다면 삼손에게 받을 호의가 부담스러울것 같기도 했다. 얼른 말을 끊고 나가야했다.

" 아입니더, 안아픕니더, 이만 가보겠심더, "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는 나에게 , 삼손이 팔을 뻗었다. 삼손의 팔은
술도가 앞의 장정들의 힘겨루기에서도 유명했는데, 굵직한 팔의 힘은 이 일로 증명된바 있었다.그 팔이 잡는다 , 하니 힘이 빠지고, 팔이 아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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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같이 술도가 앞의 힘겨루기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그런데 평소와 모습이 약간 다른것이, 큼직하고 두루뭉술한 돌 하나를 중앙에 두고 모두 입만 놀리고 앉았다는 것이었다. 돌은 제법 무거워 보였고, 들기위해 나서려는 사람이 없었다.

" 저걸 우째 든당가, "

" 두루뭉술한것이, 요령을 피울줄 알아야제, 밑으로 힘을 넣고 빠득하이, "

말을 마친 사내는 힘을 주는 요령은 대충 설명해보였고 자세도 보였으나 정작 나서지는 아니하였다. 그때 , 태양을 등지고 삼손이 나섰다.

" 내가 해볼깁니더, "

삼손은 말을 마치고 팔소매를 걷어부쳤다. 힘줄이 솟아오를듯한 굵은 팔뚝은 그의 힘이 어느정도 수준인지 말해보였다. 그는 악력도 강한 편이었다.

그때, 그 장대하고 멋진 모습을 깨버리는 사내가 있었다. 그것은 동네에서 슈퍼를 운영하고 있는 '이가[李家]' 였다.

" 신두석이, 니 제아모리 뚝심이 강해도 그건 안될긴데, 니 그거 참말 들수 있겄나? "

이씨는 안경을 가운뎃손가락으로 추켜 올려 눈가에 올리더니, 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곤욕스럽다는듯이 이가를 쳐다보는 삼손이 노려보았다. 신두석이라는 사람은 분명
삼손을 지칭하는 말이었을것이다. 언젠가, 삼손을 보고 힘강하다고 삼손이라 이름붙인 후로 들어오지 못한것이었다.

" 내 들면 니 우짤낀데, ? "

삼손이 자세를 추스리고 이가를 내리 깔아보았다.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아시다시피 우리마을은 벼락친것이 마을에서 1년동안 가장 큰 일이었던 파리날리는 마을이었기 때문에, 이런 기회를 놓칠수 없었다.

" 니 드는게 내가 좋을게 무가있겠노, 허나, 내 심보 후덕하니 막걸리 한말 사겄네, "

안경을 세우는척 하면서, 입가로 흘린 비열한 웃음을 나는 보았다. 삼손을 말리고는 싶었으나 입을 열수가 없었다. 삼손은 그를 노려보더니 팔소매 걷어부친것을 매만지고는 돌을 만지기 시작하였다.

" 내 백을 셀때까정 들고 있그라, "

그리고 삼손은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을 아끼면서 끄덕, 하는 고갯짓만 보냈을뿐이었다.
삼손이 , 돌밑으로 손을 모으고 힘을 주기 시작하였다. 안그래도 보기에 많았던 힘줄이 투둑,하고 터질듯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잠시후, 눈을 깜빡,하고 떠보니 삼손은 머리 위에 돌덩이를 신주받치듯이 하고 들고 있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는,

내가 보기엔 삼손은 그 모습이 백이 아니라 천만을 센다 하여도 장대하게, 그끝의끝까지 버틸것만 같았다.

얼마나 흘렀을까, 사람들 침삼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이가가 아흔을 셌을때, 삼손의 표정은 심히 일그러져있었다.
삼손의 핏줄이 보기 흉할만치 튀어나왔다. 그때부터, 이가는 셈을 질척하게 ,
또 아흔을 셌다가 여든을 셌다가 셈이 갈짓자로 왔다갔다 하게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계속 백을 세지 않자, 내가 이가를 노려보면서 외쳤다.

"내려 놓으라카이요, 저사람 셈이 갈짓자로 왔다갔다 합니더! "

소학교 4학년쯤 된 아이, 그때서야 친하게 지내는 홀아비의 아들인 내가 눈에 들어왔는지,그는 눈으로 한참나를 주시하더니, 눈을 감았다. 어째서인지 그는 내려놓질 않았다. 돌은 역시 들려있었고 사람들 소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이제 우짤낀가? 승산이 있어서 저래앉았노 ? "

" 아닐끼다, 지는 이제 승부 다 본기라, 지 혼자랑 승부를 하는것이제, 날래 자리를 피하자,"

" 그래도 볼긴데, "

" 우리가 없어야 내려놓을기다. "

이렇게 긴박한 대화들이 여기저기서 웅성웅성대고, 사람들이 가고 나 혼자 남았을무렵, 그는 돌덩이를 놓았다. 그가 돌을 들고 있던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해가 고즈넉히 져 있었다. 그가 셈을 못해서 반편같이 당했던 탓도 있지만,
그는 시간을 정해야 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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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시간, 삼손이 뭣하러 내 팔을 잡는걸까.?

" 니 아프지않나? "

젠장, 아니라는데 왜이리 채근하는것일까, 나는 분명 아프지 않다. 고두밥이 있다.
그걸로 나는 좋은데, 왜 이리 채근하는것인가, 삼손은 애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있었다.왠지모르게, 다른 이유가 있을것 같아서 자리에 앉았다.

" 안아픈데, 왜그러십니껴? "

긁적거리며 자리보전을 하는 나에게, 삼손이 긴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 내 저번때, 우리 술도가 주인님 보배를 방금 준 고두밥덩이 안에 숨겨두었다 카이, 뭔진 모르고 반짓상자 같은데 후덜거려서 열수가 없었다카이, 그냥 니는 고두밥을 들고 날라버리그라, "

삼손이 무슨의도로 내게 이런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해할수 없었다.
그래서 고갯짓으로 도리질을 한번 해서 완강히 모르겠다는 뜻을 표출한 후에, 삼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무언가 나쁜짓을 할 얼굴은 아니었다. 긴박한 상황이 상황이긴 했나보다.

"어째서임껴? 그리고 지는 숨는것도 잘 못합니더, "

내가 의문을 표하자 마자 그는 도리질을 했다. 도리질 같긴했지만 완벽하게, 짧게 도리질했으므로, 도리질 같지 않긴했다.

" 니 고두밥챙길땐 잘 숨지 않았나, 그리고 , 내 술도가 주인이 내보배도 숨겼다 카이, 보복이니께 도와달라하는게 아이가, 그리고 거짓말하고 숨어서 똥구멍에 털나는건 걱정말그라,내 뽑아 줄기다. "

나는 어른이 이렇게 간곡한 어조로 부탁하는걸 들어본적이 없어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오다가. 사추리를 더듬어보았다. 아, 하는 외침이 저절로 나왔다. 아부지는 바짓주머니를 꿰멜 힘도 없었고 바느질 맡길 돈도 없던것이다. 정확히하자면 시간이 없어서 안하는것이었지만.

그러니, 내가 넣어둔 고두밥덩이는 어디로 새어버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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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내 주머니좀 꿰매달라카이요, "

내가 간곡한 어조로 매달리면, 아버지는 입을 뚝 닫고는 무섭게 나를 노려보았다.

" 주머니 꿰매서 뭐할긴데? 니 또 소지품검사할때 주머니에 넣어서 나쁜짓할것이 아니가?"

" 아부지도 그럼 주머니 안꿰매면 되잖습니꺼,"

그 말이 떨어지면 아버지는 무섭게 얼굴을 들이밀고 귀청찢어질듯한 큰 음성으로 외쳤다.

" 내 주머니 찢어지면 우리식구 깡통차고 사거리에 나앉을거 몰라서 거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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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있을정도로, 우리가족의 주머니는 부실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몇주가 지나고 나는 그 사건을 잊었다. 그보다 중요한건 삼손의 실종이었다. 삼손이, 정확히 그날, 내가 고두밥을 떨군 후로 사라진 것이었다.
그리고, 술도가 주인은 맨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안경너머로 사람을 치떠보고는 다녔다. 아무도 믿지못하겠다는 태도였다.

더 신기한건, 반편이고 힘만 센 , 게게하게 침만 흘리며 잠만 자고 앉아있는 삼손이 떠난게
몇년이고, 사람들의 입가에서 입담거리로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삼손은 , 인간적인 정이 느껴지는 사람이었기에,
그가 떠난 자리가 오늘도 , 술도가 주인의 고함에 묻혀버렸다.

오늘도, 뜨슨하게 잘 말린 고두밥을 생각하며 뜯어진 주머니 사이로 사추리를 만져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