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해보렵니다.

에효... 요즘 많이 힘드네요





Corrupted [-우승자에게 1조 원을 드립니다.-]



게임 참가에 동의하면 그 이후로는 벗어날 수 없습니다.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죽거나 살아남는 것뿐입니다.

다음은 본 게임의 룰입니다.

1. 외부인에게 이 게임에 대해 발설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외부인이란 참가자, 주최, 스태프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2. 사용할 수 있는 무기는 총기류, 도검 및 그 외의 둔기/흉기류, 소형 미사일류정도로 제한합니다. 무기는 직접 구매하거나 만들 수 있고, 주최에게 의뢰할 수 있습니다.

3. 외부인의 피해는 최소로 합니다. 하지만 필요할 경우 죽여도 무방합니다.

4. 주최는 최대한 경찰과 군에서 당신들을 보호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행동을 조심하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5. 해외로 나가려는 경우엔 주최에서 개입합니다. 직접 비행기나 배를 제공합니다.

6. 용병은 고용할 수 없습니다.

7. 처음에 주어지는 신용카드는 세계 어디에서나 한도 없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카드는 오직 게임 진행을 위해서만 사용해야 합니다.

8. 참가자는 꼭 주최에서 지급하는 안경과 핸드폰을 지녀야 합니다. 핸드폰의 경우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번호로 등록하는 걸 허락합니다. 안경은 언제나 쓰고 있어야 합니다. （단, 안경은 저희들이 직접 도수를 맞추어 드립니다. 눈이 좋으시다면 도수 없는 안경을 드립니다.）

9. 주최는 참가자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습니다.

10. 숨어 지내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안전하다는 것은 확실히 할 수 없습니다. 공격이 최고의 방어라는 것을 명심해 두세요.






# 001 - 첫 번째 접전



"제기랄! 내가 미쳤지……. 의심도 해 보지 않고 덥석 클릭하다니!"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사람들이 많은 길거리에서 모자 사이로 흘러내린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대추 혈을 지나 10cm나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은 전체적으로 부스스해서 마치 늑대의 털과 같았다. 염색은 하지 않은 검은 머리카락은 뜨거운 태양의 빛에 반짝였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눈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알맞게 솟은 콧대와 약간 도톰한 입술, 새하얀 피부. 어떻게 보면 남성스러움이 없어 보였지만 전체적인 얼굴선에서 남성스러움이 뿜어져 나왔다.

무겁지도 않은지 등에는 크고, 무언가로 가득 차있는 가방을 짊어지고 있다. 더위 때문인지 무거운 가방 때문인지 남자는 계속 짜증을 부리며 걸음을 옮기고 있다. 한 번씩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모습엔 왠지 모를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얼마를 걸었을까? 땀에 흠뻑 젖은 남자의 옷은 남자의 몸에 완전히 달라붙었다. 하의는 통이 살짝 넓은 카고 바지라서 그런 상황은 면했지만 상의는 스판 소재인 대다가 땀 때문에 완전히 달라붙어 남자의 몸매를 드러냈다.

173cm로 보통 키였지만 알맞게 붙은 근육은 보기 좋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근육이었지만 부피만 부풀려 놓은 근육들 보다 훨씬 효율이 좋은, 예를 들면 이소룡과 같은 근육이라고 보면 된다.

"우선 사람이 많은 곳으로 나오긴 했지만…… 저격당할 수도 있겠군."

안경과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있긴 했지만 불안감은 떨칠 수 없었다. 사방에 있는 높은 빌딩들은 저격하기 좋은 장소다. 남자는 그것이 신경 쓰이는지 골목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하면 저격의 위험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넘치는 명동에서 대낮에 저격의 위험을 느끼다니……. 하지만 이것이 바로 남자가 처한 현실이었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제공받은 PDA를 꺼냈다. 시중에선 구할 수 없는 첨단 기술이 적용된 기기다. 고용량의 플래시 메모리와 수많은 부가기능. 위성을 통한 인터넷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남자를 이 게임에 묶어두는 흉물이기도 하다.

"참가자 중에 나 말고도 한국인이 12명이나 있군. 이들 중에 정말로 이 게임에 적극적으로 임하려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남자는 PDA에 저장된 참가자들의 사진과 이름, 신체 특징을 보며 중얼거렸다. 우선 한국인들의 얼굴을 외워 놓았다. 한국이니 당연히 한국인 참가자를 만날 확률이 높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뭐야, 내 사진은 왜 이렇게 좆 같이 나왔지?"

자신의 얼굴과 이름, 양천우를 보며 양천우가 긴장감 없이 투덜댔다. 아니, 긴장감이 없는 게 아니다. 긴장감을 떨치려고 이런 행동을 한 것이었다.

툭, 투두둑!
쏴아아~!

"망할! 소나기인가?!"

양천우는 PDA를 급히 집어넣고 가까운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일기예보에선 소나기가 있을 거란 소리는 하지 않았는데

"역시 일기예보는 믿으면 안 돼."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명동. 사람들은 비를 피하기 위해 여기저기로 들어갔다. 몇몇 사람들만이 우산을 챙겨와 유유히 길목을 거닐었다.

편의점의 시원한 공기에 기분이 좋아진 양천우는 소나기가 그칠 때까지 편의점에 있으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점원의 눈치 때문에 과자 몇 가지를 골라 계산대에 올렸다. 그렇지 않아도 마침 출출하던 참이었다. 양천우는 지급받은 신용카드를 내밀어 계산을 했다.

사실 이 카드는 게임을 위해 사용하라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해도 주최에선 어떤 제제도 없었다. 하긴, 무엇을 사든 이유를 붙일 수 있다면 그만이다.

시원하고 습기 없는 공기가 양천우의 젖은 몸을 말려주었다. 편의점 안에서 과자를 전부 처리한 양천우는 소나기가 그친 걸 보고 편의점을 나섰다. 그리고 동시에 뜨거운 공기가 그를 공격해 왔다.

"이거, 비 내린 거 맞아? 더럽게 덥네!"

분명히 길 여기저기에 빗물이 고여 있는데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태양이 시뻘겋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벌서 빗물을 증발하기 시작하면서 아지랑이를 피어 올렸다.

"아씨, 더워! 차를 한 대 뽑던가 해야지!"

마른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양천우의 옷은 땀을 머금고 있었다.

"후아……. 지친다."

오랫동안 높은 빌딩의 사각으로 다녀온 양천우였다. 솔직히 말해서 자신을 노리고 있는 참가자의 존재 유무도 모르면서 이렇게 힘 빼고 있는 양천우는, 스스로 생각해도 어리석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다른 참가자를 찾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힘없이 돌아다니던 그는 우연히 한 아이스크림 판매점을 힐끗 보다가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살제로 만난 적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PDA에 저장된 얼굴들 중 하나일 뿐이다.

꿀꺽

상대가 자신을 노리고 있는 것도 아닌데 양천우는 잔뜩 긴장을 했다.

'그냥 지나칠까?'

자신에겐 누구를 죽일 수 있는 배짱 따윈 없다. 차라리 그냥 지나치고 싶지만 자신이 등을 돌린 사이에 공격할 수도 있었다. 양천우는 눈치 채지 못하게 처음 만난 다른 참가자, 이름은 이신아라고 생각되는 여자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예쁘고 높게 솟은 콧대, 쌍꺼풀 진 큰 눈은 겁 많은 토끼처럼 보였다. 길게 기른 머리카락은 살짝 웨이브가 들어가 있었고 등 한 복판 까지 흘러내렸다. 앞머리는 자연스럽게 오른쪽으로 치우치게 빗어 놓았다. 약간 얇은 입술은 핑크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래, 보기 힘든

"미인이군. 그나저나 안경은 어디로 벗어 던진 거지?"

양천우의 당연한 의문. 모든 참가자들은 샤워를 할 때조차 안경을 쓰고 있어야 한다. 물론, 방금 앞의 이야기는 살짝 과장된 것이다. 당연히 안경에 물이 묻으면 내부의 회로가 파괴되기에 물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해야한다. 자연스럽게 샤워를 하거나 물을 접하게 될 땐 벗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고 있는 순간에서 스태프들은 참가자를 찍어 보내고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그래도 샤워할 땐 그 장면을 찍거나 하지는 않는단다.

그 외에 안경을 벗을 경우 스태프가 참가자에게 주의를 준다. 그리고 스태프가 참가자에게 주의를 주는 그 순간동안 그 참가자의 위치 정보가 다른 참가자들에게 전해진다. 물론 그 순간뿐이라 재빨리 이동하면 되지만 어느 정도 행동반경을 추측할 수 있게 해 주기에 위험하다. 그래서 안경을 벗는 일은 참가자들은 상상할 수 없다.

의구심이 든 양천우는 아이스크림 판매점에 들어갔다. 높은 빌딩에서 몸을 숨긴 채 저격이라면 모를까, 이렇게 사람들이 버젓이 보고 있는 곳에서 총격을 가하진 않은 거란 생각에, 들어가서 관찰해도 좋을 것 같아 한 행동이었다.

이신아는 남자친구로 보이는 남자와 함께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남자친구 때문에 스태프가 그녀에게 접근하지 않고 있다고 판단한 양천우는 다시 이신아를 관찰했다. 이번엔 그녀의 외모가 아니라 총을 숨길 만 한 곳의 탐색이었다.

그녀는 짧은 주름 청치마에 위에는 얇은 반팔 블라우스를 걸치고 있었다. 그녀의 청치마엔 두 개의 주머니가 있었는데 소형 권총 정도는 들어갈 수 있어 보였다. 하지만 외형을 볼 땐 주머니 안에 무언가가 들어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순 없었다. 권총이 들어가 있었다면 분명히 눈에 띠게 주머니가 튀어 나와 있을 것이다.

그럼 이제 하나 남은 가장 의심되는 곳은 바로 테이블 위의 작은 가방이었다. 작다곤 하지만 B5 용지 크기여서 보통 권총 정도는 충분히 들어갈 수 있어 보였다.

움찔!

양천우의 몸이 순간 크게 움찔했다. 그건 이신아가 그녀의 가방을 잡은 동시에 벌어졌다.

가장 무기가 들어있을 가능성이 높은 가방을 주시하고 의식하며 있던 참에 갑자기 가방을 집어 든 이신아의 행동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몸이 반응한 것이었다.

"아씨, 쪽팔려……."

아이스크림 판매점을 나가기 위해 가방을 잡았던 것이었기에, 오버했던 양천우는 스스로의 행동에 수치심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웬만한 사람 아니면 전부 이러니 걱정하지 마라.

양천우는 이신아와 그녀의 남자친구로 보이는 남자, 이 두 남녀의 뒤를 조금 떨어져서 따라갔다. 상대방이 눈치 채지 못했는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양천우는 그들의 뒤를 밟으면서도 주위에 서 있는 빌딩으로부터 최대한 사각지대에 들어가기 위해 애썼다. 그 때문에 이리저리 움직이는 그들 사람들이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꽤 부끄럽긴 했지만 죽는 것 보다 나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얼마나 뒤를 밟았을까?

태양은 노을을 남기고 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이제 시간은 오후 8시 정도. 저녁 식사를 마친 두 남녀를 뒤따라가던 양천우의 배에서 나지막이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이신아가 레스토랑에 들어갔을 때 다른 곳에서 허기를 채울 수도 있었지만 혹시 그녀가 자신의 존재를 눈치 챘을 가능성이 있었기에 밖에서 숨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벌써 다섯 시간이나 따라다녔지만 특별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남자친구 때문인지 스태프들은 그녀에게 접근하지 못했고, 그것 역시 양천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양천우는 그녀가 참가자임을 확신했다. 한 번씩 PDA를 꺼내 사진을 놓고 비교해 본 결과 거의 일치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천우는 어째서 그녀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 걸까? 남자친구가 옆에 있는 이상 이신아는 양천우를 공격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이신아와 멀리 떨어지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따라 붙은 걸까?

'나도 다 생각이 있다. 우선 서로 무기를 겨누지 않은 상태에서 이 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대화해야 해. 아니, 우선 그 전에 서로 힘부터 합쳐야겠지.'

'지금 당장은, 혼자보단 여럿이 더 낫다.'

그러니까, 지금 양천우의 생각은 '이신아와 서로 힘을 합쳐 이 게임에서 살아 남는다.' 라는 거군.

'아니, 둘로도 부족하다. 최대한 많이 모여야 해. 그리고 최악의 경우엔 우리가 주최와 대립해야할 지도 모르지.'

많이 모여야 한다는 건 동의한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는 그것이 아니지. 바로 배신이라는 거다, 양천우야.

'그것 역시 배제해 두고 있지 않아. 하지만 지금은 끝에서 일어날 배신보다 지금 당장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해.'


두 남녀가 택시를 잡았다. 양천우 역시 급하게 뒤에서 오고 있는 택시를 잡아 앞에 가는 택시를 조금 떨어져서 따라가 달라고 했다.

"무슨 일이시죠?"
"그건 알 바 없고요. 두 배로 드릴 거니까 그냥 따라가 주세요."

양천우는 택시 기사에게 그렇게 말하고 가방을 열었다. 뒷좌석, 그것도 운전석의 바로 뒤에 앉았기에 가방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보이지 않게 할 수 있었다.

가방 안에는 두 자루의 소총과 한 자루의 권총, 그리고 50cm 정도의 길이의 진검이 한 자루 들어 있었다. 소총은 MX8과 MP5 A5, 두 자루였고 모두 소음기를 달 수 있는 모델이었다. 권총은 HK사의 Mark23이었다. 이 권총 역시 소음기를 달 수 있었고 또한 여러 엑세서리를 부착할 수 있었다.

특히 MX8은 특수 개조한 것으로 수많은 바리에이션을 할 수 있는 녀석이다. 기본적으로 5배율 스코프에 발광 도트 사이트, 스코프에 내장되어 있는 적외선 야간 투시경, 레이저 도트 사이트 그리고 고광도 LED 램프가 장착되어 있다.

양천우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Mark23에 소음기와 LAM（Laser Aiming Module: 레이저 조준 장치）를 달고 몰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힘들게 있으시지 마시고 총은 옆에 올려놓고 하세요. 잘못하다 쏘기라도 하면 어쩔 겁니까? 허허……."

찰칵!

"Mark23. 명중률도 뛰어나고 45구경 탄을 사용하면서도 무게가 가볍고 소음기는 기본, 여러 엑세서리를 달 수 있는, 권총 계의 벤츠. 좋은 총이죠."
"스태프인가요?"
"그러니 총 좀 치우시죠."

택시 기사의 말에 순간적으로 빼 들고 슬라이드를 후퇴시켜 장전한 총을 양천우가 다시 거두었다. 그리고 안전장치를 채우는 걸 잊지 않았다. 약실에 탄환이 들어가 있는 상태라 잘못해서 격발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이 게임은 누가 만든 거죠?"

양천우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택시 기사, 스태프에게 물었다.

"그건 저도 모릅니다. 다 왔군요. 6300원, 더블 해서 12600원 되겠습니다. 손님."

스태프는 무뚝뚝하게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양천우는 가방을 들고 주머니에서 2만원을 꺼내 스태프의 손에 쥐어 주고 거스름돈도 받지 않은 채 차에서 내렸다.

"그럼, 명복을 빌죠."
"재수 없는 소리는 사양입니다."

양천우는 언짢은 얼굴을 하고 택시에서 내려 앞서가고 있는 이신아와 그녀의 남자친구를 쫓아갔다. 방향으로 보아 주택가였는데 이신아의 집인지 남자의 집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신아의 집으로 가야 할 텐데…….'

남자의 집으로 가면 곤란하다. 이신아와의 접촉이 힘들어지고 자칫 잘못하다간 게임에 관한 것이 외부로 유출 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참가자가 피해를 받는 것이 아니라 외부인이 피해를 입게 된다. 스태프들이 외부인을 죽여 버리는 것이다. 바로 살인멸구（殺人滅口）. 양천우는 되도록 외부인의 피해가 최소로 되기를 원했기에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에선 나서지 않을 것이다.

시간은 이제 9시 20분가량. 하지만 열대야 현상 때문에 여전히 양천우의 몸은 땀으로 젖어 있다.

이신아와 남자는 이제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한 주택의 대문 앞에서 멈춰 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주택은 1층에 꽤 넓은 정원이 있는 집이었는데 전체적으로 봐서 돈 꽤나 들인 집 같았다.

다행히 그 집은 이신아의 집이었는지 남자와 이신아는 작별 인사를 하더니 남자가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양천우는 나무 뒤에 몸을 숨겨 남자에게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하고 남자가 지나가자 이신아의 집 앞으로 걸어갔다. 문제는 어떻게 들어가느냐 이다.

'담을 넘어 들어가면 강도로 오해받기 십상이고, 그렇다고 벨을 눌러서 들어가자니 문을 열어줄 것 같지 않으니 난감하군.'

대문 앞에서 한참동안 고민하던 양천우는 좋은 생각이 났는지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남자답지 않게 예쁜 글씨체였다.

「참가자중 한 명인 양천우라고 합니다. 게임에 대해 상의할 것이 있으니 한 번 만났으면 합니다. 그 어떤 함정도 없으니 안심하셨으면 합니다. 제가 만약 당신을 죽일 마음이었다면 지금 당장 당신의 집에 수류탄을 까 넣었을 겁니다. 제 연락처는 010-XXXX-XXXX입니다.」

용건을 전부 적었는지 양천우는 옆집의 수신함에서 광고용으로 온 편지 봉투를 조심스럽게 뜯어 안에 든 것을 제거하고 그 안에 자신의 용건이 적힌 종이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펜으로 수취인과 발송인을 모두 지우고 이신아의 이름 석 자만 적어 넣었다.

'웬만하면 이신아가 직접 봤으면 좋겠는데…….'

혹시 그녀의 가족이 이 편지를 발견하더라도 바로 이신아에게 전해 주면 상관 없다. 하지만 이신아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뜯어본다면 일이 심각하게 될 것이다. 양천우는 이러한 걱정을 하며 몸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온 양천우.
대학생인 그는 부모와 멀리 떨어져서 혼자 자취 생활을 하고 있었다.
집안은 풍족한 편이라 22평의 원룸에 갖가지 필요한 것들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그리고 남자 혼자 산다고 생각하기엔 청결 상태가 매우 좋았다.

양천우는 장전되어 있는 Mark23을 꺼내 창문을 열고 허공을 향해 쏘았다. 떨어지는 탄환을 누군가가 맞을 수도 있었지만 그럴 확률은 매우 낮았기에 하는 행동이었다. 소음기를 달아 소리가 매우 작아지고 화염도 나타나지 않았기에 그 누구도 이곳에서 총이 발사됐다는 걸 알지 못했다.

양천우는 총을 쏘고 난 뒤에도 창밖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창문을 닫고 방으로 돌아왔다. 시간은 11시. 피곤해서인지 양천우는 눈의 침침함을 느끼고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빠르게 샤워를 마친 그는 원룸의 모든 불을 끄고 침대로 바로 쓰러졌다. 잠시 동안 눈을 뜨고 있던 그는 창문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일어서서 창문에 달린 두꺼운 커튼을 쳤다. 혹시라도 모를 저격의 위험에 조금이라도 더 안전해 지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하고 그는 다시 누워 잠을 청했다.



쨍그랑!

양천우가 잠을 자기 위해 누운 지 얼마나 지났을까? 5분도 되지 않아 유리창이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원래 모두 합해서 네 장의 유리창이었지만 네 장이 워낙 빨리 깨지는 바람에 마치 한 장이 깨지는 것처럼 들렸다.

팡!
퍽!

그리고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침대에 무언가가 박혀 들어가는 소리와 주위로 충격파가 퍼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침대에 박힌 무언가는 말 하지 않아도 알고 있듯이 탄환이었다. 그리고 충격파는 탄환이 음속을 돌파하면서 빚어낸 충격파였다. 양천우는 영악하게도 침대에 누워있지 않고 침대 옆의 바닥에 누워있었다. 옆에는 MX8이 항시 대기 중. 그는 곧바로 MX8을 켜고 침대의 반대쪽 벽을 따라 창가로 빠르게 움직였다. 아마 저격수는 자신의 공격이 성공한 것으로 알고 방심해 있을 것이다.

양천우는 조심스럽게 베란다의 제일 왼쪽 창문을 열었다. 다행히 그 곳은 밖에서 보이지 않는 곳이라 저격수는 알아차릴 수 없었다. 양천우는 MX8의 적외선 야간 투시경을 켜고 베란다의 창문에 접근했다. 그 곳은 깨지지 않은 창문이었다.

조심스럽게 소음기가 달린 총구로 커튼을 아주 살짝 젖힌 후 접안렌즈에 눈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저격을 한 곳으로 생각되는 맞은편의 아파트 옥상을 보았다. 당연히 배율을 높였다.

하늘에 밝게 떠 있는 달. 자칫 잘못하다간 MX8의 총구가 달빛에 반사 되어 저격수가 알아차릴 수도 있었지만 이 녀석은 흑색 무광 처리된 것이라 빛이 반사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것을 한 건 저격수도 마찬가지였는지 달빛에 반사되는 이질적인 빛은 찾아낼 수 없었다.

양천우는 혹시 저격수가 가 버린 걸까 생각하고 좀 더 빠르게 옥상을 살폈다. 그리고 한 가지 이질적인 실루엣을 발견했다.

툭!
쨍그랑!
딸깍

소음기에 의해 총성이 많이 줄었다. 성능이 아주 좋은 소음기라 총성보다 오히려 총의 기어가 맞물리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유리창이 깨지며 탄환이 저격수에게 쏘아졌다. 아쉽게도 자세가 좋지 않아 저격수의 바로 아래에 있는 콘크리트 벽에 탄환이 박혔다. 양천우는 탄환이 어디로 갔는지 지켜볼 겨를도 없이 바로 몸을 사각으로 숨겼다. 하지만 그가 숨긴 곳은 유리창 뒤라 저격을 한다면 바로 적중당할 수도 있었다.

양천우는 사각으로 숨긴 뒤 바로 베란다에서 빠져나왔다. 저격수가 다시 저격을 해왔지만 커튼 때문에 제대로 맞을 리가 없었다. 그저 짐작으로 쏘는 것 뿐. 하지만 곧 그 저격도 끝났다.

양천우는 몇 분간 벽 뒤에 숨어 있다가 더 이상 저격이 없자 조심스럽게 베란다로 나와 MX8으로 주위를 살폈다. 저격수는 이대로는 결판이 나지 않을 거란 걸 알았는지 깨끗이 포기하고 떠난 모양이었다. 양천우도 끝까지 쫓을 마음이 없었고, 쫓을 방법도 없었기에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대로 잠을 잘 수는 없는 노릇.

그는 바로 모든 무기를 가방에 챙겼다. 집안엔 그다지 중요한 물건도 없었기에 그는 곧바로 집을 떠났다. 챙긴 것은 무기와 지급받은 신용카드, 그리고 몸뿐.

양천우는 바로 나가지 않고 세 시간 정도 계단에서 머문 다음에 밖으로 나왔다. 혹시 저격수가 아직까지 가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차가 없는 그는 최대한 사각으로 숨어서 이동했다. 그저 정처 없이, 날이 밝을 때 까지 말이다.



"Benz New SLK 55 AMG 차량에 Brabus 튜닝, 가속 위주로 부탁합니다. 그리고 모든 부분에 방탄 소제를 입혀 주세요. 최대한 빨리."

양천우는 PDA로 주최에 전화해 차량을 부탁했다. 날이 밝고, 양천우는 가까운 페스트 푸드 점으로 들어가 제일 안쪽에 앉았다. 가볍게 햄버거로 아침을 때우고 피곤한 눈을 비비며 이신아에게서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와 동시에 어제 짧았던 접전을 떠올렸다.

'더 이상 집에 있는 건 위험하다. 차라리 집에만 있었다면 발각되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만 돌아다니다가 발각된 모양이군. 어차피 조용히 넘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은 않았지만……. 우선 방탄 소재의 차로 움직이며 안전을 확보하고, 아니면 시골로 숨어버리든가 해야지.'

'시골에 안전가옥을 만들어 놓고 생활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하지만 미사일로 공격하면 GG 쳐야지. 그럼 우선 이건 보류인가?'

양천우는 이것저것 생각을 하다가 시간이 11시가 된 것을 보고 슬슬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그의 PDA에 진동이 울렸다.

'온건가?'

양천우는 급히 PDA를 꺼내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의 짐작대로 이신아에게서 온 문자였다.

「그럼 만나도록 하죠. 대신에 사람이 많은 수영장이 좋겠네요.」

'수영장? 무기를 가지고 오지 마란 소리군.'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죠. 어디서 만날까요?-

「캐리비안 베이가 좋겠네요.」

-그럼 거기서 오늘 오후 2시 어떨까요?-

「네.」

양천우는 PDA를 다시 집어넣고 페스트 푸드 점을 나섰다.

'우선 수영복부터 사야겠군.'